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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나 Aug 28. 2022

운동치인 내가 유일하게 1등 한 바로 그 종목

 알고 보니 중딩이의 인생 깨달음

운동치인 내가 유일하게 1등 한 바로 그 종목


태어나서부터 몸이 약했던 나는 정말 뼈 밖에 없었다.

지금의 내 몸 상태(?)를 아는 사람들은 의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너무 튼실하니까.

어렸을 때는, 자연스레 활동도 많이 안 하고 체육시간을 즐기지 않았으나 여중을 입학하면서부터 내게 여러 변화가 일어났다.

그중 하나가 바로 '체육시간'을 대하는 나의 자세이다.





중학교 1학년 체력장 시간이었다.

100미터 달리기 18초 대, 제 자리에서 멀리뛰기는 뒤로 자빠지거나 근거리로 간신히 커트라인 통과.

정말 이건 노력으로도 안 되겠다 싶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장거리 달리기'였다.


여자 중학교의 장거리 달리기는 지금 기억으로는 총 러닝 거리 800m~1000m 정도였던 것 같다.

대략 운동장 전체를 5번 정도 돌면 되는 것이었는데, 한 반 인원을 팀으로 나눠서 하고 마감한 시간을 기준으로 등급을 나누어 시퍼런 색의 도장을 정육점 고기에 등급표 찍어주는 것마냥 손등에 '꽝'하고 찍어주셨다.  

그것이 비록 생고기의 투뿔 도장을 닮았을지라도 난 높은 등급의 도장을 꼭 한번 손등에 받아보고픈 열망으로 가득 차올라 있었다.


그 목표가 들어선 때부터 친구들이 달리는 걸 유심히 관찰하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단거리에 약하고 체력이 약하니 초반부터 상위권에서 최대한 힘을 보존한 채 머물러 달려가야겠다고 머릿속에 나름의 전략을 세웠다.

너무 헉헉 거리듯 숨을 쉬면 안 되겠다고 스스로를 단도리했다.

다른 친구들을 보니 호흡을 정직하게 내쉴수록 힘이 금방 빠지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가슴은 콩닥콩닥.

'달리는 동안 다른 아이들을 쳐다보지도,
 의식하지도 않을거야.'

그것이 나의 마음을 더 흔들 것 같았기에 이 순간만큼은 오롯이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들 준비해. 선생님의 총소리가 울린 뒤 달리는 거야. 알았지?
자! 준비....


땅!


드디어 시작했다.

난 전력을 다해 아주 잠시 10여 초를 질주해서 상위권 안에 무사히 체류했다.

내 앞으로 친구들이 3~5명 정도 보였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난 지금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들의 달리고 있는 두 다리가 무거워지고 있는 듯 보였다.

한 명, 두 명...  속도가 늦춰지다가 그들은 꾸준한 속도를 유지하는 나의 뒤로 서서히 밀려 나갔다.

어느 새 5위에서 4위, 그리고 3위로 달리고 있었다.

맨 앞을 유지해서 달리고 있는 친구는 꽤나 쌩쌩하고 활력이 넘쳤다.


쟨 어쩜 저렇게 잘 달리지? 체력도 좋다.
대단하다 정말...



순간 부러움이 느껴졌다.

어려서부터 저질 체력이었던 나는 그녀를 보다가 용기가 쭈글쭈글해졌다.

그러나 재빨리 그 생각을 내 머릿속 지우개로 쓱쓱 지워나갔다.



비교하지 말자!
난 지금의 나대로 하면 되니까, 괜찮아.


다시  다독이고 2단계 작전들어갔다.

 바퀴 정도 처음 속도와 똑같이 달리기 시작하니, 어느새 선두 무리와 중간 무리의 간격은 멀찌감치 벌어져서 여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이 시점부터 앞으로만 가면 된다. 즉, 속도를 내야 하는 것이다.

난 나의 온몸에 남아있는 총 잔여 에너지를 불사를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남은 두 바퀴!

이 두 바퀴 안에 승부를 보아야 한다.


깊게 호흡을 들이마시고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나의 두 발의 교차는 더욱 빨라졌고, 내 가빠진 호흡과 달음질 소리가 앞서 있는 두 번째 친구에게 들렸나보다. 그녀는 갑자기 뒤에 있는 나를 황급히 돌아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뭐야??!'

라는 듯한 그 친구의 놀란 눈빛에 난 표정이 없는 얼굴로 답하고 그저 묵묵히 앞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를 앞질렀다. 그 친구는 이 상태가 지속될 거라고 여겼는지 스쳐지나가는 나를 보며 더 당황한 기색이 역력히 보였다.

그 후로 난 그 아이의 분위기를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가슴은 쿵쾅거렸고, 온몸이 찌릿했다.

 죽을 각오로 달릴 생각을 했기에 마지막 젖먹은 힘을 다해 기차처럼 폭주했다.

내가 달리는 내내 단 한 가지, 꼭 지킨 나 자신과의 약속이 있다.


바로 '호흡'이다.

이 경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다른 친구들의 경기를 보며 '길게 쉬고 길게 내뱉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호흡이 짧을수록 금세 지쳐가는 게 보였기에.

그리고 마지막 한 바퀴.

난 딥한 호흡을 유지한 채 '장거리 달리기'전에서 단거리 달리기처럼 마지막 한 바퀴를 사력을 다해 달렸다.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마지막 3분의 1 바퀴를 놔두고 난 처음부터 끝까지 1등을 고수하며 달리던 그 엄청난 체력의 친구를 제치고 1등으로 들어왔다.

정말 간반의 차였다.

벅찬 감동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경기를 마치자마자 구토가 나올 것 같아서 몸을 앞으로 숙이고 숨을 내쉬며 헛구역질을 했다. 그 와중에도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며 주저앉지 않았다.

친구들이 내게 우르르 몰려들었다.


너 괜찮아? 미쳤어! 와...! 너 일등 했어!!
진짜 대단하다!
막판에 어떻게 그렇게 따라잡을 수가 있어?


친구들은 나보다 더 흥분의 도가니였으나 난 아직도 날숨을 고르느냐 정신없어서 그들에게 뭐라 답할 수 없었다.

그들이 이렇게 놀란 이유는 아마 운동치로 유명한 내가 그들의 예상을 깨고 한 운동경기 종목에서 일등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피구를 해도 공이 무서워서 피해 다니기 바쁜 나이다.

농구 드리블도 잘 못하고, 공을 차려다가 헛발질을 하는 것은 다반사. 구기 종목을 할 때마다 친구들의 비웃음이 나의 벗이었다.

그럼에도 난 늘 의욕은 만땅, 도전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저 현실 속에서의  몸은 주인의  바람을 못 채워줬을 뿐.

아마도 그런 나였기에 반 친구들이 더욱 많이 놀란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체력장 '장거리 달리기'에서 학년 1등을 한 이후로, 난 중2, 중3 체력장에서도 장거리 달리기 1등은 놓치지 않았다.

이제 그 방법을 터득한 것이었다.

바로 '속도를 내야 하는 타이밍'과 '깊은 호흡'이다.


마음이 급해지면 우리의 호흡도 동시에 가빠진다.

그때 나의 의식이 그 호흡의 흐름을 조절해줘야 한다, 갈급하다고 지금 숨을 내쉬면 더 힘들어질 뿐이라며.  

그리고 호흡은 한결같은 속도로 깊게, 천천히 유지해줘야 한다.

가속도를 붙이는 것 역시 적시의 타이밍이 존재한다.  


오늘 아침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난 후 그와의 대화를 혼자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그리곤 문뜩 유년 때부터 이 '장거리 달리기' 경기를 사뭇 진지하게 대하던 어린 나의 시선이 떠올랐다.



그래, 우리의 인생에서도
장거리 달리기와 같은
적절한 타이밍과 깊은 호흡이 필요하지.



지금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이 겪고 있는 그 문제는 결코 '난관(難關)', 어려움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저 지금 당신에게는 적절한 타이밍이 필요할 뿐이니, 함께 한 발 물러나서 깊게 호흡하는 연습을 하자고 말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우리네 인생을 꾸준히 달리기 위해서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담담히 대처할 수 있는, 꾸준하고 심도 있는 숨이 필요하니 지금은 우리에게 그 호흡을 연습하는 시간이 주어진 것뿐이다.


이런 진리를 체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늘에 계신 지혜롭고 현명하신 분께서 내게 한 마디 해주시는 것 같다.



급할 것 없다, 한걸음 한걸음 단단히 내딛거라.
그리고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거라.

라고 말이다.


덕분에 나도 간만에 오늘 꿀잠을 잤다. 그리고 마음의 여유를 누리고 주변을 바라보았다.

읽고 싶었던 책도 집어 들어서 책장을 천천히 넘겼다.

그러고 나니 모든 게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중학교 장거리 달리기에서 마지막 결승선을 지나자마자 선생님께서 내 손등에 숫자 1 도장을 찍어주셨을 때처럼 말이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때의 기쁨은 어느 십 대의 첫 도전에 대한 성취감이었고,

지금은 삶에서의 깨달음을 얻은 것에 대한 사십 대 중년의 감사함의 기쁨이다.


우리의 생김새처럼 마음의 모양도 저마다 다르다.

인생을 살면서 느끼고 받아들이는 '감정의 태'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현재 잠시 앞이 안개처럼 뿌옇게 보이는 이 길이, 실은 2보 전진을 위해 속도를 잠시 늦추라는 것임을 알았으면 한다.

또한 호흡을 가다듬고 나아갈 때를 위해 준비하고 있으라는 뜻이 담겨있음을 모두가 알 수 있기를 바라는... 그런 밤이다.

아니 '이미 모두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라며 피식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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