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편집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 hyu Aug 21. 2023

[지아 PD] 10층 화장실

지아 PD의 첫번째 이야기

‘인간의 몸에서 이런 냄새가 날 수 있다니.’


29시간 만에 회사로 복귀한 지아는 양말을 벗으며 생각했다. 시큼하면서 텁텁한, ‘짐승의 냄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체취가 편집실 안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회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신발을 안 벗길 다행이었다. 창문도 열지 못하는 이 추운 날, 작가님들과 함께 탄 그 봉고차 안에서 이 냄새가 펴졌다면… 끔찍하고 어색한 3시간이었겠지.


지아는 노련하게 편집기 아래 묵직한 비닐봉지를 열어 양말을 넣고 재빨리 닫았다. 비닐봉지 안엔 지난주의 빨랫감이 담겨있었다. 이 양말이 추가된 이상 늦어도 내일은 집에 가서 빨래를 하고 와야 했다. 비닐봉지를 다시 단단하게 묶고, 편집실 한쪽에 있는 올인원 워시와 깨끗한 옷, 미리 쟁여둔 회사 헬스장 수건을 챙겨 10층 화장실로 향했다.


신입피디 시절 처음 회사를 둘러봤을 때, 지아는 수련회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하의 식당, 1층의 카페, 7층의 수면실 그리고 3층과 10층 화장실 안의 샤워실. 마음만 먹는다면 회사에서 살 수 있을 정도로 숙식에 필요한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지아와 지아의 동기는 신나서 서로 카톡을 했다.


[우리 다른 팀이어도 수면실에서 만나고 그러겠다]

[수면실에 이층 침대 있는 거 보니까 정말 수련회 온 거 같아ㅋㅋ]

[그니까!! 아 샤워실 보니까 바빠지면 우리 여기서 씻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ㅋㅋㅋㅋ 이따 같이 올영 가서 샴푸랑 비누 살까? 미리 사놓으면 좋을 듯]

[오 좋아 좋아. 갔다가 카페에서 주스도 사 마시자!!]

[� 고고고!!]


바쁜 피디 생활을 함께 고대했던 동기는 벌써  두 달 넘게 얼굴을 못 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다른 팀 사람들을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아네 팀의 편집실은 4층에 있어서 3층에 있는 샤워실에 가는 게 더 빨랐지만, 지아는 굳이 10층 화장실로 향했다. 혹시나 같은 팀 사람과 마주치지 않기 위함이었다. 이 짐승 같은 발냄새도 굳이 공유하기 싫었고, 씻을 때만큼은 잠시라도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물론 샤워실에 들어가기 전 핸드폰 확인은 필수였다. 카톡 메세지를 확인하고 가장 큰 소리로 알람을 설정해 놓았다. 세 번째 촬영이 끝나고의 악몽을 되풀이 하긴 싫었다. 카톡을 무음으로 해놓은 채 씻은 게 문제였다. 촬영이 끝났음을 만끽하며 뜨거운 물에 몸을 노곤노곤 풀고 있는데, 샤워실로 누군가 황급히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녀는 피곤이 잔뜩 묻어있는 목소리로,   

-안에 혹시 지아 있나요?

라고 묻는 것이었다. 같은 팀의 조연출 선배였다. 지아는 허겁지겁 나와 물을 뚝뚝 흘리며 편집실로 향했다. 4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확인한 팀 단톡방에는 무려 73개의 카톡이 쌓여있었다.


[지아 4층 편집실로.]

[지아 바쁘니? 왜 답장이 없니?]

[지아 지아 지아 지아]

[지아야 지아야 지아야 지아야 지아야 지아야 지아야]

[앜ㅋㅋ 선배 넘 웃긴 거 아니에요? 그냥 초성으로 해도 될 듯 ㅋㅋ ㅈㅇㅇ ㅈㅇㅇ ㅈㅇㅇ]

[ㅋㅋㅋㅋㅋ ㅈㅇㅇ ㅈㅇㅇ ㅈㅇㅇ ㅈㅇㅇ ㅈㅇㅇ ㅈㅇㅇ]

[조심해. ㅇ 하나 빠지면 너무 야할 듯.]

[어후 ㅋㅋㅋㅋㅋㅋ 미쳤나 봐 ㅋㅋㅋㅋ]

[지아!]

[ㅋㅋㅋ요즘 애들 진짜 빠졌다]

[옛날 같으면 빠따 각인데 이거 ㅎㅎㅎ]

[적어도 테이프 모서리로 머리 맞을 각인데 ㅋㅋㅋ 요즘 세상 좋아졌죠]

[테이프 모서리라니 너도 좋은 세상에서 자랐구먼~]

[아~ 선배 너무 꼰대 티 내는 거 아니에요? ㅎㅎ]

[지아 자니 설마?]

[ㅋㅋㅋㅋ저 지금 잠깐 눈 붙이러 수면실 왔는데 여기 없네요]

[설마 튄 거 아니에요? ㅎㅎ]

[우리가 뭘 시켰다고 튀니 ㅋㅋㅋ 웃기네]

[지아. 어디야.]

[상민이 어디니 지아 찾아와]

[넵]


지아를 찾는 내용과 농담이 어우러진 카톡들이었다. 어떤 급한 일이길래 이렇게 찾으신 걸까, 어떡하지.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마자 뛰어가기 위해 지아는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4층입니다. 지아는 문이 열리자마자 물을 뚝뚝 흘리며 편집실로 뛰어갔다.


-죄송합니다! 샤워하느라 카톡을 놓쳤습니다!

-샤워를 왜 이렇게 오래 하는 거야 지아~ 그리고 샤워해도 어! 잠을 자도! 카톡 알람은 늘 크게 켜놓고 있어야지! 조연출이 말이야, 쯧.


눈물이 핑 고였다. 혼나서가 아니라 선배의 말처럼 이런 기본적인 일조차 챙기지 않은 지아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서였다. 눈물이 고였지만 여기서 울면 선배들이 오해하실 것 같아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어유~ 선배 이러다 애 울겠어요~ 지아 다음부터 이러지 마 알겠지~?

-네!! 다신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왔으니까 받아 적어. 나는 슈슈에 사이다.

-난 1955에 콜라.

-난 베이컨 토마트 디럭스. 맥도날드도 어니언 링 있나?

-잘 모르겠습니다…

-에휴 아는 게 뭐니. 어니언링으로 바꿀 수 있으면 바꿔줘. 음료는 콜라 제로.

-난 슈비에 딸기 셰이크. 큰 사이즈로.

-빨리 다녀와. 내가 얼마나 걸리는지 시간 재고 있을 거야.


지아는 전속력으로 달려 맥도날드에서 주문을 넣고 시간을 확인했다. 02:01… 02:02… 새벽 2시가 지나는 이 시간에도 분주히 움직이는 주방 모습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지아는 숨을 내쉬며 무심코 머리를 쓸어 넘겼다. 지아의 손 가득 비누거품이 묻어 나왔다.


바로 다음날, 지아는 머리를 숏컷으로 잘랐다.


숏컷으로 자른 뒤 비누거품이 머리에 남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머리가 생각보다 빨리 애매한 길이로 자라 너무 빨리 못생겨졌다. 화장할 시간은커녕 잘 씻지도 못하는 요즘,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볼 때마다 지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인생에서 가장 못생긴 시기가 있다면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샤워실 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지아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수증기가 지아의 얼굴을 완전히 가려줬다.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지아는 눈을 감았다. 긴 시간 동안 각성된 몸이 조금씩 풀려나갔다. 미키마우스가 환하게 웃고 있는 워시를 쭉 짜서 머리를 마사지하고, 귀, 목, 어깨, 그리고 몸 순으로 정성스레 비누칠을 해갔다. 마지막으로 시큼 텁텁한 냄새를 뿜던 발에 워시를 쭉 짰다.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딸기향이 범벅이 되자 드디어 잠시나마 지아 자신으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이제 빨리 머리를 말리고 조금이라도 눈을 부칠 수 있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는 밤이 될 터였다.


몸의 비누칠을 씻어내기 시작할 때, 갑자기 샤워실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카톡 소리였나? 지아는 팔만 대충 씻어내고 팔을 뻗어 손잡이에 걸어놓은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카톡은 없었다. 다시 샤워실 문을 열고 핸드폰을 가방으로 넣으려고 할 때, 화장실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우웨엑”


누군가 토를 하고 있었다. 지아는 들으면 안 될 걸 엿들은 듯한 기분이 들어 황급히 문을 닫고 샤워기를 틀었다. 따뜻한 물이 몸 위로 쏟아졌지만 그 새 몸이 식었었는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구역질은 계속 이어졌다. 물소리와 섞였지만 구역질이 점점 흐느낌과 섞여나가는 게 들렸다. 그냥 조금 더 샤워를 할까, 잠깐 고민을 하다가 그냥 최대한 빨리 화장실에서 나가기로 마음먹고 물을 잠갔다. 물소리가 멈추자 약속이나 한 듯이 화장실 칸막이 안의 소리도 잦아들었다. 갑자기 찾아온 적막에 지아는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몸을 제대로 닦지도 않고 옷을 입으니 금세 온몸이 다시 축축해졌다. 샤워실 문을 열자마자 화장실로 퍼지는 딸기향 수증기가 미안했다. 문을 두드리고 괜찮나요-라고 하고 말을 건네기엔 지아의 몸에선 너무 달콤한 향이 났다. 씻기 전엔 또 악취 때문에 미안해서 말을 못 건네었을 것이다. 지아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는 그녀가 속 시원하게 속을 게워낼 수라도 있게 최대한 빨리 자리를 비워주는 것이었다. 고요한 적막 속에 두 여자는 서로의 마음을 읽어나갔다.


까똑!


적막을 깨고 큰 카톡 소리가 화장실 가득 울렸다. 


까똑! 까똑! 까똑! 까똑!


지아는 핸드폰을 찾으려 황급히 가방을 뒤적였다. 급하게 넣은 올인원 워시의 뚜껑이 열렸는지 가방 안은 어느새 찐득한 액체 범벅이었다. 눈이 질끈 감기고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아. 아차, 마지막까지 조용히 했어야 했는데. 핸드폰을 대충 수건으로 닦으며 지아는 긴긴 밤을 향해 화장실을 나섰다. 

매거진의 이전글 [intro] 편집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