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랑 딸둥이 육아하기 <최종회>
<친정엄마와 딸둥이 육아하기>는
나를 치유하기 위한
글쓰기였다.
산후우울증과 번아웃으로
어지럼증과 이명이 심했고,
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커지는 책임의 무게에
질식할 것 같을 때쯤
살기 위해
내 안의 이야기를
털어내고자 했다.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육아, 그리고
매일 살 부비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써 보자.
남다른 필력이 있는 것도,
주옥같은 문장을
써내는 것도 아닌데,
재주도 재미도 없는 글에
많은 엄마(아빠)들의 공감이
눌린 것은
우리가 함께
육아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중이기 때문일까요?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수상을 하거나,
거창한 제안이 온 것이 아니더라도
내 이야기를 통해
위로 받는 분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올해 가장 큰 수확이다.
정말, 과분한 수확.
책이 아니어도 좋다.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면
그 글은, 반드시 힘이 있다.
몇 번의 이사를 반복하면서도
늘 챙겨다니는 일기장이 있다.
초등학교 3,4학년 때의 일기인데
활자의 힘이란 대단해서
무려 30년 가까이 지난
노트 속의 기록들이
눈 앞에 살아숨쉬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30년 후에 읽는다면
나는 어떤 마음일까.
나는 지금의 엄마보다
더 나이가 많은, 일흔을 앞둔
할머니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
엄마는 아흔을 넘긴
호호 할머니겠구나.
(날...알아보긴 할거지?)
그리고 우리가
모든 걸 바쳐 키워낸
딸들은 서른 셋의
어엿한 어른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
지금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하길, 이라고 적으려다
키보드 위에서 손을 한참 멈추었다.
가는 세월 막을 수 없고,
인생의 풍파 앞에서
스러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생이라면
우리가 이렇게 젊었고,
찬란하게 살았고,
뜨겁게 사랑했다는 사실을
잊지는 말자, 라고 쓰는 편이
좀 더 현실적이지 않나 싶어서.
아니.
그냥 '사랑해' 라고 하면
될 일이긴 하지.
서른 여덟,
나의 모든 것이었던
내 딸들과,
당신의 모든 것이었던
나와,
내 딸들의 모든 것인
당신.
우리가 함께한 모든 날들은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당신과, 나와, 내 딸들을
연결하는 고리가 될 것이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영원히 남아있을 온기.
먼 훗날, 우리가 서로를 떠올릴 때
그리워하기보다
행복한 기억들을
먼저 떠올릴 수 있길...
간절히 바라.
사랑해. 사랑해 엄마.
ps.
소박하고 부족한 '타인의 이야기'에
힘을 불어넣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새해에는 다른 시리즈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