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소설가가 될 수 있냐고?

by writer JELLY

***

젊은 지원아.


너는 어린 시절부터 소설쓰기를

여러 번 시도해봤지만 잘 안됐지.


원고지를 북북 찢어 휴지통에 던지는 게

드라마의 흔한 클리셰인 줄만 알았는데...


해보니 진짜였지?


너무 부끄러운 수준의 글을

누가 볼까 봐 찢어버릴 수 밖에 없었지.


맞다. 너의 선천적인 탤런트는

‘에세이’에 있다. 그건 맞아.

픽션보다는 논픽션이 잘 써 질거야.


그럼 도대체

소설은 언제 쓸 수 있는지,

언젠가 쓸 수 있기는 한 건지

묻고 싶겠지.



***

젊은 지원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2070년 현재,

사람들은 나를 소설가라고 부른다.


DzJUI3j9tCujUvGauVDO73FheH0ziLyTCQ_Cf1su6D-eHVkOrhEgEAUnvMxMbBvKNpOeZ2H_H1QSDRqIdXscayt1b--duxa5Wr5SkZRO0y9eBRg2QRIM2J3Qpdm24L98yIYJf9mY

작가생활 초반에 냈던 에세이들보다

중년에 쓴 소설들이 더 인기를 얻었어.


지금 젊은 네가 소설을 쓰기 어려운

이유를 생각해 보니…


내 소설에 등장하는 배경, 사람, 스토리.

그 모든 것들이 아직 덜 익어서

그런 것 같구나.


소설가가 하는 일이

완전히 새로운 가상세계를

구축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너 어렸을 때 한 예능에

배우 박신양 씨가 나와서

‘연기는 경험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어. 기억나니?


겪어보지 않은 상황과 대사를 연기하는 것,

그것조차도 그는 ‘경험한 것을 표현하는 것’

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더구나.


그 당시에는 조금 의아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아.


경험해보지 않은 것도

살아온 자기만의 내력 안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표현하는 것이더라고.


소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po0ihLhSTRR-cYOA3RWhRVHScpqc74gOOrMCCSLsd2JfLB44QaAalIetja-FLFObcvIgh6iOzUs4rO_lf4ksBTUCc6Q0rOuz6BgS4N0XVWOBPllA3UqCC3crBShNq4mCbKzi8-ne


소설이란 자기의 인생이라는 집을 허물어

그 벽돌로 새 집을 짓는 일이다.


라는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결국…

어느 정도 너의 경험치가 쌓이고

그것들이 인생의 유의미한 기억으로

무르익고 나면

그게 자연스레 소설이 될 재료가 되는거지.



***

그러니까

젊은 지원아,


네가 쓰게 될 소설의

등장인물들, 사건, 상황 등

모든 재료들이 지금 지구 곳곳에서

익어가고 있다.


물론,

네가 과거에 한 경험도 마찬가지야.

그 기억들도 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조합되고 해체되며

무르익어가고 있지.


재료가 다 익지 않았을 땐

소설이 되기 어려워.


하지만 재료가 다 익는다면

너는 자연스럽게 소설의 세계로

들어가게 될 거란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말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라.


너는 소설가다.



2070년 9월 24일

할머니가 된 지원이가.


이전 22화종이의 빛은 바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