2019년 교육부 주관, 혁신적 포용국가 정책홍보 수기 우수
아버지를 모시고 강원대학교 병원에 왔다. 암을 제외하면 심장과 뇌혈관 질환으로 돌아가시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한다. 나는 아버지께 손자, 손녀를 안겨드리기는커녕 아직 결혼도 못했는데, 여든을 앞두신 아버지께서 모쪼록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라는 마음에 심혈관과 뇌혈관 검사를 받으러 왔다. 뇌혈관 MRI를 찍는 데만 백만원을 훌쩍 넘겼다. 예방차원의 MRI인 경우에는 건강보험 적용이 안된다고 한다. 부담스러운 검사료였지만, 돈보다 아버지께서 건강하신 게 중요하니 검사를 받겠다고 했다.
검사 예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조금 억울했다. ‘고령의 연세에 주요 사망 질환을 확인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검사를 받는데, 왜 건강보험 적용을 안 해주는 거지?’ 하며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는데, “검사료가 많이 비싸지?” 하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다. 나는 순간 죄송한 마음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매달 월급에서 보험료는 그렇게 떼 가면서 이런 거 하나 안 해주니 그러죠...” 하고 말끝을 흐렸다.
아버지는 작은 악기사를 하시면서 동네분들과 바둑도 두고, 이야기도 나누며 하루를 보내신다. 장사는 잘 안되지만 홀로 계신 와중에도 외롭지 않게, 적적하지 않게 지내시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가게 책상 한구석에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로 시작하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를 손글씨로 적어두고 이따금씩 읽어보시는 것 같다.
아버지는 요즘 들어 행복하시단다. 나라에서 이것저것 지원을 많이 해주어서 감사하다고 하신다. 국민연금에 기초연금까지 나오고, 얼마 전에는 노란우산공제도 가입하셨다고 한다. 20만원이던 기초연금이 5만원 더 올라서 이제는 25만원씩 나오고,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노란우산공제의 경우에는 매월 5만원씩 붓고 있는데, 희망장려금이라고 해서 5만원씩 지원을 받아 한 달에 10만원씩 적금 넣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가게를 몇 년 더하시고 나중에 폐업하실 때, 목돈으로 노란우산 공제금 수령하실 수 있다고 흐뭇해하신다. 우스갯소리로 나 결혼 안 하고 있는 거 빼고는 행복하시단다.
나는 회사 다닌다고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용돈도 넉넉히 못 드려서 늘 죄송한 마음이 많은데, 불현듯 ‘내가 못 하고 있는 걸 나라에서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일상에 치어 내가 체감하고 있지 못했을 뿐, 국가가 사회안전망으로서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내게 ‘국가’라는 의미는 그랬다. 지금의 ‘국기에 대한 맹세문’으로 변경되기 전에 학창 시절을 보낸 나에게 국가는 말 그대로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대상이었다. 마음까지 다 바쳤는지는 몰라도 몸을 바쳐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했던 국가였고, 누구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월급에서 성실히 세금을 가져가는 국가였다. 미국의 전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국가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것을 바라기에 앞서,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라고 얘기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 본 적도 없지만,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해 본 적도 없었다.
요즘에는 '초과근무 총량관리제'가 도입되어 야근이 줄었다. 직장인에게는 꿀맛 같은 정시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유튜브를 둘러보다가 '포용국가전략회의'를 보게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영상이었지만 ‘포용 국가’라는 문구가 시선을 끌었다. 보는 동안 뭐랄까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돌봄, 배움, 일, 쉼 그리고 노후의 삶의 영역에서, 그리고 소득, 환경, 건강, 주거, 지역의 생활 기반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국민 삶의 질을 개선해 나가겠다는 '포용 국가 사회정책 추진계획'이 나에게는 해피엔딩 드라마의 중간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일궈낸 우리들을, 성실과 노력에는 익숙하지만 행복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우리 국민 모두를, 삶의 질 향상을 통해 행복한 삶으로 이끌고자 복지국가로서 힘차게 도약하는 의미 있는 순간으로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나는 생각했다. 분기 납부금을 제 때 못 내서, 내 이름이 한쪽 구석에 적혀있는 칠판을 하루 종일 바라보고 있는 게 힘들어서 새벽에 신문배달을 시작했던 학창 시절을, 그리고 아르바이트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급급했던 것 말고는 별다른 기억이 없는 대학시절도 떠올랐다. 그런데, 이제는 고등학교가 전면 무상교육으로 바뀐다고 한다. 대학교 입학금이 폐지되고, 1인당 정부 장학금 지원액도 2백만원을 넘을 거라고 한다. 이상하게 나는 코끝이 찡해지면서 기뻤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쉬움이 조금 남는 시기를 우리 후배들은 학업에 보다 집중하면서 그때 하면 좋을 경험을 좀 더 쌓고, 추억도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 좁은 마음에 ‘네가 내 삶을 어떻게 책임질 건데?’ 하고 평소에 반문만 하던 내가 국가에, 우리나라에 고맙다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다.
심혈관과 뇌혈관 검사 결과를 들으러 아버지와 병원에 다시 왔다. 의사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검사 결과가 좋단다. 시술받을 필요 없이 약 잘 드시면서 관리만 잘하면 될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다행이다. 어제 잠을 잘 못 이루시던 아버지도 한 시름 놓으셨는지, 아버지 걱정은 그만하고 장가가서 행복하게 잘 살 궁리만 하란다. 동네 어르신들한테 들으셨는지 ‘포용국가’ 정책으로 기초연금도 30만원까지 오르고, 건강보험 보장률도 높아진단다. 요즘은 시아버지 모시고 사는 거 다들 싫어한다고, 혹시나 치매가 걸려도 국가에게 다 책임져주니 행여나 결혼해도 같이 살 생각은 애당초 하지 말란다. 듣다 보니 이제는 아예 아들보다 나라를 더 믿으시는 눈치다.
내년이면 이제 나도 마흔이다. 지금까지의 삶이 그 나이 때에는 버거울 법한 삶의 무게와 함께했던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왠지 나이 자체가 무겁게 느껴지는 시기인 것 같다. 매 순간, 순간마다 열심히 살기는 한 것 같은데, 내 나이만큼의 것을 갖추지 못해서인 것 같다. 하긴 결혼은 둘째 치고, 결혼해서 같이 살 내 집 하나 마련하지 못했으니 다만 부끄러울 뿐, 할 말이 없다. 그것도 2022년에는 모든 신혼부부가 주거지원 혜택을 받는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 생각이 가끔 든다. 아버지는 이제까지 나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셨는데 나는 그런 아버지의 안락한 그루터기가 되어드리지 못하는 것 같고, 나는 나대로 나이가 들어가며 이미 어른인데 여전히 사는 것에 힘들고 지치곤 한다. 그런 나에게 ‘내 삶을 안아주는 국가’가 있다는 것 자체로 큰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오늘은 어제보다 나아졌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다면 다름 아닌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할 수 있지 아닐까? 나의 울타리도 되어주고, 아버지의 그루터기도 되어주는 ‘포용국가’라는 희망의 메시지 속에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