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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pr 27. 2024

사람들은 어떻게 여행하면서 글을 쓰는 걸까?

여행하면서 글쓰기

시어머니와 시댁 어르신 분들과 일주일동안 멕시코에 있는 리조트에 머물게 되었다. 신랑은 일 때문에 여행중이라 시댁의 가족여행에 나만 가게 되었다. 시댁 어르신들의 대부분은 은퇴하셨고 주로 광동어로 대화하시니 나는 구석에서 조용히 책 읽고 글을 쓰면 되겠다 생각했다.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도록 아이패드와 연동 가능한 블루투스 키보드까지 준비를 했는데, 이럴거면 차라리 랍탑을 가져갈 까 싶었다.


리조트 삼일 차. 72시간이 흘렀다. 모든게 다 있는 올인클루시브 리조트에서는 걱정이라곤 할게 없었다. 매일매일이 단조롭다. 아침 일곱시에 일어나 조식을 먹고, 수영장에 가서 물놀이를 하다가 지치면 룸으로 돌아와서 씻고 쉬었다가, 저녁먹고 리조트에서 하는 쇼를 봤다가 룸으로 돌아가서 잔다. 이렇게 반복적이고 평화로운 여행에서 글이라고는 고작 일기 세 줄을 썼다. 여러가지 변명을 대가며 아이패드를 열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어떻게 여행하면서 글을 쓰는 걸까? 온갖 여행기를 읽어보면 작가가 느꼈던 그 때의 감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잘 씌여진 여행기는 나를 그 장소로 데려간다. 내가 아는 지인은 여행을 할 때 마다 연필로 공책에 빼곡히 써내려가며 그의 감정을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기까지 한다.


여행작가 안시내는 글을 쓰기 위해 여행지로 떠난다. 그에게 글이 잘 씌여지는 환경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고 경비가 저렴한 곳에서 그가 영감을 얻는 원천인 여행자들과 쉽게 교류할 수 있는 곳이다. 나는 리조트에서 있으니 시간과 여유는 많다. 주변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속에 구름처럼 천천히 떠다닌다. 딱 적당히 땀이 나지도 않게 따듯한 온도와 일정한 속도로 불어오는 바람이 내 눈을 감게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도 한다. 올인클루시브 리조트이니 돈 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 나는 무슨 문제가 있어서 아직도 글을 안 썼을까?


책 여행의 이유에서 작가 김영하는 거의 모든 글을 한국 집에서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그에게 여행은 ‘현재에 머무르며 잡념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주장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왠지 머리 쓰는 일은 이 날씨 좋은 곳에서 하고 싶지 않았다. 가끔, 돌아가서 곧 시작할 새 직장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머리속으로 계획을 세웠지만, 집에 가서 하지 뭐 하고 생각을 차단했다.


이렇게 생각했어도 이 글은 여행 도중 쓰기 시작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마친다. 여행하면서 짧은 글을 써낸 것 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왜 여행하면서 글을 썼을까? 생각을 담아 두려는 머리를 글에다 비워내려는 습관이 있어서다. 이렇게 양심의 가책을 한 스푼 덜어내었다. 실제로 더 많은 생각을 했고 그 중 몇 개는 메모해 두었지만.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서 발췌한 문장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해 본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능력보다 더 높이 희망하며, 희망했던 것보다 못한 성취에도 어느 정도는 만족하며, 그 어떤 결과에서도 결국 뭔가를 배우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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