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의식으로 2년을 살았다.
지난 2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내가 대구로 가고 하루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뒤이어 형제들과도 얼마 안 되는 재산 앞에서 욕심이 부딪혀 깊은 골이 파였다. 사소한 문제로 친구들과 틀어지고, 사회에서 만난 지인과는 단절을 선택했다. 잘 지내던 여자친구와도 이별했다.
저때의 나를 돌이켜본다면 감정의 쓰나미가 매 순간 나를 덮쳤던 것 같다. 쓰나미가 지나가면 내가 했던 건 도전과 새로운 시작이었다. 20여 년 피우던 담배를 끊기로 했다. 여행 유튜버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40일간 유럽을 다녔고,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완주했다. 혼자서 2주 동안 몽골도 여행했다. 헬스를 등록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이 모든 걸 글로 쓰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 다였다. 편집하지 못한 영상은 하드디스크에 쓰레기처럼 박혀있었고, 6개월을 등록한 헬스장은 며칠 가지 않았다. 글을 쓰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막막했다. 그럴 때면 자리를 박차고 걸었다.
걸으면 해결될 것만 같았다.
걷는 시간이 늘어나고 그 시간 만큼,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무력감, 몸은 쉴 새 없이 움직이는데 뭘 하는지도 모르는 공허함, 그리고 공허함 뒤에 따라오는 자괴감이 뒤따랐다. 걸으면 걸을수록 "나는 게을러서 안 돼"라는 자기 비하와 "내가 그러면 그렇지"라는 자기혐오가 나를 지배했다.
어느 날은 긍정적인 척 "다들 이렇게 사는 거 아냐?"라는 생각과 "나는 절실함이 없어서 그래"라는 결론으로 나를 위로하기도 했다. 그런 격한 감정들이 부딪혀 허기가 지면, 언제나 혼자 돼지국밥에 소주만 들이켰다. 주량이 늘었고, 독하게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물었다. 몸무게만 늘었다.
올해 1월 어느 날, 신춘문예 당선 소설들을 살펴봤다. 습관처럼 집 앞 하천을 걸었다. 부정적인 나와 긍정적인 내가 싸우는 시간이다. 그 싸움 속에서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왜 살펴봤지?'
지난 2년 동안 신춘문예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작년에도 봤었나?'
봤었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걸으면서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예전의 나는 매년 여름이면 신춘문예에 투고할 단편 소설에 에너지를 쏟았었다. 직장도 잘 다녔고,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해 명분 있는 도전을 했다. 그럴싸한 계획과 끝맺음도 분명히 있었다. 하찮은 만족감도 분명 있었다.
'나는 왜 유튜버를 한다고 그렇게 싸돌아 다닌걸까. 나는 뭐 하고 있는 거지.'
지금의 내가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순간 2년 동안 내 감정들이 기계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이질감이라고 하는 걸까? 나도 나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음을 멈추고 벤치에 앉다. 내가 느낀 감정을 검색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감정을 비현실감(Derealization) 또는 이인증(Depersonalization)이라고 했다.
이인증: 초점이 나 자신에 맞춰져 있어, 내가 나 같지 않다고 느낍니다.
비현실감: 초점이 외부 세계에 맞춰져 있어, 세상이 꿈같거나 인공적으로 느껴집니다.
소름 돋게 정확했다. 유럽의 도시들과 산티아고 800km, 몽골의 대자연이 세트장처럼 인공적으로 느껴졌었다. 내가 소모품처럼 느껴졌었다. 심리학 책을 찾으러 도서관으로 갔다.
예전엔 시간이 나면 종종 책을 읽고 글을 쓰러 도서관을 찾았다. 그런데 지난 2년 동안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낯익은 도서관에서 또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내가 나 같지 않았다. 이건 분명 이질감이다. 나는 이질감의 정의를 정확하게 느꼈다.
무작정 심리학 책을 펼쳤다. 한 장 한 장이 헬스장에서 들었던 아령보다 무거웠다. 대여섯 권의 심리학 책을 헤매다 뜻밖에 애착 이론에서 답을 발견했다.
내가 느낀 이질감의 이유가 거기 있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슬픔을 마주하면, 살기 위해 무의식이 스스로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고 한다. 명분 없는 시작과 도전, 무슨 행동을 하는지도 모르는 맹목적인 움직임. 그것은 고통을 감당할 수 없어 내 무의식이 내린 '살기 위한 비명'이라고 했다.
그제야 어머니의 마지막 숨소리가 떠올랐다.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겹쳐졌다. 하루 더 자고 가라는 어머니의 말에 짜증을 내며 대구로 갔었던 게 기억이 났다. 다음 날 나에게 걸려 왔던 어머니의 부재중 전화. 그 번호가 119 구급대원이 건 전화였다는 사실. 그리고 나는 그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았다는 기억. 2년 동안 생각나지도 않았던 것들이 갑자기 머릿속에서 터져 나왔다.
"너는 지금 이 거대한 죄책감과 슬픔을 감당할 수 없어. 그러니 이 감정을 철저히 피하고 딴짓이나 해."
애착 이론에서는 나를 살리기 위해 무의식이 내린 명령이라고 했다. 무의식이 애착 시스템의 전원을 뽑아버린 것이라고 했다. 애착 이론에서는 이걸 비활성화(Deactivation)라고 했다.
내가 2년 동안 좀비로 살았던 이유를 알았다.
나는 도서관을 뛰쳐나왔다. 뜻밖의 발견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하지만 유레카는 외칠 수 없었다. 그저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