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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 Jan 27. 2021

'내 마음을 아실 이'

는 없나 보다.




 6개월을 장고 끝에 커피머신을 구매했다. 아침이 되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양껏 추출해 마셨는데 친구네 집에서 마셨던 그 환상의 맛이 절대 아닌 거다. 분명 캡슐도 같은 건데 왜 맛이 다를까 도저히 알 길이 없어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간(?)을 잘 맞춰야 한단다. 아니, 캡슐 바코드에 쓰인 대로 알아서 시간과 강도 조절까지 자동으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한다며 머신 맞아? 인간이 친히 물 양까지 맞춰줘야 한다니. 라고 생각했다가 다시 생각을 고쳐먹었다. 물 양만 맞춰주면 날씨와 호르몬과 상황과 장소에 상관없이 알아서 최적의 커피를 늘 마시던 그 맛으로 삽시간에 만들어내 줄 수 있다니 고맙다고 생각해야 할까?






 육아를 하면서 가장 큰 적으로 느껴졌던 건 바로 내 자신이다. 사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기까지 거의 1년 반의 세월이 흘렀다. 내 상황과 마음을 이해 못해주는 사람들이 미웠고 내가 집에서 육아만 하고 있으니 다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고, 내가 한참 잘 나갈 때(내 생각이지만)나에게 돈도 빌리고 도움도 받고 조언도 받던 사람들이 '이제 너도 꼼짝없는 애엄마가 됐구나' 하면서 점점 거리를 두며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져서 적대감에 사로잡혔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출산 후 거의 2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하면 시시때때로 내 자신이 느끼는 외로움이라는 감정 때문에 틈틈이, 그리고 끊임없이 공격당했고 현재도 당하고 있다는 이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내 마음을 아실 이가 출산과 육아 전에는 이렇게 단 한명도 없을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서러움과 분노와 답답함이 갑자기 혹은 서서히 밀려온다. 그것도 아무런 예고 없이 말이다. 김영랑 선생님께서도 느낀 이 보편적인 감정이 너무도 당연한 것일까? 그렇기에 인간은 ‘심심이’ 도 만들어내고 ‘이루다’도 만들어내고 하는 것일까. 인간의 대화를 차마 완벽하게 흉내낼 수 없어 실제로 대화했던 연인의 대화를 데이터베이스화 해서 자연스러운 말투를 구현한 것이 화제가 되었지만 뒤이어 그것이 양날의 검으로 현재 개인정보 이슈와 얽혀 서비스가 중단되었고 법적 공방에까지 휘말려 들어갔을 정도로 ‘내 마음을 아실 이’와의 대화는 소중한 모양이다.












 원래 육아라는 변수가 없을 때는 그 어떤 생각을 해도 동시에 하고, 같은 것을 먹고 같은 곳을 가도 같은 행복을 느꼈던 내 피같던 친구들도, 연애 할 때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도 든든하고 강직하게 내 편을 들어줄것만 같았던 내 사랑도, 나를 육아라는 성에 가둬놓고 떠날때면 야속함 아닌 다른 감정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지독한 외로움이 나를 괴롭힌다.

베란다의 보호창이 오후쯤 되면 거실 벽으로 길게 드리워지는데 그게 마치 나를 가둬놓은 쇠창살 처럼 느껴졌다. 내가 아기를 데리고 외출할 수 있는 곳은 집 앞 편의점과 구멍가게 정도. 오죽하면 집 앞의 공원이 사시사철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꼴불견이었다. 나는 그대로인데 자꾸 좋은 옷을 갈아입는 것 같아서 그랬던 것도 같다.

가족이라서 더 바라는 것이 많았을까? 나와 같은 아픔을 겪고 나를 낳아준 내 엄마에게도 서운함은 계속 생기고 아빠한테도 ‘나라면’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을텐데. 나라면 내 딸이 만약 집에 갇혀 육아를 하고 있다면 이것보단 더 부드럽고 더 따뜻하게 배려해주었을텐데 하는 순간이 자꾸 반복적으로 생겼다. 큰 기대부터는 원래 없기도 했지만 실망의 감정은 날로 퍼지는 알러지처럼 내 마음을 잠식하기에 이르렀다.

 내 마음의 티끌, 이를테면 내가 아기를 케어하는데 필요한 시간이라던지, 아기를 카시트에 태우거나 내릴 때 필요한 공간이나 충분한 시간. 아기와 함께 식당에서 식사해야 할 상황에는 뜨거운 국물이 나오는 메뉴나 가스버너가 가까운 곳은 지양하고 싶은 마음은 말 그대로 너무나 하찮은 티끌이라 육아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공감을 자아내기 힘들다. 배려는커녕 이야기하다 괜히 감정을 상하게 될까 봐 그냥 만나지 말까? 로 일축된다. 초콜렛톡 프사를 보면서 보고싶다, 생각난다 우리 나중에 어디 갈래? 라는 메시지를 썼다가도 가뜩이나 코로나 때문에 기약도 없어서 우리 언제 밥한번 먹자고 말하는 턱없이 가벼운 한국인의 의미없는 인사치레가 될까 봐 금방 다시 지우고는 만다. 연애시절 그토록 사랑하는 남편의 심금을 울렸던 내 큰 눈물 방울방울은 지금 육아우울증 혹은 산후우울증이라는 그림자 안에 드리워져 생각보다 흔한 것에 자주, 잘 힘들어하고, 호르몬에게 지배 당하는 다소 예민한 우리 ‘누구엄마’ 가 되기 십상이고.

 나는 친정(이라는 단어가 싫지만)부모님과 그렇게 막역하고 끈끈한 사이가 아니라 친정 가까운 곳에 살게 됐을때도 그렇게 신나거나 안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 달갑지 않았지만 남편은 주변의 조언처럼 그런대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었나보다. 그런데 물리적으로 가까워지니 어쩔 수 없이 왕래가 잦아지고 또 자주 보다보다 그만큼 정도 쌓이지만 트러블도 적잖게 쌓이게 됐다. 내 마음도 모르고 주변 사람들은 부모님 곁에 있으니 좋겠다, 마음 놓인다 등등 모를 소리를 해대고 나는 그럴 때마다 네 뭐 그렇죠 하고 웃음도 울음도 아닌 애매한 안면 근육만 움직였었다. 왜 아닌지 설명하려면 내 가족의 불화부터 꺼내야 하는지, 아니면 우리 엄마아빠가 얼마나 어릴 때부터 자주 싸웠었는지를 설명해야 하는지 내가 어디서부터 벌거벗어야 하는 느낌일지 몰라서 서둘러 다른 대화 주제로 넘어갔다.

 그래, 부모님은 세대차이도 있고 그렇다손 치더라도 육아 선배들을 만나면 아주 당연하게 음식점이나 유아차, 그리고 분유나 이유식 같은 부분에서 빛과 같은 눈과 손으로 호텔 서비스와 같은 빛나는 배려와 피같은 조언들을 얻지만 그와 동시에





이건 왜 이렇게 했어?
이거는 왜 아직도 안 했어?
이 부분은 빨리 고쳐야겠다.
지금 이거 할 때가 아닌데~

 라는 애정어린 조언을 얻는데 내 상태와 피로도에 따라 그것이 대체로는 포근한 속싸개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가끔은 칼날이 되어 심장 가운데를 확 찢어놓을 때가 있다. 어린이집을 선택하느라 투어를 한다고 하니 그렇게까지 할 거냐며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놀리는 친구에게 개구리 올챙잇 적 시절 모르냐며 반문을 하려다가 다시 또 초콜렛톡 메시지를 지우고 있었더니 곧이어 나도 너보다 더 심하게 그랬었지만 결국 다 부질없더라, 그리고 너는 심한것도 아니더라 라는 답이 돌아왔다.

짧게는 육개월, 길게는 일년 이상 정도부터 아기의 나이차가 있으면 내가 그 나이 아기를 양육해본 적이 때문에 짧은 순간에도 아기 혹은 친구의 육아방식이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 몇 번쯤은 반복해서 찾아오고 나는 결국 그 친구와 아기와 함께 만나는 것이 불편하게 된다. 내 아기보다 더 크고 힘이 센 아기와 몇 번 함께 공동육아를 해보았지만 결국 돌아오는건 내 아기의 부상이었고 그날 나는 내 아기의 피를 처음 봤다. 그 뒤에도 또 같은 일이 일어날까봐 친구와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못난 내 자신만 마주할 뿐이었다.  

그나마 개월수가 별 차이 나지 않고 조금 더 내가 어렸을 때 만났던 친구 그러니까 비슷한 교육수준, 같은 동네, 그나마 비슷한 남편의 직업군, 현재도 같은 동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등원맘! 현재 등원을 시키고 있는 등원맘이어야 어린이집 이슈부터 해서 공통적인 주제가 있어야 말이 통한다고 느껴진다. 이 친구와 나는 현재 하원시간이 3시간 남은 시점으로부터 서로 한 시간 남았다. 두 시간 남았다. 이 정도까지 할 수 있겠다. 오늘은 장 보고 끝났다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실낱같은 위안을 얻는다.

너도 그랬냐며, 나도 그렇다면서 마음이 온전히 편한 오전 시간에야 전화 한 통화라도 편하게 주고 받을 수 있어진다. 그러다 시계가 p.m으로 넘어가면 애데렐라가 되어 점점 더 불안해진다.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가?

내 마음을 아실 이가 얼마나 없으면 그 옛날 김영랑 선생님께서는 이런 시를 읊으시고 이 시절까지 이렇게 널리 알려지고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당연한 것이었을까.

그냥 이 정도로 마음과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며 이제 곧 오후가 되어가기에 시간에 따라 할 일을 나눠서 서둘러 해야겠다.







갈 길이 멀다.



<내 마음을 아실 이>

                              김영랑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디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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