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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엔 Jul 28. 2021

로컬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01

Prologue. 나에게서 출발한 질문

서른에 결혼한 나는 서울 양천구 목2동, 재래시장이 있고 동네 축제가 열리던 곳에서 신혼생활을 하다 임신을 하고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1년 새 4천만 원이나 오른 집값에 입을 떡 벌리고 신랑의 직장을 찾아 우리의 고향인 원주로 이사를 왔다.

아무리 고향이어도 친한 친구가 자주 가던 곳들은 모두 서울에 있었기에 처음엔 적응이 잘되지 않았다.

그러다 차를 사고 운전을 하면서 아이와 이곳저곳 다니며 사람들을 만났다.

작게나마 내 일도 시작하면서 점점 원주에서의 삶에 마음을 열었다.


아토피가 있던 아이는 세 돌이 지난 4살 때 어린이집에 처음 보내게 됐다.

그리고 나도 내 일을 늘려야겠다 마음먹고 당시 하고 있던 방과 후 강사 일을 세 곳의 학교에서 진행했다.

주위에서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 아플 거라는 말도 해줬고

내 나름대로 적응 기간을 거치느라 아이도 나도 모두 앓는 시간이 있겠구나 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그걸 뛰어넘는 어려움들이 매일같이 찾아왔다.

아이는 자주 아팠고 일과 육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나는 매일 넘어지며 고꾸라졌다.

서른넷, 네 살의 아이 엄마가 된 모습으로 부모님 앞에서 엉엉 크게 소리 내 울며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 말한 날,

나는 내가 우울의 시간을 걷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전에 알던 내가 아닌 나의 모습을 오롯이 마주하고 그 또한 나임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생전 처음 식이장애와 불면증을 겪으며 얼마간 앓던 나는 다행히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터널을 걷는 시간 동안 나에게 가장 힘이 되어주었던 건 나를 사랑하고 믿어주는 가족의 지지와 신앙이었지만,

수많은 엄마들의 '말'이기도 했다.

잘 아는 엄마든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엄마든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며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엄마들의 말,

"그 시기 아이들은 그렇더라. 우리 아이도 그랬어. 나도 너처럼 힘들었어." 하는 말들.

그 말들은 나를 가르치거나 판단하는 게 아니라 네 마음 나도 안다는 말로, 그러니 우리 같이 힘을 내자는 말로 들렸다.

혼자인 것 같고 나만 이렇게 힘든가 싶던 날들이 그렇지 않다고, 그러니 다시 일어서자고 말을 건네 왔다.


덕분에 나는 그 시간을 견디고 일어나 또다시 이따금씩 찾아오는 파도에도 굴하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일과 육아 모두 완벽할 수 없으며 엄마로도, 나로도 두 가지 이름 모두 사랑하며 사는 게 행복하단 걸 매일 느끼며 산다.

나와 같은 여성들이 곁에 있다는 걸 확인하면서 마음의 근육도 키우고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은 나의 든든한 동지이자, 자매이자, 친구이다.

앞서 걸은 여성들이 나를 끌어주듯 나도 내 뒤에 올 여성들을 끌어주고 싶다.


3년 전 나에게서 출발한 질문은 이제 나와 같은 지역에서, 나와 같은 여성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확장되었다.

서울이 아닌 원주란 지역에서, 나와 같은 여성으로, 또 엄마로 살며 일도 하고 육아도 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그들은 어떤 고민을 마주하고, 그 고민을 어떻게 해결하며 사는지 궁금해졌다.


잠재력이 무궁무진하지만 엄마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단 이유로 세상 밖에 나오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괜찮다고, 용기 내도 된다고, 이런 선택지도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정답이 아닌 개개인의 고유한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때 그게 누군가에겐 시작할 수 있는 용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믿었다.

우리는 모두 고유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며,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위대하고,

여성들은 아름답다는 진심을 전하고자 이 책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내 또래 엄마들의 이야기만 들을까 하다 미혼인 여성의 이야기도, 연령대가 좀 더 높은 엄마의 이야기도 듣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원주에 살며 자신의 일을 하는 여섯 여성들의 이야기를 심층 인터뷰로 담았고,

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그렇게 설문조사에 응해준 39인의 답변도 이 책에 실을 수 있었다.

자신의 삶과 생각을 가감 없이 나눠준 45명의 원주 사는 여성들에게 마음 다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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