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y Jul 30. 2015

다이어트를 못하는 어떤 여자의 비겁한 변명,정도.

그 여자의 끄적임


살 못 빼는 비겁한 변명 하나,

“이게 다 그녀의 소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작은 2008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그녀의 소설을 만났던 그해 겨울, 그 이후부터 나는 ‘살 오름’과 끝없는 투쟁을 벌이게 된다. 이상문학상 수상작 모음집은 늘 사서 읽는 것 중의 하나인데, 그해(32회) 대상으로 선정된 작품이 권여선 작가의 <사랑을 믿다>로, 두 남녀의 어긋난, 시간차 실연에 대한 이야기였다. 담백한 문체로 고백하듯 가감 없이 솔직한 감정을 풀어낸 것이 인상 깊었다. 꽤나 뜨거웠던 사랑에 실패한 직후였던 만큼 사랑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했던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 읽었더랬다.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안동소주에 대한 표현이었다. 단순히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소재 중의 하나일 뿐이었는데 그 문장을 읽는 내 입에는 침이 고이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녀가 따라놓은 술을 마셨다.
싱거운 맥주 맛 속에 뾰족한 심처럼 독한 안동소주 향이 박혀 있었다.

–권여선, <사랑을 믿다> 중에서

아니, 뾰족한 심처럼 독한 안동소주라니! 그래 봤자 술일 텐데 뾰족한 심을 가지면 얼마나 가질 것이라고 이렇게 표현했단 말인가. 나는 궁금했다. 그래서 얼른 슈퍼에 가서 맥주를 사왔고 집 안 진열장에 모셔져 있던 안동소주를 개봉했다. 그리고 섞었다. 톡 쏘는 맥주의 탄산에 묻힐 법도 한데, 은은한 향이 피어나는 것이 묘했다. 그렇게 호기심에 한 모금, 두 모금 삼켰다. 물론 안주도 함께였다. 책 속에 등장했던 연탄향이 베어 있는 제육 반 오징어 반의 술안주는 아니었지만 새콤달콤 무쳐낸 골뱅이도 한 입, 두 입 나와 함께했다. 그렇게 그날의 밤이 흘러갔다. 왠지 그 밤, 실연의 상처도 아문 것 같았다. 물론 나의 친구는 내가 그냥 술을 먹고 싶었기 때문에 작은 문장에도 반응한  것뿐이라고 말하지만.



살 못 빼는 비겁한 변명 둘,

음식 한 접시의 행복, “망했네, 망했어. 다이어트.”


그날 이후로 나는 유난스럽게 음식을 소재로 한 에세이며 소설들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맛있는 문장이 가진 치유의 힘을 믿으면서 말이다. 음식을 표현하는 달콤하고 쫄깃하고 짭쪼름하며 칼칼하기까지 한 문장들은 꽤 많았다.  

그중에서도 맛있는 책 이야기를 하는데 무라카미 하루키를 빼놓으면 아무래도 섭섭할  듯하다. 나는 그가 그렇게 맛깔 난 문장을 쓸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요리를, 음식을 즐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수필집 중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다룬 것으로 좋아하는 음식을 즐기는 방법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일상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하는 ‘두부’로 풀어낸 네 편의 이야기가 인상적인데, 그가 얼마나 두부를 좋아하는지, 두부 한 모가 그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일이 끝날 무렵이면 저녁 때가 되고 집 밖으론 두부장수의 자전거가 지나가자 여자는 머리칼이 흐트러진 것을 걷어올리면서 “두부장수 아저씨!”하고 부른다. 그 미모의 미망인은 두부를 두 모사 가지고, 한 모에 파와 생강을 곁들여 맥주와 함께 내 앞에 내 놓는다. 그리고 “우선 잠시 두부하고 들고 계세요. 금방 저녁식사를 준비할게요”와 같은 애교 섞인 말을 한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중에서

‘두부 한 모가 뭐 별거라고’ 하겠지만, 그의 글을 읽는다면 두부 한 모로 충분히 행복한 저녁을 보내는 그가 부러워 아마 당신도 두부를 사러 나가지 않을까? 나는 그가 부러웠다. 그래서 냉장고에 있던 두부 한 모를 꺼내 뜨거운 물에 데치고는 슥슥 썰었다. 그 위에 신김치라는 내가 좋아하는 양념도 하나 얹어 우걱우걱 먹어치웠다. 두부 한 모가 나를 행복하게 했던 저녁이었다.

그렇게 내가 책을 읽으며 입맛을 다시는 횟수는 늘어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치유를 빙자해 그 맛을 검증하는 실행의 횟수도 함께 증가했다. 자연히내목의 주름은 짙어져만 갔고, 아무것도 잡히지 않던 허리춤에 묵직한 것들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속옷 사이로 삐져나오는 살들에 좌절하는 것은 이제 일도 아니었다.

물론, 간혹 살이 빠지는 경우도 있다.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 혹은 애절한 사랑의 실패와 같은 사건들 뒤엔 언제나 핼쑥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본능적으로 내 입맛을 다시게 하는 맛있는 책들을 찾아냈으니까. 보다 정확히는 생사가  오락가락하며 타들어가던 지방들이 찾아냈다고 해야겠지만.



살 못 빼는 비겁한 변명 셋,

먹고 또 먹고, “네, 이게 다 그 (빌어먹을) 추억의 맛 때문입니다.”


지난 여름, 그런 사랑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애절했던 어떤 이와의 만남이 한 순간에 끝났다. 온 마음이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린 나는 근 한 달여를 아무것도 먹지 못했더랬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거울을 보니 군살 하나 없이 늘씬한 여자가 서 있는 게 아닌가. 이게 왠 횡재인가 싶어 다시 살찌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먹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오동통 불어나는 살과 다시 조우해야 했다. 당시 나의 몸매(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유지에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박찬일 셰프의 음식 에세이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였다. 그의 추억들 속에 함께하는 다양한 음식들은 내 식욕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의 추억의 음식에 얽힌 지난 이야기는 묘하게 어우러지며 나의 지난 추억까지 불러일으켰다.

어머니는 그 열무김치로 들기름 떨궈 비빔밥을 만들었다. 양푼에 써억썩 비빈 비빔밥을 입이 미어져라 욱여넣으면 열무 이파리가 입가로 튀어나와 볼에 양념을 묻혔다. … 비싸다고 손톱만큼 넣은 깨소금이 우연히 잇새에서 튀어나와 고소하게 여운을 주는 것처럼, 그 비빔밥의 맛이 지금 생생하게 되살아나 입안에 막 번진다.

– 박찬일,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다음 장면이 상상이 가는지? 그렇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땡-하고 울리자마자 준비해 온 양푼에 각자 준비해 온 반찬들을 넣고 밥을 비벼서 먹던 친구들과의 추억이 떠올랐던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밥솥에 남은 밥을 퍼담고 냉장고에 남아 있던 반찬 몇 가지를 넣고 ‘써억썩’ 비벼가지고는 방으로  돌아와한 입 가득 우물대며 다음 책장을 넘겼다. 그 책을 읽으며 만들어 먹은 음식들이 비빔밥을 비롯해 깔끔하게 말아낸 국수, 굵게 썰은 무와 함께 자글자글 조려낸 고등어 등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문득,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자극하는 추억의 맛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다이어트는 해서 무엇 할까, 책속의 맛을 찾아가는 여정이 이렇게도 즐거운 것을.

내가 이렇다. 아무래도 이번 생, 다이어트는 완전히 망한 듯 싶다. 책을 읽고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인생의 맛을 찾아가는 이 즐거움을 어찌 포기할 수 있을까.





2014년인가, 삼성생명 <영삼성라이프>에 실렸던 에세이 중 일부.

다시금 이 글을 정리해 올리는 와중에, 나의 샤오미 체중계가 도착했다는 소식. 

체중, 관리할 수 있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