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된 이유
처음부터 작가가 되려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한강 작가님 정도 되는 위인 아니고서야
부모님 등골 빨아먹고 살기 딱 좋은 직업이다.
의사, 변호사가 대본을 쓰는 세상 아닌가!
인간적으로 너무하십니다...슨생님들...
(부럽습니다.)
돌아보면, 첫 단추가 잘못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38년 전, 영등포에서 치킨바베큐를
불티나게 팔았다.
밤에 일하는 부부가 아기를 맡길 곳이라곤
사당동에서 채소, 과일 장사를 하는
어머니(나에게는 할머니다.) 뿐이었는데
문제는 이 집도 꽤나 바빴다는 거다.
돌도 되기 전부터
사당시장 한 구석에 있는
마늘 빻아주는 기계에 등을 기대고
온갖 사람들을 관찰하던 꼬마가, 누구?
롸잇테리언이다.
애를 낳고보니, 가족들은 종종
아이의 눈치와, IQ를 헷갈려 할 때가 있다.
그저 눈치가 빠르고, 그로 인해
말이 빨리 트인 사당시장의 대스타는
모두의 고민거리였다.
시장 사람들은 끼니를 잘 거르고
시장 문(정확히는 천막)을 닫으면
한곳에 모여서 반주를 곁들인
제대로 된 식사를 한다.
어느 날의 일화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 일화를 곱씹으며
내 모든 투정을 받아주셨다.)
'강씨'로 불린 우리 할머니는
사당시장에서
가장 늦게까지 장사를 하는
열혈장사꾼이었는데,
내가 추울까봐
방앗간(식사 장소)에 먼저
나를 놓고 다시 뒷정리를 하러
가게로 갔다고 했다.
정리하고 가보니
모두가 밥을 안 먹고
기다리길래
깜짝 놀라서 왜? 라고 물으니
"강씨, 손녀딸래미 보통 아니다.
우리가 몇 점 집어먹으니까
고기 하나씩 줄어드는 거 보더니
울먹이면서 할머니 데려오라고 안 하나.
우리 할머니 먹을 거 없다고.
접시 한 번 보고, 문 한 번 쳐다보고...
안씨러워서 내 못 먹겠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눈치가 빨랐고 (O)
인간 공략에 최적화 된 (섭외)
재능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그 사건은 모두의 마음을
뒤흔들었고,
쟤는...이런 시장바닥에 두면 안돼.
어디 깨끗한데 가서 잘 키워야 돼.
로
점점 부풀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영등포에서 멀쩡하게
치킨 잘 팔던
가나다숯불바베큐 부부의
마음에 돌을 던졌고...
나의 부모님들은, 큰 결심을 한다.
깨끗한데로 가서,
엄마 밥 먹여 잘 키워보자!
90년도로 시간을 돌린다면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걍 저 영등포에서 쭉 키워주십쇼...
무튼,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기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다.
내 부모님은 멀쩡한 터전 다 버리고
딸래미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덜컥 경기도 신도시로 이사를 했다.
(엄마...거기 말고 조금만 더 동...동쪽으로...)
이사를 간 아파트는
서울 촌뜨기 부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뜨거운 온수와 훈훈한 난방,
아니, 바퀴벌레가 없다니.
여기서 끝이 아니지,
2222세대의 대단지 아파트!
4호선 역세권!
아파트 상가가 백화점이고
뭐? 수영장이 있다고?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린다.
부동산은 입지다.
어디 붙었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나의 부모님은
딸이 영재일지도 모른다는
(헛된) 설렘으로 그곳에서도
참 열심히 살았다.
요리사였던 아버지는 칼 대신
목수가 되어 망치를 들고 다녔다.
돈이 필요했지만,
일요일에는 반드시 쉬었다.
가난한 형편으로
가방끈은 짧았지만
누구보다 명석한 두뇌를 가졌던
나의 아버지.
다독을 했고, 한번 본 책은
잊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식에게 수학을, 영어를
가르쳐 줄 지식이 없었다.
뼈 빠지게 돈 벌어
수영, 피아노, 웅변, 윤선생....
나의 재능을 알아봐 줄
'선생'을 찾으려 애썼다.
아빠는 내가 학원에 가지 않는
일요일이면, 꼭 함께
자신의 힐링장소이자
아파트 뒷편에 자리잡은
'3층짜리 대형서점'에 데리고 갔다.
롸잇테리언은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왜 좋아했을까?
정말 영재였나?
책을 좋아한걸까?
아주 어릴때부터 시작해서
K-장녀가 된 이후에도 이어진
아빠와의 서점 데이트.
장난끼 많은 남동생들 떼어놓고
외출할 수 있는
일요일 아침의 서점 나들이는
그 자체로도 해방이었지만
하나의 치트키가 있었다.
당시 그 서점 옆에는
'빅웨이' 라고 하는 햄버거집이 있었다.
서점을 지나치는 모든 이들이
들어올 수 밖에 없는 냄새를 풍기던 곳.
그 따끈따끈한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를 먹을 수 있는
특권이 내겐, 있었다.
나.에.게.만 있었다!!!
(아빠는 요리사로서의 정체성을
집에서 살리고 싶어하셨기 때문에
치킨, 피자, 햄버거, 빵 등을
늘 집에서 만들어주셨음.)
그런데 서점에 따라가면?
사제!!! 사제를 먹을 수 있지 말입니다!!!
강렬한 MSG의 맛은
롸잇테리언의 마음을 훔쳐버렸다.
서점은 뭐다? 햄버거다.
아빠는 서점에 가면
본인의 책을 한 권 사고,
내가 한 주 동안 읽었으면 하는
책(논리야 놀자 st) 을 한 권 사고,
내가 보고 싶어하는 책을
한 권 사주셨다.
(주로 바보특급, 최불암시리즈)
대신 아빠가 사 준 책은
매 주 한 줄이라도
독후감을 적도록 했다.
(읽는 척만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일기대회 1등, 전교 독후감 대회 1등,
어린이 글쓰기 대회 장원,
어린이 기자단을 거쳐
결국 문학특기자로,
예대로,
방송작가로,
나를 길러냈음에
추호도 의심이 없다.
ps.
돌아가신 아빠께
여쭤보고 싶다.
아빠,
그러니까...
햄버거는 연막작전이었나요?
오래전,
제가 예대에 입학하던 날,
철없던 열아홉 딸은
가족 누구도 오지 말라고
매몰차게 말했지만
돌아가신 뒤
사실
너 대학에 입학하던 날
아빠가 몰래 갔었노라고,
등록금 대출 받게해 슬퍼했다고,
그래도 그렇게 좋아하더라는
엄마의 말에 많이 울었어요.
18년 동안,
아빠 빈자리 채우느라
대신 등골 좀 휘었습니다.
햄버거 값, 충분히 갚았죠?
이제 진짜 제 글을 써볼게요.
아빠도 좋아할 거라고 믿어요.
아빠는, 내 첫번째 스승이었고
독자였으니까.
하여간...
햄버거 연막작전 덕분에,
글써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