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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 Feb 05. 2021

어머님, 저는 전 부치는게 싫은 게 아니고요

보내지 못할 편지





어머님,

설 명절이 다가오지만 저희 가족은 여전히 어머님 아버님 댁에 가지 않을거에요. 사실 코로나 때문이라고 핑계는 댈 거지만 코로나에게 정말 고맙지만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에요. 코로나가 이럴 땐 얼마나 고마운 줄 몰라요. 이렇게 너무 합법적으로 핑계를 댈 수 있고 어머님 아버님도 주변에 이야기하시기 덜 민망하시잖아요. 올해에는 코로나 때문에 손주도 아들도 며느리도 안 온다고.








 결혼 하고 첫 해, 첫 명절을 맞고 난 후 저는 엄마아빠 집에 가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앓았어요. 몸이 아팠던 건 아니었던 것 같고 기분이 너무 이상하고 좋지 않아서 아무도 보고싶지 않았어요. 창문 너머로 남편과 엄마 아빠가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게 들렸는데 이상하게 그 대화에 끼고 싶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았어요. 사실, 명절음식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도 아니고 기름 냄새를 너무 많이 맡아서 머리가 아파서도 아니었어요. 이상한 굴욕감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지금도 이 감정이 굴욕감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제가 너무 예민해서 피해망상 같은 것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지금 몇 년이 지나도 그날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잘 지워지지가 않아요.



출처: 웹툰 <며느라기>




 SNS모 페이지에 이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곳이 있었고(헬게이트 시월드) 그때 제가 느낀 감정들을 구구절절 써서 업로드했었어요. 그리고 나서 한참 뒤에 웹툰 <며느라기>가 나왔는데 제가 썼던 일기 같은 구절들이 그대로 나와있더라구요. 당시 남편이 결혼 전까지 쓰던 방은 부엌 베란다와 창 하나를 두고 연결되어 있었고 추석명절이었으니 춥지 않아서 문을 조금 열어놨었던 것 같아요. 탁탁탁탁 무언가를 써는 소리가 너무 명백하고 규칙적으로 들려서 베게로 귀를 가려보기도 하고 뒤척였지만 잠을 들 수가 없더라고요. 결국 나가서 도와드릴까요? 하고 여쭤봤는데 할 것 없다며 다시 들어가라고 해주셨던 것 같은데 다시 들어가서 잠은 못 이뤘어요. 근데 남편은 그 좁은 침대에서 아주 잘도 자더라고요. 그때 시간은 어렴풋이 7시가 되기 전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뒤이어 같은 날, 앞치마도 주셨는데 그때 그걸 받아들고 기분이 참 복잡했지만 여전히 저는 ‘점수’를 잘 따야 하는 새아기였고 그냥 별다른 말없이 앞치마를 받고 예쁘고 마음에 든다고 말씀드렸었어요. 이 내용이 웹툰에 비슷하게 나와있길래 작가님께 메시지를 드렸고 제가 썼던 비슷한 일들이 만화에 나와있는데 혹시 어디서 이야기를 참고해서 보셨냐고 여쭤봤고 제가 쓴게 맞다면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참고해서 이야기를 만들어서 아마 맞을수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웹툰으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어요.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내심 반가웠고, 그 웹툰이 이제 드라마로 제작되어 얼마 전 남편과 <며느라기>를 정주행했어요. 내가 겪었던 일들을 많은 며느리들도 겪었고, 또 이 드라마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지에 대해 생각하니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면죄부가 되는 기분이었어요.



아, 나 혼자 예민해서 그랬던 게 아니구나.

나만 이상해서 그랬던 게 아니고 당연히 그런 감정이 들 수 있는 것들이었구나

하고 치유가 조금은 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어머님,



저 사실은

아직 치유되지 않았어요.


 제가 겪은 일이나, 직장에서의 새로운 맡은 일들, 혹은 추진하고 있었던 사업 관련된 말씀을 드려도



 “그래 열심히 해 봐라”


라고 응원은 주셨지만 자세하게 이건 이렇게 해 보고 저런 저렇게 해 봐라 정도의 심도있고 자세한 이야기로 더 이상 발전이 되지 않았어요.

한번은 제가,


“저 이제는 책을 한번 써볼까 해요.”
“요새 책을 누가 사서 읽는다고 그러니?”

라고 말씀을 하셨었어요. 기억을 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참 민망했어요. 보통 누가 뭘 한다고 하면 마음에 없는 말이라도 잘 해보라던지, 아니면 응원한다던지 그런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데 제 예상과 달라서 저는 참 슬펐어요. 뒤이어 같은 이야기를 저희 엄마께 말씀드렸더니

"그래, 해 봐라. 니가 하고 싶다는데 누가 말리니?" 라는 반응이 돌아왔어요.

똑같은 응원의 메시지였지만 저는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까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남편의 직장 이야기, 남편이 식사 이야기(요새 뭘 먹고 사니?)로 넘어갔어요. 그럼 저는 또 마음이 불편해졌어요. 왜 자꾸 메뉴를 물어보시는 거지, 왜 나도 모르는 직장 이야기를 직접 안물어보시고 나한테 물어보시는거지. 하지만, 아시잖아요. 친구처럼,

"그 이야기를 왜 나한테 물어봐요? 직접 물어보세요."  라고 할 수 없는 며느리라는 위치 너무나도 잘 아시잖아요. 어머님도 누구의 며느리시니까요.  





이미지 출처: 네이버블로그: https://m.blog.naver.com/0125ljm/221491882536?view=img_11





개굴개굴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아기를 키우면서 이 노래 되게 많이 들었는데 이 노래를 들으면서 또 저는 저를 치유했어요. 맞아, 아들, 그리고 손자, 그리고 맨 마지막이 며느리이지. 아들은 피가 반이고, 손자는 1/4이고 나는 피가 하나도 안 섞였으니 제일 나중에 불려지고, 가장 관심이 없고, 가장 덜 예쁜 것이 당연해. 받아들이자, 하면서도 저 노래 속의 며느리 개구리는 얼마나 서러울까? 얼마나 엄마 개구리가 보고싶었을까? 아들과 손주 데리고 억지로 가는 시가가 얼마나 가기 싫었을까 하는 생각에 가끔 눈물도 났어요.

듣는이가 없는데도 노래를 불러야 하다니, 먹는 사람이 없어도 차려야 하는 제삿상을 뜻하는 것인지.

밤새도록 노래를 불렀다니, 결국 아들, 손자 다 자고 며느리만 혼자 남아서 했던 명절 이후 설거지처럼 한을 담은 구슬픈 노래는 아니었을런지요.


 

 아기 낳고 100일도 채 되지 않았을때 남편은 못 들었다는걸로 봐서 아마 저만 들었나봐요. 이제 아기 남동생 만들어야지~

우리 아들은 날 닮아서 아마 둘째는 아들일꺼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더라고요.

저희 엄마아빠는 제가 임신출산으로 너무 고생하는걸 옆에서 지켜보셨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안하셨을까요.


 


 그런데요, 어머님,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님은 참 좋은 분이세요. 아니 참 좋은 사람이에요. 저는 그걸 알아요. 가끔씩 생각했어요. 어머님과 내가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아닌 엄마와 딸로 만났으면 참 좋았겠다 라는 생각요. 저희 엄마는 음식을 챙겨주신다거나 미주알 고주알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는 사람이에요. 근데 어머님은 제 아기한테도, 남편한테도, 그리고 아기도 남편도 없을땐 심지어 저한테도 이야기를 정말 잘 들어주세요. 저렇게 앞에 이야기한 것처럼 가끔씩 비꼬실 때도 있지만(나중에 알았어요. 저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실 때도 있다는 걸) 대부분 관심을 가지고 잘 들어주실때가 많았어요. 제가 밤늦게 밖에서 집에 와야 할 시간이라던지, 남편이 길게 집을 비울 때 내가 무서울까봐 집에 와줄까? 혹은 뭐좀 가져다줄까 하고 물어보신 적이 많아요. 저는 그런 보살핌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너무 당황했어요. 아니, 혼자 산 세월이 20년 가까이 되는데 갑자기 남편이 없다고 무서워지지는 않았거든요. 근데 왜 오신다고 하지? 했는데 나중에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어요. 진짜 저를 걱정해서 오신다고 해주신 거였더라고요.

그것뿐만이 아니라, 흔히들 나쁜 시어머니라고 묘사하는 내용 중에 다 먹고 남은 찌꺼기를 준다던지, 찬 밥을 준다던지, 이런 일은 절대 없었어요. 오히려 맛있는 반찬을 제 앞에 놔주시고 살코기를 덜어서 저한테 주시고 제 밥이 모자르지는 않는지 늘 체크해주셨어요.

 그리고 다른 시어머니들처럼 막 설거지를 시킨다던지 그러지도 않으셨어요. 할 거 없다고 앉아있으라고 하신다거나, 정말 간단한 일만 시키는 둥 마는 둥 하시고, 실제로 제가 신체적인 노동을 한 것들은 많이 없었어요.


이런데도 저는 왜 명절이 싫었을까요.


 첫 명절 때 저는 어머님이 주신 앞치마를 하면서 한 번도 해본적도 없는 명절의 부엌일이나 음식 장만하는 일을 해봤어요. 당연히 도움이 안됐겠지요. 그래서 만들어진 음식을 부엌에서 거실 상으로 나르는 일을 했는데, 아무도 앞치마를 하지 않았는데 어머님과 저 둘만 앞치마를 하고 마치 종업원이라도 된 것처럼 그릇을 계속 날랐어요. 물론 남편과 남편 형제도 같이 하기는 했는데 그, 앞치마라는 상징적인 의미 있잖아요. 그게 너무 굴욕적이었어요.

게다가 거실 소파에는 아버님과 아버님의 형제, 그리고 할머님이 앉아서 제가 종종거리며 나르는 것을 그대로 보고 계셨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 행동이 눈빛으로 평가되는 기분이었어요. 물론 어른들은 제 앞치마를 흐뭇하게 미소를 띄며 보고 계셨는데


사실 그게 최고로

싫었어요.


왜 나는 여기서 이렇게 허드렛일을 하고 나의 행동이 도마 위로 오르는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의문스러웠어요. 물론 그때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럴 겨를도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제가 기분이 안 좋았던건, 기름냄새를 계속 맡으면서 부엌 구석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가스레인지 앞에서 전을 지지는 것도 아니었고, 힘들게 계속 서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시간은 절대 길지도 않았고 잠깐이었던 것 같은데 다들 (분위기가) 따뜻한 거실에서 즐겁게 서로 아는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 저는 어차피 같이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자리에 없는 편이 차라리 편하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내 기분과 내가 하는 일,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더 섭섭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밖에서는 선생님, 누구누구님, 대표님 이렇게 불리다가 어머님 댁에만 가면 저는 가장 낮은 위치로 격하되는 기분이었어요. 누구도 저에게 웃으면서 살짝무례한 농담을 할 수 있지만 저는 그 누구한테도 할 수 없더라고요. 그때부터 많은 것이 불편해졌어요. 저희 엄마가 보내신 과일의 질을 평가당하는 일이라던지, 제 외모나 체형에 대해서 듣는 어떤 말에도 저는 대구를 못 했어요. 모두가 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저 혼자만 웃기지 않았지만 뭐라고 말하면 제 옹졸함을 동네방네 소문내는 일이 될 것 같았거든요.


 음, 이건, 아주 나중에 안 일인데, 어머님은 저와 어머님 둘만 있을때와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 너무 다르셨어요. 저와 둘만 있을때는 저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주시고 맛있는것도 해주시고 남편 어렸을 때의 일도 곧잘 해주시고 아기도 잘 봐주셨지만, 예를 들어 시할머니, 시아버지, 혹은 남편의 친척분들이 계실 때 의레 며느리들이 해야 할 일들을 제가 하길 바라셨던 것 같아요. 그러니 명절에는 꼭 앞치마를 한 새아기가 집에서 종종거리면서 어머님의 오른손이 되어 드려야(되어 드리는 것처럼) 했었던 것 같아요.



 한번은 남편의 친한 친구 결혼식이 있어 저희 가족이 같이 갔던 날이었는데 그때는 아기도 함께였어요. 저는 아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아기가 당장 제가 바로 옆에 있었어야 했던 것도 아니고, 아무도 없는 결혼식장이 답답하기도 해서 잠깐 나가 있었어요. 출산 육아 때문에 밖에 잘 못 나가기도 했었고, 오랜만에 제가 좋아하는 동네에 온 터라 좀 혼자서 걷고 싶었거든요.  

 근데 남편이 아마, 사진을 찍었어야 했나 보더라고요. 아기는 어머님이 봐주시고 계시길래 밖에서 좀 오래 걸었는데(그래봤자 10-15분 정도였을거에요), 어머님이 아기 안보고 뭐하냐고 급하게 전화하셔서놀라서 갔어요. 출산 후 처음으로 높은 구두를 신고 걸었던지라 발이 엄청 아팠지만 죄송스런 마음에 막 뛰어서 갔어요. 역시나 옆에 어머님 친구분이 계셨고 어머님은 매우 화가 나 계셨어요. 그런데 아기는 그때 보채지도 않았고, 어렸어서 유모차에 얌전히 앉아있었고 용변을 본 것도, 그렇다고 밥을 먹어야 할 때도 아니어서 제가 잠깐 없어도 된다고 생각해서 나갔던 거였거든요. 근데 저를 나무라시는 눈빛이 정말 차가웠어요.

어머님의 그런 눈빛은 처음 봤어요. 그 눈빛 안에는,

며느리인 네가 시어머니인 나에게 아기를 맡기고 나가다니, 그것도 내 친구가 있는 앞에서.

라는 감정이 느껴졌어요. 그러면서 굉장히 한심하게 혀를 끌끌 차시면서 으이구 하고 혼내셨어요. 저는 그때 너무 또 당황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또 못했지만 되짚어보니 그 의미를 알 것 같아서 그 이후로 또 급격하게 기분이 안좋아지더라고요.

역시 또 남편과 크게 다퉜죠 그날도요.








 사실 저도 ‘며느라기’ 과정 한 가운데에 있었던 적이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내가 자랑할 수 있는 며느리가 될까, 어떻게 하면 어머님이 나를 좋아하시게 될까? 이리저리 생각한 적도 많았어요. 어머님께 잘 보이고 싶어서 이제까지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저희 엄마께는 다섯 번도 안 했던 안마도 해드리고 두피 마사지 같은 것도 해드리고, 여기저기 뭐 할 것 없나 기웃기웃거렸었어요. 행사가 있으면 여기저기 알아봐서 꽃 배달도 해보고, 엄마한테는 해본적도 없는 현금으로 제 기준으로는 거금도 하루에 보내도 드려보고요.

 종종거리는 저보고 보기보단 게으르지 않는 것 같다고 하셨지만 저, 사실 굉장히 많이 게을러요. 집이나 엄마집이나 거의 누워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에요. 허리가 좋지 않아서 잘 앉아있지도 않거든요.




 또한, 가끔씩, 제가 챙겨드렸던 화장품이나 선물들이 남편의 형제책상 등에서 발견될 때, 조금 섭섭했어요. 드라마 <며느라기>첫 화에서 주인공 사린이의 남편 구영이 동생 미영이가 어머님 생신때 처음 끓였던 미역국을 먹고 대신 속을 푸는 장면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기분이 나빴던 건 아니에요. 그냥 이상했어요. 지금도 사실 이 이상한 기분을 설명할 길은 없어요.

 제가 옹졸한 걸까요? 저도 이 기분을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이야기할 수 없는 더더욱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아기가 생기기 전에는 그냥 이것저것 핑계를 대면서 안갈 수 있어 좋았어요. 하지만 아기가 생기니 안갈 수 없었고 또 비슷한 일들이 계속 생기더라고요.




 아기의 잠버릇이나, 기타 유전적인 형질이나 특징을 이야기할 때 어머님께서는 버릇처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우리식구중에는 이런 사람이 없는데~”



어머님, 우리 식구 누구요?

일단 저는 아닌거지요?

그럼 아기가 안좋은 유전형질은

저희집 식구들을 닮은건가요?

그럼 어머님께 우리식구는 누구예요?

저 빼고 어머님 아들딸인거죠?

그럼 어머님 아들은 어머님 식구인데 어머님도 처음에 결혼하셨을 때 이 집 식구가 아니었을텐데,

언제부터 이 집 식구가 되셨나요?



그럼 저는 언제 이 집 식구

되는거에요?



아니, 그냥 저 이 집 식구 안 할래요.

저는 누구 엄마 말고, 누구 며느리 말고,

누구 아내 말고 

그냥 저 할래요.






 그놈의 식구(食口)가 뭐라고 제가 잠정적 왕따를 당해야 하는지, 아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점점 불편해졌어요. 어머님과 제 공통점은 남편이고, 또 남편 말고 또 다른 공통점이 아기인데, 자꾸 아기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리식구, 남의 식구 나누시면 저는 어느쪽이 제 식구에요?






어머님,

제가 너무 세상 힘들게 사는 걸까요?

아니, 어머님 보시기엔 이런 빡센 며느리 만나서,

기 센 마누라 만나서 어머님 아드님이 너무

고생하는 것 같으시나요?

(실제로 이 말씀을 들었기도 들었지만요)







어머님, 저는 그래서 더 이상

상처 받기 전에 시간을 가지기로 했어요.

코비드-19에게 너무 고맙게도,

저희는 이번 명절에도, 다음 명절에도,

다 다음 명절에도

가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언제 갈지도 모르겠어요.

아마 가게 된다면

어머님 말씀하시는

어머님 기준에서의

‘우리식구’만

아마 가게 될 거에요.




아들, 손주 까지요.

남의 식구 며느리 말고요.



그래도 어머님,

저는 어머님을 싫어하지 않아요.

가끔 보고도 싶고 좋은 일들도 꽤나 생각나고 그래요. 그래도 아픈 건 아픈거에요.

제가 너무 오래 아프고 오래 참았어요.

어머님 댁에만 가면 제가 쓸모 없는 사람으로 느껴지고 낮은 대우를 받아도 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어요. 남편의 들러리가 되는 기분요.

저는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해가 갈수록 저는 없어지고 아기가 생기니 더더욱 그 감정은

커졌어요.

제가 치유될 수 있게 시간을 조금만 주세요.

제가 아프지 않아야 이 에너지로 제가 사랑하는 아기를 더 잘 돌볼 수 있고, 제가 하고 싶은 일도 찾을 수 있고, 제 아기한테 더 사랑을 많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얼마나 걸릴 진 저도 모르겠어요.



다시 뵙게 될 그날까지

부디, 건강히, 행복하게 잘 계시기를요.




즐거운 설 명절 되세요.

이번에는 음식들 부디 다 사서 드시기를요.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




사진의 이 여자분처럼,

저는 언제 어머님댁에

이렇게 환히 웃으면서 갈 수 있을까요?








*제목 이미지 출처:

https://blog.hsad.co.kr/2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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