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밥 먹고 사는 이야기
내가 이 일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 약 4년 전의 이야기다. 뭣도 모르지만 무조건 달려야 했던 그 시절의 좌충우돌. 다시 생각해도 눈물이 찔끔, 나진 않고 그냥 어이가 없다. 부끄럽고. 깔깔.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네)
눈을 뜨자마자 어딘가에 던져진 휴대폰을 집어 든다. 프리랜서라는 타이틀을 달고 난 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 생활리듬이 되었다 보니, 이른 아침부터 활동하는 대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카톡이며 트위터며 이메일까지 온갖 알림이 잔뜩 들어와 있다. 그중, 번쩍하고 나의 눈을 뜨게 한 것은 얼마 전 이력서를 보내 두었던 모 잡지사로부터 온 메일 한 통. 두근두근하며 메일을 열었다.
"보내주신 인터뷰 기사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이번 호 원고 청탁을 의뢰하고자 합니다……"
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나는 호들갑을 떨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은 늘 그려오던 꿈의 한 조각이었기에 이 메일 한 통에 나는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렇게, 나는 프리랜서 기자로 한 걸음 내딛게 되었고 하나하나 맡아 진행하는 일이 늘어나게 됐다.
(신났다~ 아싸~ 축배를 들라~)
그런데 이걸 ‘새내기’답게라고 표현해야 할까. 일이 들어오니 좋아서, 신이 나서 하긴 하는데, 좌충우돌 말 못할 고민이 많아도 정말 너어~무 많은 거다. 애초에 일감을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았지만, 단행본 형태의 출판물을 계약하는 과정 등에서 발생하는 이해 안 되는 일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심지어 원고 청탁이 들어왔는데 원고료가 책정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감이 닥쳐와 일은 시작해야 하고, 내 노동의 대가임에도 원고료를 당당히 요구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바보, 바보 이런 바보가 없지), 심지어 담당 편집 에디터가 해야 하는 레이아웃 작업까지 하는 경우도 생겨버렸다(간혹 필요에 따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원고 하나 맡기면서 저렇게까지 시키는 곳은 잘 없다). 원고 하나 보내고 나니 다른 원고가 마감이고! 맡은 기사는 얼마 안되는데, 이 곳 저 곳에 내가 너무 혹사당한다는 생각이 꼬물꼬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다크서클이 약 5만 킬로미터쯤 내려왔을 무렵,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게 일침을 가해줄 수 있는 정신적 지주인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이 답답함을 어디에다 하소연하고 묻지 않는 이상 출구는 보이지가 않을 듯 싶었기에. 그녀는 바쁜 와중에도 흔쾌히 나를 만나주었다. 나는 그녀를 만나자마자 “어뜨카쥐”를 외쳐되는 납득이가 빙의되어 미주알고주알 하소연을 시작했다.
"선배는 도대체 처음 일 시작할 때 어땠어요? 나처럼 이랬어요?
일감 하나 건지기 이렇게 어려운 거예요? 내가 바본거야?
아니 계약 자동갱신이 말이 되는 거예요? 원래 자기네는 그렇게 했다고 하니까…
찢어진 청바지 입은 아가씨처럼 써달라는데, 선배는 이해가 돼요?
아니 글 쓰는 건 또 왜 갑자기 이렇게 어려워지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잘 썼다고 생각이 들어도 독자는 또 다른 얘기고.
이건 뭐 기준이 없잖아 기준이.
무슨 에디터가 기획도 안 해주고 나더러 알아서 하래,
그래 놓고 나중에 마음대로 고치면 나 화내도 되는 거?
근데, 원래 내가 이렇게까지 해줘야 하는 거예요? 나만 몰랐던 거?
그러면, 이만큼 하면 나 원고료 더 받아야 하는 거 맞죠?
근데 나 왜 말을 못하겠지?"
한참을 들어주던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괜찮다고 나를 다독였다.
‘나도 그랬어, 몇 번 더 엄한데 머리 박아보고 그래야 정신 차리는 거지.’
오지랖.
그 세 글자에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나, 정말로 오지랖 떨다가 딱 걸린 거였다. 그녀는 아무도 나에게 말하지 않았던 그 세 글자를 콕 집어 얘기해 준 것이었다. 그리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니년이 제일 불쌍해, 알아?”
뭐시라. 니 년이 제일 불쌍하다고?
욕 같은데 묘하게 쾌감을 주는 저 한 마디를 던진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 당연한 거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대신해주는 마음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니 밥그릇은 네가 챙겨야 하는 거야. 생각해봐, 니 이름으로 글이 나가는데 콘셉트 불분명해서 글 이상하게 나와봐, 에디터가 “기자님, 미안해요” 이럴 것 같아? 아니라고, 너한테 일 다시 안와. 니 글은 니 얼굴이야. 그리고 자신감을 갖고 당당히 요구해! 원고료 제대로 못 받으면 너 생활비는, 카드값은 어쩔 건데? 그리고 뭐, 편집에디터가 다크서클 10km 내려온 얼굴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럼, 너는? 니 다크서클은 지금 어디까지 내려왔는지 거울 좀 보지 그래. 이제 좀 알겠냐? 누가 제일 불쌍한지? 니년이 제일 불쌍하다고. 명심해, 내 말."
그녀를 만나고 난 후, 조금은 정신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몇몇 건은 원고와 함께 메일을 보내며 요청할 내용들을 명확히 문서로 남기기로, 이미 진행된 몇몇 건은 잘 마무리하고 다음부터 세팅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섣불리 시작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여전히 잘 모르겠고 이래도 되는 건가 싶고 이 정도는 해줘도 괜찮겠지 싶겠지만, 그때마다 나는 내 안에 품은 언니에게 SOS를 요청하기로 했다. 청탁서를 받을 때, 원고료를 상의할 때, 편집장을 만날 때, 모든 상황에서 나의 쓸데없는 오지랖이 꼬물거리는 시점에 꼭 등장해 달라고, 내 귓가에서 맴맴 거려 달라고.
프리랜서라는 네 글자가 주는 부담감이라는 것을 예상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막상 현실로 닥쳐오면 몇 배로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생활도 할 만큼 했고 사람들도 만날 만큼 만나고 다녔기에 어느 정도 여유로움으로 단장은 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새내기는 새내기. 한동안은 내면의 어뜨카쥐?라는 불안이 삐집고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누르기는 힘들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니년이 제일 불쌍해”를 외쳐줄 언니가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
함께 공부했던 아이들과 우리끼리 하나 만들어 보자고 했던 잡지에 썼던 글이다. 프리랜서를 주제로 만들었던 잡지였는데(우리끼리 개인 소장했다), 인터뷰 기사 말고 뭘 쓸까 고민하다가 프리랜서 글쟁이로 걸음을 뗀 우리들의 고민을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물론 글 속 저 언니의 조언대로 모든 일이 항상 명확하게 진행되진 않는다. 믿고 가야 하는 일도 생기고, 그러다 똥 밟는 일도 생기고. 똥 밟았더니 거기에 더 똥을 부어주는 경우도 있고. 그러고 나면 하늘도 가엾게 여기셨는지 즐겁고 재미 난 일을 던져주시도 한다.
그렇다고 처음처럼 지나치게 오지랖을 떨진 않는다. 오지랖 떨어봐야 프로들의 세계에선 민폐만 된다는 걸 깨닫기도 했고. 하지만 완전히 오지랖을 버리진 않았다. 적당한 오지랖은 갑이 나를 믿고 계속 가고 싶게 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니까. 그리고 함께 일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갈 수 있으니까. 게다가 맡은 일만 하는 사람보단, 맡은 일에서 초큼이라도 더 얹어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인간의 본성 아니던가.
시장의 불황은 단 한 차례도 좋았던 적이 없다. 어느 바닥이고 마찬가지. 그러니까 내 밥그릇은 내가 잘 챙겨야 한다는 말씀. 되시겠다. 니년이, 니놈이 언제나 제일 불쌍한 거라는 사실.
추신. 오지랖은 피로를 몰고 온다. 니년이 제일 불쌍하다는 건 기억해야 할 말이긴 하다. 하지만 새내기 자유기고가라면 새내기답게 주어진 일은 감사하게 할 줄도 알아야 한다. 처음부터 너무 돈에, 난이도에 따라 일을 가려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