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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나 Oct 09. 2022

이 세상의 갑(甲)질 피해자들을 위한 애도의 글

feat. 갑질 행각이 부른 불쾌한 이사

어제, 오늘 난 마치 유년기로 돌아간 듯 각각 하루 13시간 이상은 족히 잤다.



흠...인간이 어떻게 연 이틀간 매일 13시간이상 잘 수가 있지?
세상에!



라고 혼잣말을 하며 허리가 뻐근할 정도로 아무 생각없이 잠만 자는 것이 얼마만인지 되짚어보았다.

낮동안 그렇게 잠을 잤는데 또 밤이 되면 잠이 온다. 내 삶에 있어 매우 희귀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잠이 쏟아지는 걸 보니 내가 그간 정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나보다.

이 장시간 수면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불쾌한 이사'이다.



거, 월세 사는 주제에 바라는 것도 많네!



약 2년 전, 이사 첫날 들은 말이다.

월세 계약을 하고 들어와서 어두워진 등과 잠기지 않는 노후된 화장실 문고리를 교체해달라고 요청하자 집주인 할머니, 아니 정확히는 딸 명의의 집을 관리하는 어머니인 그 할머님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월세를 매월 꼬박꼬박 낸다는 것은 소모품, 이사 입주 시 노후된 물품에 대해 교체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이 할머니는 왜 자꾸 내게 선을 넘는 걸까?


계약 당시 계약자가 딸이지만 사실 나의 집이라고 우기시며, 대리인 서류도 가져오지 않은 채 주먹구구식으로 계약서에 싸인하기를 요구했다. 딸이 일하기 때문에 귀찮게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일면식 없는 집주인과 자신이 실 소유자라고 우기는 할머니, 부동산 주인은 좋게 하자며 이 할머니랑 하면 된다고 말하고... 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가족관계 증명서와 집주인이라고 우기는 할머니의 민증을 확인하고 모든 내용을 서류에 적고 마지못해 싸인을 했다.

이런 내가 못 마땅했던 걸까?

약 2년이 채 못 되는, 이 집에 거주하는 동안 이 할머님은 나와 종종 부딪히는 일이 생겼다.



아.. 아.. 관리사무소에서 알립니다.
음식쓰레기 키가 새로 바뀌어서 발급되었으니,
각 세대에서는 일주일 안으로 경비실에 오셔서 받아가 주세요.


작년 초, 이 방송을 들었고, 느지막이 갔을 때 우리 집 쓰레기 키를 이 집주인 할머님이 가져가신지 꽤 되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할머니는 1102호 키도 달라며 가져가셨단다.

'뭐지? 남의 음식쓰레기 키는 왜 가져간 걸까...?'

우리 집 음식 쓰레기 키를 도대체 왜 가져가신 거냐고 전화로 물었을 때 할머니에게서 돌아오는 말은 쌍욕이었다.


"아, 주면 될 거 아니야 , 거참 별걸 가지고 지랄이네. 그 년... (뚝)"


'What! 지금 욕한 거야? 이게 욕 들을 일인가? 대체 욕은 왜 하는 거야?'

월세 주제를 언급한 이후 벌어진 이 사건, 문을 열면 양해도 없이 우리 집 안으로 불쑥불쑥 들어오는 무례함, 그리고 이제 쌍욕까지...!

명의상 집주인인 따님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털어놨을 때, 돌아오는 말은 이해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따님(실명의자) : 저희 어머니가 몸이 많이 아프세요. 몸이 아프신 이후로 신경이 날카로워서 그러신 것 같으니 이해 부탁드려요.


나: 따님, 몸이 아프면 남한테 이렇게 욕할 수 있나요? 그럼 따님한테도 그렇게 평상시에 욕하시나요?
이건 몸이 아픈 것과는 별개의 문제 같은데요. 전 그분의 가족이 아니라서 돈 꼬박꼬박 내가면서 그런 개인 사정까지 감당할 이유가 없는 것 같네요. 정도가 너무 지나치잖아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중년의 따님은 죄송하다는 말로 마무리 지었다. 그녀도 돌아가는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쯤은 아는 것 같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실집주인이신 따님과 소통하고 싶다고 말하니 알았다고 답변하시고 통화를 끊었다.

그 후 몇 차례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따님과 소통하였고, 할머님은 한동안 잠잠했다.

그리고 올해 4월에 정말 오랜만에 그 할머님에게 또 전화가 왔다.



6개월 뒤, 만기 되면 집 무조건 빼. 알았지?
우리 아들이 이번에 결혼해서 그 집에 들어와 살아야 해.
난 말했다~ (뚝)


 

일하는 중에 전화를 받았던 나는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지금 몇 가지 계획이 있었고 그전까지 이사 갈 예정이 아니었기에 난 임대차법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따님이 계약자인데 계약자의 동생 관계이신 분이 이 집에 들어온다는 이유로 우리를 내쫓을 수는 없었다.

직계존속이 아니기에 합당한 사유가 성립되지 않는다.

난 할머니에게 확인 전화를 했다.


나: 할머니, 할머님의 아드님이 결혼해서 들어온다는 건가요? 아니면 계약자인 따님 아들이 들어온다는 건가요?


할머니: 걔한테 아들이 어딨어~? 내 아들 들어온다는 거야. 왜?!


나: 할머님 아들이면 따님의 남동생이겠네요.


할머니: 그렇다니까, 왜 자꾸 물어!


나: 알겠습니다. 저희 연장할 거니 그렇게 아시고요, 할머님은 실 계약자가 아니셔서 미리 저한테 고지하셔도 법적 효력이 없어요. 그렇게 알고 계셔요.



그리고 계약 연장 의사를 따님에게 문자로 보냈다.

주변 부동산을 돌아다녀보니 이 모녀는 경기가 안 좋아서 부동산 가격이 점점 내려가니 불안한지 하루빨리 이 집을 팔 생각이었다.

임차인이 연장 거주 의사를 보낸 이상, 임대인은 법적으로 본인의 이익을 위해 집을 팔거나 , 타인에게 다시 재임대를 하기 위해 임차인에게 퇴거를 요청할 수 없다. 

그런데 이 괘씸한 모녀가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우리를 내쫓으려 하는 것이 아닌가?


경기가 힘들면 당신네들만 힘든 걸까? 우리 모두가 다 힘들다.


실집주인인 따님은 나에게 불가피한 사정이라 저희도 어쩔 수 없다며 우리에게 퇴거 요청 서류를 보냈고, 사유에는 거짓말을 적어놓았다.

그들은 각자 자신 명의의 집들을 한 채 이상씩 가지고 있으면서도 월세 살이하는 나보다 많이 힘든가 보다.

그렇지, 힘듦의 기준에 정답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그렇다고 부당한 사유로 사람을 내쫓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나중에 내가 행정센터에 가서 집 소유자를 알 수 있고, 이 부분을 고소하여 3개월치의 월세+이사비를 받아낼 수도 있다.

처음에는 더러워서 이사를 나가고 사람을 기만하는 이 이기적인 모녀를 법의 이름하에 처벌받게 하려고 했다.

자신들의 이해타산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살다니... 세상이 그렇게 눈속임으로 호락호락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다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이들에게 에너지와 시간을 쏟는 것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런 이기적인 마인드로 산다면 평생 마음이 풍족하기 어려울 테니.

생의 마지막까지 돈이 있어도 돈이 없다며 허덕이고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채 바삐 살아갈 테니.

박복하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돈이 많아도 타인을 생각하고 베풀 줄 아는 넉넉함이 있을 때 비로소

그 빛을 발하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50평짜리 내 집도 소유해 봤고, 역대 최고의 780대 1의 경쟁률이었던 신도시 청약 당첨도 되어서 재테크도 해봤고, 타인에게 월세도 주고 살아봤다.

하지만 돈이 있다고 해서 사람을 이렇게 하대하고 속여가며 살진 않았다.

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 남을 해치며까지 휘두를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난 고민 끝에 좋게 나가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부터 허겁지겁 매일 부동산 사이트와 주변 부동산 사장님들과 통화하며 매물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경기가 어렵다 보니 월세가, 아니 정확히는 적당한 금액의 월세 매물이 없었다.

이사라는 것이 만만한 게 아니었다. 불편부당한 일임을 알면서도 행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결국 운 좋게 두어 달만에 싼 매물이 나왔고, 다행히 옆 아파트라 아이의 학교 전학을 염려할 필요도 없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우울한 이사를 하는 날이 왔다. 떠밀려 나가는 것이기에 결코 유쾌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기분이 씁. 쓸. 했. 다.

헌데 이사 가는 날, 이 할머니가 또 실수를 하셨다.


우리 가족이 이삿짐 옮기는 분들을 위해서 음료수를 사러 잠시 편의점에 나온 사이에 이 집주인 할머님이 오전 댓바람부터 짐을 빼고 있는 우리 집에 허락 없이 들어와서는 이삿짐을 옮기고 있는 분들에게 훈수를 두며 잔소리와 참견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장면을 목격한 나는, 그동안 참았던 분노가 활 화살처럼 폭발해버렸다.


나: 할머니 여기 왜 또 들어오셨어요? 저 오늘 나가는 당일 비용까지 드렸거든요. 오늘까지 제 집이에요!
     왜 남의 허락도 없이 또 집에 들어오셨냐고요?!


할머니: 나가면 되잖아! 나... 별 미친...


나: 말만 하지 마시고, 지금 당장 나가세요!


할머니: 야! 근데 너는 어른한테 위아래도 없냐? 뭐 이런 년을 봤나.


순간 어느 드라마인가 영화인가에서 들은 "그게 말이냐 방귀냐?"라는 대사가 퍼뜩 떠올랐다.

할머니의 뻔뻔함에 나도 모르게 이성의 끈을 놓고 이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으나 다행히 정신줄을 부여잡았다.


나: 어른 대접이요? 할머니가 어른 대접을 받고 싶으시면 그에 준하는 언행을 하세요. 그동안 할머니가 저한테 욕하고 실수한 게 한두 번이세요? 이게 도대체 몇 번째 인가요?
그래도 제가 조부모님과 평생 살아와서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를 갖춰 존대해드리는 거거든요.
근데 한계치에 왔어요. 좋게 이사 나가는 것도 아닌데 오늘 같은 날 이러시면 곤란하죠.
어차피 당신네 모녀가 이 집 팔 거 동네 부동산들에 소문 다 나 있고, 당신 딸한테 아들 없는 것도 알아요.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쫓겨나가지만, 그럼에도 좋게 나가려고 맘먹고 있는데 여기를 왜 또 와서 이분들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이세요?
도대체 무슨 권리로요?! 진짜로... 저랑 법으로 해보시겠다는 건가요? 어디서 또 욕이세요?!


할머니: 나참, 염병... 씨.. 가잖아, 가!!! 간다!


이삿짐센터 직원분들에게 막 대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간의 내가 당한 모욕과 수모가 오버랩되어 큰 소리로 분한 마음을 질러버렸다.

이삿짐센터 직원분들에게도 죄송하고, 토요일 오전부터 큰 소리를 듣게 된 앞집 가족들에게도 미안했다.  

허나 이 무개념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알려 주고 싶었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아무렇게나 본인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내뱉는 말들을 용인받을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는 것을. 


나이는 권리가 아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더 큰 책임과 마음의 격(格)이 따라주어야 한다.


살아온 세월만큼의 연륜과 인품이 나이와 정비례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인가 보다.

정신없이 이사를 마치고 집에 와서 집 꼬락서니를 보는데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그리고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너무 억울했다.

하지 않아도 되었을 고생이었고, 큰 이사 비용 지출과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그냥 더 이상 부딪히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우리 부부의 결론이었으니 누구를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나의 감정이라는 녀석은 사실 그렇지 않았나 보다.  


이사한 집은 이전 집보다 훨씬 허름하고, 좁고 불편함 투성이다.


그럼에도 이 불편한 집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 있다.

바로 베란다의 경치이다.

특히, 야경이 예술이다!

이것이야말로 돈 주고 봐야 할 뷰(view)가 아닐 수 없다.

난 이사 온 며칠 동안 이전 집주인 모녀로 인해 쌓였던 울분을 새로운 터전의 야경으로 힐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 비가 왔을 때에는, 촉촉하게 젖은 도심의 야경을 보는데 어찌나 시원하던지 구질구질하게 찌든 감정까지 씻겨나가는 듯 했다.

그날 창 밖의 풍경을 보면서 마치 만년필로 내 마음 공책에 꾹꾹 힘주어 적어 내려 가듯 다짐해보았다.


4년 안에 내 집을 꼭 마련하고 말겠어.
그리고 난 돈이 생길 때마다 꼭 베풀며 살 거야.  
나이가 들수록 품이 넓은 사람이 될 거야.



사람마다 '돈이 생기면'이라는 것에 대한 기준은 저마다 다르고, 정답도 없다.  

나는 현재 갚아야 할 빚도 넘쳐 나지만, 그 빚도 갚아가며 초록어린이재단에 매월 아들의 이름으로 1만 원씩 기부를 하고 있었다.

너무 소소한 금액이라 적으면서도 민망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것이 내가 매달 꾸준히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지난달, 기부 1년이 되었다며 감사하다는 편지를 초록어린이재단으로부터 받았는데 괜스레 마음이 따스해졌다.   

또한 조만간 나의 첫 치유 에세이 <나는 왜 남의 눈치만 보고 살았을까?> 의 첫 수익 정산을 하면 이 또한 전액 미혼모 가족에게 기부할 수 있다. 책을 출간하기 전에 내렸던 결정이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며 한심스럽다며 혀를 끌끌 찰 수도 있겠다.


'보아하니  이 작가라는 사람, 지금 본인 코도 석자인 것 같은데 웬 기부람? 기부가 뭐 유행인가?' 라고.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저 내가 41살 때 온갖 시련을 겪고 난 뒤 다시 사료하게 된 도움이나 기부는,

'내 수중이 꼭 여유롭고 많아야 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살면서 힘들면 힘든 대로 다른 부분에서 아끼고 나누는 것'이라고 판단 내렸기에 나올 수 있는 행동이다.

사실 그전까지는 나도 나라에 큰 사가 생겨야 겨우 기부를 하곤 했다.

남편에게도 나의 이런 뜻을 말했고 동의해주었다.

 

나의 에세이에도 나와 있지만 난 그 많던 재산을 모두 누군가에게 줘버리고, 사기도 당해봤기에 사실 '돈'이라는 것이 인생에서 전부가 아니라는 값비~싼 인생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악인 '돈'이라는 것을 결코 무시할 수 없지만, 어떻게 돈을 벌고 모으느냐, 돈이 어떤 방향으로 쓰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진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눈앞의 상황과 돈 때문에 두 가지 인, 사람(人)과 어짊(仁)을 잃지 않는 현명한 사람으로 성숙하고 싶다.

이번 이사 과정과 이전 집주인 모녀의 갑(甲) 질이 내게 또 한 번 깊은 반면교사가 되었다.


지금 한솥밥을 먹고 사는 내 남편도 이런 나의 시끌시끌한 속내를 잘 모르는데, 남들은 오죽할까 싶다.

꼭 하나 기억했으면 하는 것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힘들고 저마다의 사정을 지닌 채 살아간다.

'이해'까지는 어렵더라도, 평소 '배려 한 스푼'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다정해질까?



음... 상상만해도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반면교사: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는 용어.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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