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不在)

by 롸잇테리언

‘시장 바닥’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딘가 묘하게 뉘앙스가 별로인 듯하면서도, 내겐 가장 편안하고 정감 있는 공간이다. 나의 부모님과 할머니는 모두 시장 장사꾼이었다. 할머니는 사당동에 있는 재래시장에서 채소, 과일을 팔았고, 부모님은 영등포 시장통에서 바비큐를 파는 맥줏집을 했다. 연년생인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는 부모님의 가게에 딸린 단칸방에 주로 있었는데, 동생이 태어난 후에는 거의 할머니 손에 자랐다. 할머니는 시장에서 ‘강 씨 할머니’로 통했다. 억척스럽고, 목소리 크고, 깐깐하지만 단골이 많은 할머니. (실제 할머니의 성은 ‘이 씨’였다. 어린 나는 매일 왜 할머니가 ‘강 씨’냐고 물었다고 한다. 우리 할머니는 ‘이 씨’예요, ‘이 씨 할머니예요’ 시장 어른들을 붙잡고 정정 요청을 하고 다녔다고 하니, 어릴 때부터 어지간히 피곤한 성격이었던 듯) 어쨌거나, 사당시장을 호령하던 ‘호랑이’ 할머니를 녹인 건, 바로 나였다. 질척한 시장 바닥을 아장아장 누비면서, 여기저기서 요구르트 삥을 뜯고 다녔다는 세 살의 나. 생강 빻는 기계에 등을 기대고 인형처럼 잠을 자곤 했다는 나. 시장이 문을 닫는 밤이 되면, 방앗간에 모여 비빔밥에 돼지껍데기, 막걸리를 나눠 마시는 시장 상인들의 무릎을 요람 삼아, 나는 자랐다.


시장은 ‘먹고사니즘’이 얼마나 고되고, 치열한 일인지를 내 DNA에(?) 각인시켰다. 손이 부르튼 할머니가 구시렁대는 아줌마들이랑 실랑이를 벌이며 겨우 콩나물, 시금치를 팔아 버는 동전들. 종이 인형 놀이에 한창인 내 얼굴 옆에 놓인 돈 통으로 때 묻은 동전들이 쉴 새 없이 던져졌다. 할머니는 하루에 두어 번씩 나를 보고 동전을 쥐여주며 시장 입구에 있는 ‘말’을 타고 오라고 했다. 할머니는 ‘말 아저씨’랑 친해 보였지만 노래 세 곡이 끝나면, ‘말 아저씨’는 할머니한테 가서 오백 원짜리 동전을 더 가져오라며 매몰차게 나를 끌어내렸다. 그래도 시장에서의 생활은 늘 흥미로웠다. 먹을 것이 풍족했고, 지켜야 할 규율이 마땅히 없었고, 애써 갈아놓은 생강 양동이에 주저앉는다거나 하는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혼날 일도 없었다.

그러나 어린 내 곁에는 부모님이 없었다. (안다. 자식 떼어놓고 밤새워 일하는 부모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하지만 나는 고작 네 살이었다) 훗날, 할머니의 품을 떠나 ‘우리 집’으로 가게 되었을 때 나는 이가 다 삭아있었다. 밤마다 엄마를 찾으며 우는 통에, 할머니가 요구르트를 젖병에 담아서 꽤 오래 먹였다고 한다. 엄마는 나 때문에 치과에 갖다 바친 돈이 아파트 한 채는 될 거라고 웃었지만 나는 한 번도 웃지 않았다.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 마련한 ‘우리 집’은 내가 살던 시장 바닥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동안의 미안함을 한방에 보상하겠다는 듯, 방문을 여니 침대와 번듯한 책상, 디지털 피아노까지 놓여있었다.


처음으로 ‘침대’라는 곳에서 잠을 자면서 나는 시장의 매캐한 생강 냄새를 떠올렸다. 놀이터에서는 ‘말 아저씨’를, 욕조에 가득 담긴 따스운 물을 보면서는 할머니의 관절약인 ‘지네술’과 ‘파스 냄새’를 떠올렸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너무 아는 게 많은, 다섯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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