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또는 에디터)의 애,환?
000 편집실의 000입니다. ㅁㅁㅁ 칼럼 원고 청탁을 드리고 싶은데, 가능하실까요?
통으로 일을 맡아 진행할 때 자주 하게 되는 말이다. 사보든, 잡지든 한 권의 책이 나오려면 다양한 필자의 글이 필요하다. 그래서 각 칼럼의 성격에 맞는 필자를 찾고, 그들의 글을 읽고, 전화나 메일을 통해 의사를 확인하고 자세한 내용을 주고받으며 칼럼을 설명하고, 원고를 청탁하게 된다. 취재가 필요할 땐 프리랜서 취재기자(자유기고가)들에게 맡기고, 그 외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나 전문 칼럼니스트에게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글밥 먹고 살기, 그러니까 어지간한 사람들의 경우 단순히 글만 써서 먹고 살기가 여간 쉽지 않은 탓에 매체를 기획하는 일도 함께하는 편인데(사보나 기업체 또는 재단에서 발행하는 단행본의 경우 많이 그렇게 한다), 이 경우 기획자의 고충도 더해지게 된다. 물론 한 편의 원고를 쓰더라도 원고의 컨셉(콘셉트가 바른 표현이겠으나, 그냥 컨셉으로 쓰기로 한다. 콘셉트라고 쓰면 잘 안읽혀-_-;)을 생각하고 짜임을 구성하게 되니 기획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됐든, 기획자가 하는 일은 기획만 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기획을 하고, 진행을 하고, 원고를 쓰기도 하며, 받은 원고를 에디팅 하기도 한다. 필자를 찾고 섭외하는 일 또한 기획자의 일에 포함된다. 나는 필자를 섭외하는 일보다 차라리 건별로 청탁을 받아 쓰는 일이 쉽다(글을 쓰는 일이 쉽다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고 생각한다. --- 요 며칠 믿는 필자에 발등을 찍혀서 욱하는 마음에 투덜거리고 싶음이 분명하다. ---
여하튼 필자를 섭외하는 데는 여러 번의 고비가 있다. 섭외 전, 후로.
첫 번째 고비, 맞는 필자 찾기.
아무리 글을 잘 쓴다고 해도 매체의 성향과 칼럼의 특성에 맞지도 않는 사람을 쓸 수는 없는 터. 게다가 나 또한 좋아하는 글의 취향이 있다 보니 객관적이지 못하고 삼천포로 빠져서 글을 보는 경우도 많다. 또한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무리가 있기도 하고.
두 번째 고비, 원고 청탁에 관해 문의하고 섭외하기.
찾고 보고 섭외하고 싶은 필자를 찾았다면 연락해야 하는데, 연락처라는 것이 아무래도 개인정보이다 보니 쉽게 알 수가 없다. 책을 낸 사람은 출판사에 물으면 되고, 아는 이가 있으면 부탁해도 되고, 공식 홈페이지나 블로그, SNS나 회사가 있는 경우 그 쪽으로 연락을 취할 수도 있다. 진짜 문제는 힘들게 연락처를 알아냈는데, 일정이 맞지 않거나 거절당할 경우 정말 눈물이 난다. 매체 파워가 없으면 아무래도 거절당하기도 쉬운 게 사실이고 ㅠㅠ
진짜 큰 고비, 섭외 후 필자의 무책임함을 맞닦뜨렸을 때.
섭외를 마쳤더라도 힘든 고비는 언제나 남아있다. 필자에게 내가 돈을 주고 원고를 받는 일이지만, 나 역시도 좋은 원고를 받아야 하는 입장인지라 정말 힘든 건 필자 섭외 이후일 수도 있다. 특히 필자가 무책임한 경우, 그로 인해 문제가 생겨도 해당 필자를 섭외한 것이 나인지라 어디에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
무책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질 수 있는데, 빈번한 일은 마감 안 지키는 일. 마감을 지키는 일은 일의 종류를 막론하고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열흘 전에 A4 한 장 분량의 원고를 청탁했는데, 마감을 지나고, 또 지나고, 또 지나서야 받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마감이 늦을 것 같다면 하루 전에라도 양해를 구할 수 있지 않나 싶은데, 내가 마감일자가 지나고서 연락을 해도 그제야, '아 맞다'하는 경우도 있다. "내일 아침까지는 꼭 드릴게요"를 대략 세네 번쯤 듣고서 겨우 원고를 받은 적도 있다. 나에게도 마감 시한이 있는지라,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원고를 받아 매체 형태에 맞춰 다듬고 디자인 팀에 넘기고, 교정을 보고 하는 과정들이 필요한지라, 원고 마감이 늦으면 똥줄이 탄다. (이럴 땐 정말 필자가 미워 죽겠다고 생각하고는 나는 어디에서 그런 필자가 되지 말아야지 다짐하게 된다.)
또 다른 건, 엄청난 짜깁기를 마주할 때. 기획자의 입장에서 매체의 틀에 맞게 에디팅은 꼭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라 분량을 줄여야 하기도 하고, 가독성을 위해 단을 나눠야 할 때도 있고, 사실 확인은 필수이기에 원고에 들어간 팩트를 찾아 대조하고 확인해야 한다. 현장에서 발로 뛰며 취재한 원고일지라도 오타가 있을 수 있으니까.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제법 많은 베끼기와 짜깁기를 발견하게 된다는 거. 최근에는 모 신문사의 기획기사를 2/3 이상 그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붙여다 놓은 필자도 있었다. 관련 분야에서 꽤 오래 일을 했고 책도 많이 낸 사람이었는데 팩트가 틀리는 일은 다반사고 이번엔 이런 문제까지 발생했다. 참고하는 것과 베끼는 것은 매우 다른 일이다. 참고하느라 자료를 찾아봤을 수는 있지만 어떻게 그런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붙여넣기를 한 원고를 보낼 수가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한 문장의 베낌도 허용되어서는 안되겠지만, 한 번 정도는 주의를 주고 당부를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베낌이나 일부 표절의 경우가 반복된다면, 아무리 연재하기로 했어도 필자를 바꿀 수밖에 없다. 문제가 생길 소지를 그대로 둘 수는 없으니까. 그럼 또 섭외의 고비 고비를 넘기고 넘기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으아. >_</!!!!!!!!!!
제대로 된 글을 받지 못한다면 칼럼의 기획 의도, 매체 설명 등이 명확히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기획 의도는 기획자가 제일 잘 안다. 그러니 단 한 줄이어도 명료하게 기획의도가 전달됐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더불어 매체 설명도 정확히 해줘야 한다. 어떤 매체이고, 어떤 목적으로 발행되는지, 주 독자층은 어떻게 되는지가 이에 해당된다. 주 독자층이 40-50대 아저씨인데, 주부를 타깃으로 한 글을 받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가령 핫한 맛집을 소개한다고 해도 주부들이 좋아할 메뉴와 아저씨들이 좋아할 메뉴, 학생이 좋아할 메뉴가 다 다를 테니까.
글 쓰는 사람은 꽤 많다. 잘 쓰는 사람도 정말 많다. 그런데도 쉽지 않은 게 필자를 섭외하는 일인 것 같다. 뭐, 내가 못해서 힘든 때도 있었다. 처음엔 기간 내에 필자를 섭외해야 한다는 압박에 제대로 보질 못했다. 일이 조금 익숙해지고부터는 못해서 힘든 때도 있었고, 취향의 문제, 일정의 문제로 힘든 때도 있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일이 개중에 제일 많긴 하다. 그래도 책임감 있고 자기 글을 아끼는 좋은 필자들이 더 많았으니 괜찮다,고 위로하며 또 필자를 섭외하러 간다.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