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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 Jan 27. 2021

제 태반 좀 보여주세요.


제 태반 좀 볼 수 있을까요?

정말이다. 난 내 태반을 보고 싶었다. 여성의 몸에서 오직 임신 시작 그리고 유지만을 위해 새로 생겨난 장기, 그리고 출산과 동시에 모체와 태아와 박리되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그 신기한 장기를 나는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이 장기 덕분에 아기는 내가 먹는 음식물뿐만 아니라 산소를 공급받아서 거의 10개월이 돼가는 시간 동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다 잘라져 버려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텐데..”

“너튜브 보면 자세히 나와있어요”

“그래도 저는 제 것이 보고 싶어요”

“망가졌는데도 괜찮아요?”

“네”


이윽고 지에스25 편의점 비닐봉지에 김치와 음식물쓰레기의 그 어드매의 비주얼을 하고 담겨있었다. 사실 만져도 보고 싶었지만 나는 얼굴과 머리, 목 그리고 가슴 상부까지만 감각이 있었기 때문에 직접 만져보거나 들춰볼 수는 없었다. 무게만 해도 거의 아기의 무게와 가깝고 부피도 엄청나다던데 그렇게 내내 내 몸에서 불어나던 조직은 그 날로 내 몸에서 사라졌다.



 

 친한 친구가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데 예비남편이 제왕절개에 대해서 “그 가만히 누워서 배 째고 아기 낳는 꿀 빠는 거 아냐?”라고 했단다. 피가 거꾸로 쏟지 못해 눈물까지 나올 뻔했다. 나는 너무 억울했다. 일단 산모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제왕’ 이 아니었어서 분만을 유도하는 시도를 하고 19시간 동안 기다렸다가 산모와 아이 둘 다 위험해질 수 있어서 긴급으로 제왕절개를 하는 긴급제왕을 해서 더욱더 아팠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출산 당시에 충분한 수면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먹은 음식물도 없었고, 더욱이 신세계라고 하는 패인 부스터(진통제)를 쓰지 않아서 나는 일주일 내내 정말 좀비처럼 울고 또 울었다.

 아기를 보기 위해 복도에는 나처럼 제왕절개를 한 산모들이 하나같이 형형색색 크록스를 신고 슬로모션을 돌리는 것처럼 정말 천천히 온몸에 링거줄을 주렁주렁 매달고 모두가 한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신생아실. 그 옆에는 얼굴도 좋아 보이고 링거도 하나도 없는 그 누가 봐도 자연분만 산모. 뭐? 그런데도 제왕절개가 꿀 빠는 거라고?

 새벽에 너무 아파서 제발 진통제 좀 더 넣어주라고 몇 번을 전화했는지. 더 정확히는 돌아누워야 수화기를 귀에 댈 수 있는데 돌아눕는데만 30분 정도 걸렸다. 복근을 비롯해서 복부의 6겹(혹은 12겹) 정도를 찢으니까 이건 사람 할 짓이 아니다 싶었다.

 한 번은 식사를 하다 쌀알이 기도로 넘어갔는지 기침을 해야 하는데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것도 복부에 어마어마한 통증이 느껴져서 간호사 선생님들 서넛이 달라붙어서 내 배에 베개를 압박하고 기침을 도와주셨다. 그 쌀알 하나를 배출하려고 거진 20분은 걸렸던 것 같다.

 게다가 응급제왕은 진통제나 기타 약들을 많이 써서인지 온 몸이 어마어마하게 부었다. 임신중독증 진단을 받은 건 아니었으나 임신기간 내내 체중도 엄청나게 늘었고(30kg 이상), 원래 240-45를 왔다 갔다 하는 내 발 사이즈는 260 사이즈의 아빠 크록스가 아주 보기 좋게 꼭 맞았다. 퉁퉁 부은 내 발은 이제 막 세상에 갓 나온 아기의 발과 아주 똑같은 모양이었다.

 매일 회진 오시는 의사 선생님께 언제쯤이면 덜 아파지냐고 물었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면 사람다워질 거라고 말씀해주셨고 정말 일주일이 지나자 살짝 속도를 내서 걸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수술 들어가기 전에 선생님께 저는 제 태반을 보고 싶노라고 말씀드렸다면 아마 볼 수 있었을까? 수면마취하지 않는 경우도 내 주변에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아주 유난 떠는 산모였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출산을 한 지 2년이 거의 되어가는 지금, 아기는 여전히 어리고 내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아나갈 수 없다. 엄마인 나 역시 하복부에 상처가 생겼고 켈로이드 체질 덕분에 지렁이처럼 부풀어 올랐다. 또한 한번 출산을 한 여성은 혈액 조직에 변화가 생겨 헌혈을 할 수 없고, 제왕절개를 한 산모는 1년 동안 수면내시경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얼마 전 카더라 통신에서 들은 바로는 제왕절개 시 장기를 모두 꺼내놓기 때문에 한번 산소와 닿아서 유착되기 쉬울 수 있다고 했다.


아기는 예쁘다. 예쁘고 연약하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어디서 생긴 외계인일까 싶지만 하루가 다르게 예쁘고 새롭고 보고 싶다.

출산은 너무 힘들다. 아기는 너무 예쁘다. 힘든 만큼 꼬옥 그만큼 더 예쁘다.

이제는 진공상태인 양수 속이 아니라 대기에 각각 독립된 개체로 나와 대화도 하고 표정도 주고받고 스킨십도 마음껏 할 수 있다. 가끔씩 싸우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왜 내 태반이 보고 싶었을까? 지금에서야 생각되는 이유 중 몇 가지가 떠올랐다. 임신시간 내내 아기를 환영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 한 구석에는  나 대신 매우 충실하게 아기에게 영양분과 산소공급을 해줬던 탯줄과 태반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내가 기분이 어떻고 바깥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던지, 어떤 상황인지에 따라 전혀 영향받지 않고 제 할 일을 다 해준 나의 모성애의 시작이 어쨌던 태반부터가 시작이 아니었을까?

 그 왜, 사람은 너무 고맙거나 너무 미운 사람의 얼굴이 마침내는 보고싶은 순간이 오지 않던가,

나는 얼굴없는 태반의 얼굴(모습)이 보고 싶지 않았었나 싶다.





벌써 까마득하다. 너무 아팠던 그 날, 그리고 신기했던 그 날이


반갑다 아가야, 새삼 너무 반갑다.






*이미지출처: 프라우메디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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