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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 Jan 27. 2021

아이보리색 패딩

 몇 년 전 부터인가 처음으로 아이보리색 패딩점퍼를 사고 난 후 부터는 어느샌가 내 옷장은 아이보리색, 밝은 베이지색, 화이트 등의 밝은 무채색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코트도 흰 색, 원피스, 자켓 등도 아주 밝은 아이보리색이었다. 그래서 심지어 최근에 가까이 사는 친구가 상갓집에 가기 위해 검정색 옷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옷장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검정색 코트는커녕 바지도 검정 청바지 딱 한 벌밖에 없을 정도로 흰 색 광인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7년도 훌쩍 넘은 이번 해 겨울은 유난히도 춥고 마침 체중도 임신 전 체중으로 훌쩍 돌아와서 나를 아이보리의 세계로 이끌었던 그 패딩을 드디어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자주 가는 세탁소에 내가 무척이나 사랑하던 옷을 맡기고 찾아오는 그 날, 사실 세탁소 사장님께 이 옷의 얼룩이 지워지지 않으면 버릴 심산으로 한번 얼룩을 좀 빼 주시고 안되면 그냥 말아주세요, 하고 요청해드렸지만 한번 정이 든 옷은 쉽사리 잊혀지지가 않는 법, 옷을 찾으러 가는 날 괜시리 기대도 되고 설레기도 하였다. 하지만 받아든 옷은 처음 샀을 때의 밝은 빛이 아니라 누런 톤(?)이 가미 된 오래된 아이보리색 패딩이 되어 있었다. 그 옷을 보며 마치 나의 결혼생활이 연상되기도 했다.

 초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처음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그리고 신혼생활을 한참 즐길 때 심리상담 선생님께 주로 호소했던 건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뜨면 어떡하나 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순진한(?) 것들 이었는데, 19시간 진통을 겪는데 소감이 어떻냐며 인터뷰하는 영상을 찍던 남편이라던지, 아기 낳고 100일되 채 되지 않아서 온 몸이 퉁퉁 붓고 손발이 아플 때 아가 동생은 언제 보여주냐며 너스레를 떨던 시가 어른들 앞에서 아무말도 하지 않던 방관자 역할을 아주 잘 해냈던 일이라던지, 육아를 도와줄 이가 없는 감옥같은 집에서 일주일 내내 집에서 갖혀있게 출장을 갔던 일이라던지 뭐 이런 일들이 하나 둘 씩 생기면서 지금 내 마음이 변해버린 아이보리색 패딩은 아닌지 하며 더욱이 그 색깔이 미워보이기도 했다.

 이번 겨울을 잘 즐기고 다시 본인에게 맡기면 전체적인 톤이 좀 나아질거라고 사장님께서 얘기 해주시긴 했는데 옷걸이에 하필이면 예쁘지도 않게 엉거주춤 걸려 있어서 여전히 잘 입어지지 않는 옷이다. 이 패딩을 마지막으로 입었을 때는 임신과 오로, 젖몸살, 제왕흉터 같은 단어와 전혀 거리가 먼 달큼한 신혼생활을 내가 좋아하는 반짝반짝한 곳에서 즐기고 있을때였다.

 내가 좋아하는 밝은 빛은 도대체가 원래 처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색깔인건지, 그 색깔이 섬유에 한정되어 세월을 직격탄으로 혼자 맞이했는지는 모를 일인데, 이따금씩 둘이서 얼마든지 데이트 하고 심야에도 아무런 제약 없이 나갈 수 있었던 예전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모두가 이렇게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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