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밥그릇 차고 태어난다는 말

by 롸잇테리언



‘오늘은 또 어디 장터가 열렸나.’ 장터는 SNS에서 댓글과 조회수가 높은 게시글을 뜻한다. (‘장터’라는 이름이 붙여진 까닭은, 이런 게시글에 모이는 사람들에게 영업하기 위해 귤, 그릇, 인테리어를 비롯한 온갖 판매자들이 홍보 댓글을 달면서 일종의 밈이 되었기 때문) ‘장터’의 요건을 갖추려면 당연히,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내 시간을 쏟아 열변을 토할 만큼의 주제여야 한다. 한마디로,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싸움터’여야 한다는 뜻.


SNS ‘장터’에선 매일 같이 시답잖은 싸움이 일어난다. 최고의 소재는 역시 시댁과의 갈등이거나, 우리 부부 중 누가 옳고 그른가에 대한 판결 요청, 영어유치원을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같은 것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스테디셀러는 단연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이다. 삼포를 넘어 오포, 아니 ‘ALL 포’라고 자조하는 청년들은 ‘구세대’의 욕심과 ‘라떼 스토리’에 두드러기를 일으키고, ‘구세대’들은 요즘 젊은것들은 손 안 대고 코 풀려고 한다며 몰아세운다. 나는 어느 쪽이냐고? 글쎄, 스스로가 구세대인지, 신세대인지 모르는 상태로 이쪽저쪽을 오가며 줏대 없이 ‘이기는 편 우리 편’을 외치는 방구석 눈팅러라서.


‘일기도 돈 안 받고 쓰지 마라, 입금 안 되면 댓글도 달지 마라.’는 방송작가 선배들의 농담 같은 진담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으며 자란 터라, 어지간해서 참전하는 일은 없었다. 싸움은 역시 구경이 제맛이지. 나의 신경을 긁고 지나간 ‘훈장님’을 만나기 전까진 그랬다. ‘훈장님’의 프로필 사진은 이름 모를 난이었다. ‘훈장님’은 글에서 젊은 세대를 탓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결혼은 했는데 애를 낳지 않는 모든 ‘딩크족’을 향해 날을 세웠다. 장터가 열렸다. 많은 젊은이가 글에 대한 반박을 이어갔는데, ‘훈장님’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이렇게 밀릴 일인가. ‘아이를 낳기만 하면 다인가요, 재우고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가르치고 까지가 부모의 역할인데 아직 준비가 안 된 사람들도 있지 않겠어요.’ 댓글을 등록했다. 잠시 뒤, 그는 내 댓글에도 대댓글을 하사했다. ‘자기 밥그릇은 다 차고 태어납니다.’ 피가 파랗게 식는 기분이었다.


정확히 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평생을 자식들한테 기대 사셨던 어느 친척 어르신으로부터. ‘얘가 애를 안 낳아서 사돈 볼 면목이 없다’라는 친정엄마의 토로에 “일단 낳으면 다 알아서 큰다. 자기 밥그릇은 다 차고 태어난다”라며 잔소리를 얹던 큰고모. ‘오빠는 자기 밥그릇도 모자라 부모 밥그릇까지 챙겨서 태어났나 보네요’ 댓거리를 하고 싶은 욕망을 꾹 누르며 좋아하지도 않는 사과만 밀어 넣었던 그날. 결국 체해 활명수를 물처럼 먹고, 손가락을 따고, 난리를 쳤던 날. (그 뒤로 사과를 거의 먹지 않게 되었다)


먹고 살기 힘든 시대였고, 자식이 그대로 노동력으로 환산되는 시대를 살아온 분이라 그렇겠지, 넘기려 해도 그 말은 내 안에 의문으로 남았다. 당장 내 주변만 둘러봐도, 낳아준 도리를 요구하는 부모치고 자식을 책임감 있게 길러낸 분들은 드물었다. 당신의 방관과 무지로 인해 인생 난도가 확 올라간 자식들의 고통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그들은 내게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차고 태어난다.’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그럴수록, 내 세계는 더 견고해졌다. 금수저는 아니어도, 밥그릇에 밥은 담아줄 수 있는 부모여야지. 내가 짊어진 짐을 나누기 위해 누군가를 등장시켜서는 안 돼.

‘그래서 그 밥그릇에 밥은 누가 채워주나요?’ 대대 댓글을 단 뒤, 훈장님을 곧바로 차단했다. 이 일은 나 스스로 ‘아이를 책임질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남의 밥그릇에 밥 채울 결심’을 하는 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지만.

작가의 이전글너는 왜 애를 안 낳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