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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량 김창성 Jul 06. 2023

할머니와 곰방대 그리고 우화

그리우면 떠 오른다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것은
 그립다는 증거다

 몇 년의 세월이 지났건 몇 년 전의 기억이 되었든지 간에 지금의 감정의 시간은 과거와 맞닿아 있다.

나 자신이 생각하는 부모세대와의 시간의 빠르기와 나 자신과 자식과의 시간의 속도는 차이가 난다. 함께한 시간의 차이만큼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를 조금씩 알아 간다.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서 이미 어린 소년은 도시의 풍경을 지워 버린다. 소죽 끓이는 냄새와 풀벌레소리를 들으며 할머니의 딱딱한 다리 위에 머리를 뉘고 잠이 든 어린아이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손주를 반기며 말없이 웃어 주시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명절이나 되어서야 만나는 할머니가 얼마나 좋았는지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작은 방에서 그렇게 통하지 않는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다. 그냥 좋은 것은 좋은 것일 뿐 사람의 감정은 서로가 느끼는 깊은 사랑이었을 것이다.

 어둡고 냄새나는 화장실을 가기 싫어 칭얼대고 우는 손자를 위해 조막손을 잡고 함께 화장실로 간다. 굽은 허리를 펴기도 힘든데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두고 바로 앞에 쪼그리고 손자를 위해 할머니는 앉는다. 손자는 할머니를 연신 부른다. "할머니 거기 있지?"라고 겁먹은 목소리로 묻는다. 할머닌 겁먹은 손자를 위해 "오냐! 할머니 여기 있다"라고 대답해 준다. "할머니! 가면 안 돼!"라고 몇 번이고 묻는다. 할머니도 물을 때마다 손자를 위해 계속 대답을 해 주신다.

 할머니는 그렇게 캐캐 한 냄새를 맡으시고 한참을 손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계셨다. 손자의 얼굴을 뻣뻣하지만 다정하고 따뜻한 손으로 쓰다듬어 주시며 잘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어두운 밤이 짙어 가는 여름날 모깃불 냄새가 세월이 지난 지금은 커피를 정성 들여 볶는 사람과 커피의 향기처럼 콧속을 맴돌며 가시지가 않는다. 그렇게 시골의 향기가 깊게 퍼지며 밤은 더 깊어 간다. 갑자기 곰방대에 담뱃불을 재떨이에 탁탁 두드리며 불을 끄신다. 굽은 허리를 겨우 일으켜 세우신 할머니가 오래된 박바가지를 들고 어디론가 가신다. 오랜만에 찾아온 손자를 위해 강정을 담아 오시기 위해서다. 강정을 수북이 담은 바닥에는 곶감을 숨겨 오셨다. 선물 같은 감동이 곶감의 달콤함처럼 내 기억 속에 남았다.

 손자가 편하게 잠들지 못하자 할머니는 옛날이야기를 해 주신다고 곰방대에 성냥으로 불을 붙이셨다.

옛날옛날 아주 멋 옛날이라고 시작하셨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유명한 작가가 쓴 동화나 우화보다도 더 재밌고 편안했다. 곰방대 담배를 피우시며 옛날이야기를 이어가셨다.


 "옛날 한 시골 마을에 삼 형제가 살았는데, 이 삼 형제는 쌍둥이었단다, 부모님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삼 형제만 남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먹고사는 것을 항상 걱정했었단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항상 형제간의 우애와 착하게 살아갈 것을 강조하셨단다. 그러던 어느 날 삼 형제는 너무 배가 고팠다. 삼 형제 중 한 명이 “배가 너무 고프다며 어떻게 해야지”라고 말을 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철없던 형제는 쌀이 가장 많은 곳은 부잣집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하는 수 없이 그 중 가장 부잣집 곳간에 쌀을 훔치기로 계획을 했다. 어두워 지기만을 기다린 삼 형제는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가장 부잣집의 곳간에 도착해 그중 큰 형이 쌀을 등에 지기 시작했다. 나머지 두 형제는 큰 형의 등에 쌀을 올려주며 말한다. “형 !이제 됐어?” 라고 물었다. 그 형은 “아직 멀었다. 더 올려라”고 말한다. 두 형제는 제법 한참을 그 형의 등에 쌀을 올렸으나 그 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올리라고 말한다. 너무 오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삼 형제는 빠르게 큰 형의 등에 올려진 쌀을 보며 흐뭇해했다. 여기서 큰 형은 어떻게 그 많은 쌀을 지고 갈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쯤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 형의 이름이 진동만 동이라고 말했다. 진동만동?? 손자는 잘 알아듣지 못하고 할머니를 바라본다. 할머니는 그 이름은 아무리 등에 지어도 진 듯 만듯하단 뜻이라고 설명해 준다. 그러자 손자 고개를 끄덕이며 제법 깔깔대며 웃었다.  이어지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부잣집의 쌀을 도둑맞은 주인은 관가에 이 사실을 알리고 도둑을 꼭 잡길 바라고 있다. 삼 형제가 갑자기 쌀밥을 먹는 것을 본 동네사람이 그 삼 형제를 의심하여 신고한다. 관가에서 나온 사람들이 그 삼 형제를 끌고 간다. 너무 배가 고팠던 삼 형제는 곳 이실직고하여 처벌을 받게 된다. 삼 형제 모두를 처벌할 수 없어 그중 둘째에게 벌을 주기로 한다. 그 벌은 뜨거운 물에 집어넣는 벌이었다. 이어 둘째는 뜨거운 물에 들어가 한참을 있어도 아무 변화가 없는 것이었다. 둘째 역시 이름이 특이하게도 뜨거워도 차가우리였다. 아무리 뜨거워도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차갑게 느낀다는 이름이었다. 이번에는 손자가 너무 웃겨 방에 누워서 데굴데굴 구를 정도였다. 이에 화가 난 관가의 포도대장은 다른 처벌을 내리기로 결정한다. 너무 나 똑 같이 생긴 삼 형제가 헷갈려 그중 또 한 명을 골라 다른 처벌을 내린다. 이번에는 다행히 셋째가였다. 고심하던 포도대장은 이곳에서 가장 깊은 강물에 넣으라고 명한다. 셋째는 겁을 잔뜩 먹고 떨고 있었다. 셋째는 형제들에게 인사를 하고 강물로 들어갔다. 배를 타고 한참을 나가 가장 깊은 곳에 셋째 빠뜨리곤 빠르게 배를 돌렸다. 이번엔 제대로 벌을 받겠지 하고 있는 순간 이게 웬일인가 분명히 제일 깊은 곳에 셋째를 빠뜨렸건만 셋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 역시 이름이 정강이였다. 아무리 깊은 물에 빠뜨려도 정강이까지 밖에 물이 올라오지 못한다는 이름이었다.


 손자는 할머니의 곰방대에서 나오는 연기처럼 사라지는 이야기의 끝이 아쉬워했을 것이다.

한 여름날 밤이 깊어지고 생각이 많은 날 할머니의 옛이야기와 함께한 시간이 자꾸 떠오르는 건 어릴 적 어린 손자도 오래 기억하고 싶어 마음속에 살고 있는 할머니를 만나러 가기 위해 서 일 것이다. 누구나 옛 기억과 추억을 떠 올 만한 이야기는 하나쯤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움이 깊어질수록 세월은 멀리 떠나와 버렸다. 보고 싶은 마음과 그리움은 기억해 낼 수 있을 때까지라 하겠지만 할머니의 곰방대와 옛날이야기는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주길 바라본다.


저작권: 할머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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