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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ul 24. 2015

인터뷰.

그 여자의 생각


매거진 <AROUND>에서 이우성 시인(또는 기자)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중 인터뷰에 관한 그의 이야기에 시선이 멈췄고, 한참을 생각했다. 나 또한 이 일을 시작하고부터 그런 고민을 계속 해 왔으니까.



인터뷰가 왜  좋아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사실 지금은 별로 안 좋아하고, 한때는 좋아했어.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글이 세상에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인터뷰가 조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사람에겐 Fact가 없잖아. 사람에 대해 쓴다는 것은 어찌 됐건 쓰는 이의 가치관이 포함되어야 하니까. 그렇다 보니, 내가 본 사람에 대해 내 입장을 가지고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지. 지금은 별로야. 내가 쓰고자 하는 것과 인터뷰이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 사이에 늘 간극이 있어.

최근 겪은 일 때문에 아마도 더 와 닿았는지 모르겠다. 저 말이.


어떤 이를 인터뷰하고 원고를 썼는데 글이 나간 후, 자신의 생각대로 원고를 바꿨으면 좋겠다는 요지의 집요한 전화와 메일, 문자가 거듭 왔고 결국 내게 일을 의뢰한 회사는 그 사람이 드러내고자 하는 모습만으로 원고를 수정해 다시 내보내야 했다.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던 그 글은 인터뷰의 의미가 무색한, 인터뷰이 마음에 드는 자기소개 글이 돼 버렸다.


이우성 시인이 말했던 '간극'.

몇 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계속 느꼈던 것인데, 눈 앞에 마주했다.

마주하고 보니 기분이 참 좋지는 않더라. 애써 좋을 필요도 없고, 애써 나쁠 필요도 없겠지만. 묘했다.

아마도 그나마 내 글이라 생각했던 걸 빼앗긴 기분이 들었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내 일의 특성상 대부분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글을 기획하고 써야 하다 보니 그래도 인터뷰만큼은 내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에 대한 fact를 기반으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그 사람에 대해 쓰는 거니까.


끝나지 않는 고민의 결론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사이의 간극은 좁혀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문제는

인터뷰이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는 것.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인터뷰를 쓰는 것 말곤 답은 없다.

최대한 솔직하게 좁힐 수 없는 간극을 최대한 좁혀보면서 밸런스를 맞춰갈 뿐.



덧.


나는 그래도 아직은, 인터뷰가 좋다.

한 발짝 앞으로 내딛었다가 또 뒤로 한 걸음 물러서기도 하면서 서로 균형을 맞춰 내가 생각하는 당신과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을 하나에 담아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테니까.


누군가에게는 냉정한 시선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포장이, 또 누군가에게는 적당히 따뜻하면서 차갑게 꼬집어주는 글이 좋은 글일 터다.  뭐든 적당한 게 좋다지만 글이라는 것 또한 지극히 취향의 문제라 '정답은 000'이라고 말하긴 어려운 거니까. 나는 그저 계속 고민하고 쓰고, 읽고, 생각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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