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y Sep 07. 2015

나의 시간은 '갑'에 따라 흘러간다?

글밥 먹고사는 일

이 일을 하다 보면 그렇다. 벤자민 프랭클린처럼 시간이 거꾸로 가는 일은 절대 없고, 심지어 2주, 한 달을 앞서 살아가게 된다. 잡지 쪽이 아무래도 그렇듯, 누구보다 먼저 다음 달을 맞이하고, 누구보다 먼저 다음 계절을 맞이한다. 그만큼 더 빨리 시간이 흐르는 느낌이다. 


그렇든 저렇든 이 일을 하면서 시간이 귀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그만큼 잘 알차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한다. 한데 내게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누리기가 힘들 때가 종종(때론 자주) 있다. 왜냐, '갑' 때문에. 을의 시간을 갖는 일은 어쩌면 갑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하하. 


나 같은 을은 갑을 하나만 두고 있는 게 아닌데다 정해진 마감이 있고, 정해진 발행일이 있기 때문에 유난히 더 그렇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얘기를 하는 거다. (물론 진짜 욕 나오는 갑이 있긴 하다. 하지만 내게는 좋은 갑이 더 많다. 그렇다, 이건 자랑이다. ㅋㅋㅋ )

갑이 나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일이 없을 땐 내 시간이 내 시간이다. 하지만 일을 할 땐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얘기지 뭐. 


여하튼, "내 시간을 왜 맘대로 굴려? 어우씨!" 하고 짜증을 내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인 것 같다.


케이스 하나, 

모든 갑이 한데 몰려와 '급하다'면서 주루루루룩 일을 던져줄 때. 

진짜 난감한 상황 되시겠다. 여기선 오늘 교정 봐달라, 쩌어~기선 오늘 원고 수정해달라, 다시 여기선 내일 아침에 최종본 달라 등등. 그러면 나는 그 안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시간을 조정하는 등 난리부르스를 한다. 갑의 업무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갑자기 하루 전에 수백 페이지 자료 주고 원고 한 장에 정리해달라고 하거나, 여유가 있는 작업이었는데 갑자기 오늘 내로 보여달라고 막 떼쓰는 사람도 있다. 모 공공기관 일을 할 땐 '지금 바로' 수정해야 한다고 전화를 해서는 무조건 해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해야 하는 다른 일 따위 갑은 관심이 없다. 물론 갑이 알 이유도 없고. 그래서 원래 하려고 했던 일들도 갑의 요청사항에 따라 마구 바뀌곤 한다. 그럼 나는 나름 효율적이라 세워놓은 계획을 다 뒤집어 엎고 다시 급한 순서대로 조정해야 한다. 머리털 한 개 뽑아서 후 불면 열 몇 개의 내가 나타나는 그런 신공이 필요하다. 하지만 내겐 그런 능력 따윈 없으므로 빠르게 머리를 굴려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수밖에 없다. 

냐하하. 


케이스 둘, 

누가 "언제 시간 돼?"라고 물어볼 때 우물쭈물하다가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나.

나의 경우, 아마도 내 시간이 갑에 의해 흘러간다고 가장 많이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직접 섭외를 해서 일정을 진행하는 경우면 조금 덜하다. 일주일 내내 아무 일이 없는 스케줄이었는데 어느 날 하루면 그 일주일이 꽉 찰 때가 있다. 여기 취재, 저기 취재, 여기 인터뷰, 저기 미팅 등등. 인터뷰이의 일정, 취재지의 일정 등에 맞춰야 하고, 마감 전에 일이 마무리돼야 하므로 쉽게 다른 약속을 잡을 수가 없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땐 더 그랬다. 몇 개 일도 없는데 "저 그날 안되는데요-" 할 수도 없고, 당연히 양해를 구해 약속을 미루거나 하고 일을 해야 했으니까 상대에게도 미안해서 그냥 약속을 안 잡고 마는 편이 심적으로 훠얼씨인~ 편했다. 페북이었나. 그런 글도 떠돌았다. 프리랜서가 친구를 잃는 방법.  

만날 약속을 잡는다. 설레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한다. 일을 마치지 못했다. 친구를 잃는다. 

웃픈 글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잃은 친구가 하나 둘은 아니니 슬프다 슬퍼. 




어떤 작가분은 그냥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여행도 떠나고 하더라. 어차피 들어올 일은 또 들어오게 돼 있다며. 근데 그 말이 맞다는 걸 조금씩 체감하고 있다. 첨이야 불안해서 그렇고, 나중에도 불안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만큼 내가 일을 잘 한다면 계속 들어오게 돼 있으니까. 

그래서 지금은 나도 적당히 조율해가면서 하는 편. 요령이 좀 생겼다고나 할까? 어찌 보면 내 시간을 사수하는 나만의 방법 같은 거다. 

갑과 미리 논의하면서 "가능한 일정을 두 개 정도로 잡아서 알려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하고 "제가 직접 섭외할게요"라고 제안하기도 한다.  막무가내로 요청하는 일을 다 들어주다간 이도 저도 안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그럼에도 하게 될 때가 있..지만ㅠㅠ) 상냥한 목소리지만 딱 잘라 거절하기도 한다. 안 그랬다간 밤새도 일을 못할 판이니까. 

같이 일한 사람과 계속하는 경우가 많은 나는 미리 내 스케줄을 공지하기도 한다. 되는 시간, 안 되는 시간, 어디까지는 해줄 수 있는 지 등등. 내 나름 갑에게도 마감을 주는 셈이다. 그러면 묘하게도 갑이 같이 일정을 조율한다. (물론 이도 저도 다 필요 없고, 내가 갑이라면서 막무가내인 사람들도 있지만 뭐.) 



큰 틀에선 2주고 한 달이고, 격월이고 뭐 갑에 따라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게 내 일이지만, 그래도 그 안에 주어진 시간만큼은 사수하려고 노력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