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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나 작가 Mar 31. 2023

결핍이 없는 아이의 결핍

feat. 안 좋은 에세이의 사례

얘들아 오늘은 단어 시험 잘 보면 떡볶이 쏠게!


가끔 학원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다가 기운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내가 쓰는 묘약이다.

'떡볶이 쏘기'

하나 시큰둥한 아이들

아이들 표정이 영 떨떠름하다.

"네..."라는 힘없는 대답과 함께 단어를 다시 훑어보고는 곧 시험에 들어갔다.

시험을 다 보고 맛난 걸 사주겠다는 내 말에 한 아이가 말한다.


선생님, 저 매운 거 잘 못 먹어요.
전 다른 거 사주세요.

매운 건 못 먹을 수 있지, 못 먹는 걸 못 먹는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다만, '전 다른 거 사주세요.'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받는 걸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그 아이의 말투와 표정 때문이었다.

이 친구뿐만이 아니라 요즘 초등, 중등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살펴보면 감사함이 사라졌다.


"얘들아, 학원은 뭐 하는 곳이니?"

아이들에게 물었다.

"배우는 곳이요!"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답했다.

"맞아, 배우는 곳이지. 영어를 배우든, 수학을 배우든 학원에서 너희가 배우고자 하는 학문을 잘 배우면 학원을 다니는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래, 학원은 지식을 가르쳐주는 곳이지, 뭘 사주는 곳이 아니란다. 그러니 이렇게 선생님이 뭔가를 사줄 때에는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해."

초등학교 4, 5학년 남자아이들을 앉혀놓고 난 그렇게 '감사하는 자세'를 가르쳤다.

이걸 왜 내가 가르쳐야 할까?

가정에서 배워야 하는 거 아닐까.

씁쓸하다.

아이들은 내 말에 수긍하며 "우리 학원은 그래서 정말 좋은 거 같아요!"라고 응답했다.

그래도 기특한 친구들이다.




사실 감사를 모르는 아이의 모습을 지금 있는 곳에서만 접한 게 아니라서 그리 놀랍지도 않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여러 곳에서 아이들의 '마땅한 누림'과 같은 모습을 무수히 봐왔다.

요즘 아이들은 결핍이 없다.

너무 풍족하게 삶을 살고, 풍족하다 못해 때론 도에 넘치게 아이에게 제공해 주는 부모도 많다.

부모로부터 선물 받은 최신 아이폰을 들고, 아이폰 왓치를 차고 다니는 초등 4학년 남자아이가 또래 아이들에게 쌍욕을 일삼고, 왕따를 시키는 행동을 목격했다.

몇 번 더 보게 되어 아이 엄마에게 알고 계시길 당부했지만 가정에서는 내 아이가 생전 그런 행동한 걸 본 적이 없다며 넘어갔다.

가정교육은 부재하고 그 자리에 사치와 물질이 들어앉았다.

비슷한 사례를 볼 때마다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적당한 결핍이 필요하다'라는 것이다.

결핍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인간 자체가 취약하기에 겸손할 수 있다.

그렇듯 인간은 물질적인 면에서 결핍을 느끼면 되레 지금 누리고 있는 사소한 것에 감사함과 기쁨을 음미하게 된다.

부족하면, 있는 것에 고마워하고 누군가 나에게 해주는 것에 더 커다란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내 아이는 과연 밖에서 잘하고 다닐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가정교육을 시킨다고 시키지만, 다른 부모도 자기 자식이 이리 행동하고 다니는 걸 모르는 건 아닐까 싶기에.  

모두가 바쁜 현대 사회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밖에서 이런 일을 겪으면 내 아들은 선생님께 예의는 갖추고 행동할까, 누군가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할까 궁금해진다.

그럴 때마다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고뇌 끝에 가장 좋은 교육은 부모가 아이 앞에서 끊임없이 선행하는 것이라고 답을 내렸다.

그것만큼 몸으로 보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가정교육이 없다.




난 오늘도 이웃을 만나면 먼저 고개 숙여 인사한다.

약국을 갔다가 나올 때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한다.

아이는 이런 나를 보고 따라 한다.

가게에서 계산하고 나올 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넨다.

역시 멈칫하다가 엄마를 보고 아들이 엉거주춤 따라 말한다.

왜 인사를 먼저 안 하냐며 아들을 타박하거나 따져 묻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타인에게 한결같은 예의와 감사를 보이는 것이 내가 부모로서 할 소임이려니 생각한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는 내 아이의 몸에 배지 않을까.' 하고 기도할 뿐이다.


"밖에 나가서 어른을 만나면 먼저 공손히 인사해야 해, 감사하다고 말해야 해"라는 백 마디 말보다 부모가 몸소 실천하는 한 번의 행동이 길이 자녀에게 각인될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니 말이다.


오늘은 어쩌다 글이 일장연설이 되어 버렸다.

독감으로 하루종일 사경을 헤맸다.

약과 바이러스가 몸 안에서 전투를 벌이니 정신이 몽롱하다.

입맛도 없고, 힘도 없어서 몸이 물에 젖은 수건처럼 무겁고 축 늘어진다.

그래서 그냥 써지는 대로 쓰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에세이는 이렇게 가르치는 어조로 쓰면 안 된다. 또한 훈계조로 쓰면 아니 된다.

오늘은 '그 안 좋은 에세이'의 예시를 여실히 보여드리는 것에 의의를 두려 한다. ^^;




작가라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늘 괜찮고 감동을 주는 글만 쓸 수는 없다.

우린 모두 평범한 사람이지 않은가?

작가이자 사람이기에 모든 작가에게도 결핍이 존재한다.

고로, 이 세상에 완벽한 작가도, 완벽한 글도 없다.

다만 꾸준히 쓰다 보면 느는 것이 글이고, 생각이다.

확실한 건, 잘 쓰고 싶어서 우물쭈물거리다  쓰는 것보다는 망한 글이라도 쓰는 게 훨씬 낫다는 것.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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