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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나 작가 Oct 26. 2022

동거와 결혼을 해보셨으니, 그 차이가 어떻던가요?

동거 VS 결혼

다시 들어가서 이야기할까요? 밖에 추운데...


4년 전,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삼월의 어느 날.

새벽 2시를 향해가는 야심한 시간에 그 13살 연하남은 내게 다시 커피숍으로 들어가자는 제안을 했다.

늦었으니 이제 헤어지자며 나와놓고는 문 앞에 어정쩡하니 서서 또 대화를 이어가는 우리의 모습에, 그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다고 직감했나 보다. 아니면 다리가 아팠나...?

뭐 어쨌든 핸드폰의 시계를 보고 놀란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나: 음.. 새벽 2시가 되어가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전 원래 늦게 자긴 하는데... 평소 늦게 주무세요?


그: 아니요. 근데 어차피 늦은 거 들어가서 20분 정도 더 이야기하고 헤어지는 게 어떨까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카페 안으로 다시 들어갔고 덕분에 뭔가 뒤끝이 찜찜했던 이 대화를 깔끔하게 끝맺음할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 부부 인연의 시작점인 줄은, 그때는... 그때는 진정 몰랐다.





이렇게 연인 관계로 다시 시작한 우리는 '동거'라는 거주 시스템에 몸을 담갔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이 동거를 하기까지 정말이지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치치 않은 채, 남자와 한 공간에서 산다는 것.
과연 동거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득(得)일까? 독이 될까?

사람들은 왜 동거를 하는 걸까?


그때까지 한 번도 동거를 경험해 본 적 없는 나는 두려움과 의문이 동시에 들어섰고, 그날부터 네이놈으로 '동거를 하는 이유'와 '동거의 장점과 단점'등을 검색해댔다.



흠... 그래.
서로의 민낯까지 알 수 있는 좋은 생활 방식이 될 수도 있겠네.
같은 공간에서 24시간을 살아 봐야 서로에 대해 더 정확히 알 수 있겠지.
오오~ 일리있네!

이 당시 싱글이었던 그와 달리 결혼과 이혼을 앞서 경험하고,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시간들을 거쳐온 나는 누군가와의 '결혼'이라는 단어에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치가 떨렸다.

사람은 좋은데, 그럼에도 결혼까지는 원하지 않았다.

사람은 좋은데, 이랬던 사람이 또 어떤 본모습을 가지고 있다가 내비칠지 내심 불안했다.

선하다고 과신했던 사람에게마저 배신을 호되게 당하고 이별했던 터라, 다른 이에게 마음을 활짝 열기 쉽지 않았던 나는, 이 시기에 수 십 명의 보초들이 나의 내면의 문앞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  

그럼 왜 '동거'를 생각했냐고 누군가 물을 수 있겠다. 그렇게 괴로우면 혼자 살면 되는데 말이다.








친구처럼 지냈던 그가 날 좋아한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했을 때, 나는 가볍지 않은 그의 호감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어쩌면 이때의 난 상처로 너덜너덜해져서 따스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게 막연한 남자가 아닌 옆에서 함께 일하며 인간적으로 잘 알고 지내오던 그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순식간에 동료에서 남녀관계로 바뀌어버린 우리는 서로에 대한 감정이 깊어지면서 평소답지 않게 내가 먼저 동거라는 것을 제안했고, 망설일 줄 알았던 그는 흔쾌히 그러겠노라 답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교제하기 시작한 그 해 늦여름부터 같은 현관문을 열고 드나드는 삶을 맞이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동거는 내게 단순히 같이 생활하며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시간이 아니었다,그것은 '나의 방어막'이었다.

이렇게 살다가 상대의 감춰진 다른 모습을 마주하고 그것이 행여 내 가슴을 쿡 찌르면, 단숨에 돌아서려 했던 날 위한 안전장치였다.

더 이상 관계에 의해 고통받았다가는 세상의 끈을 놓아버렸을지 모를 정도로 아팠던 나였으니까.







어제 심리 스터디에서 '칼 융의 분석심리학'을 심도 있게 파고들었는데 교수님께서 갑자기 내게 질문을 던지셨다.


리나 선생님, 선생님은 결혼이라는 의례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선생님은 결혼과 동거 둘 다 경험해보셨으니 말씀해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난 잠시 생각에 잠겼고, 곧 입을 뗐다.



나:  동거는 서로에게 어쩔 수 없이 '책임이라는 것에 대한 가벼움'을 안겨주는 것 같아요.

결혼을 하면 신랑, 신부는 사람들 앞에서 성혼서약으로 선언을 합니다.

그 자체가 이 결혼에 대한 책임감, 진지함을 각자에게 더욱 부여해주고, 부부관계를 대하는 마음가짐 자체를  

다르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러나 '동거'는 그냥 같이 살다가 안 맞으면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는 전제가 없지 않아요.

싸우면 결혼보다 쉽게 헤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싸울 때 선도 더 쉽게 넘어서는 것 같고요.


실제 동거와 결혼, 이혼까지 경험해 본 내가 느낀 바는 이러했다.

동거생활 2년이 넘어섰을 당시, 이미 우리는 마음으로는 서로에게 배우자였다.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도 '여보, 당신, 남편'으로 바뀐 지 한참이다.

'평생 이 사람과 함께 해야지'라는 생각이 진작에 자리 잡았으나 결혼식을 거추장스럽고 형식적한 의식이라고 여기며 외면하고 살아왔다.

그냥 조용히 사랑하며 살고 싶었다.


그러다 멘토이신 목사님께서 '결혼식을 반드시 올려야 하는 이유'를 우리에게 계속 말씀하셨고, 그와 살면서 여러 역경에 부딪히자 조용히 사랑할 수 없는 순간들이 들이닥쳤다.

우리는 그제서야 비로소 결혼의 필요성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 수 있었다.



살다가 다툴 때, 우리의 입에서 이런 말까지 튀어나오는 데 있어서
 '결혼식과 혼인 신고가 없는 동거'라는 삶의 양상이
과연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확언과 공표에는 내뱉은 말대로 된다는 믿음이 있고, 더불어 내가 한 말을 지켜야겠다는 무게도 실리기 마련이다.

이런 질문을 나에게 던지는 일이 몇 번 생기면서 남편과 진지하게 논의 후 우리는 결혼식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우리 둘의 사랑을 견고히 지키기 위해서, 서로에게 더욱 신중하며 이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래서 난 이제 그와 결혼식이라는 의례를 행한다.



이번 주 토요일에 우리 커플은 목사님의 주례로 가까운 지인 40여 분을 모시고 조촐하지만 예와 격을 갖춘 스몰웨딩을 한다.

결혼식을 하기까지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에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기간 동안 나에게도, 그에게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나의 기존의 관념이 새로이 세워졌다.

'결혼'은 단순히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함께 사는 행위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다.


실패를 맛보고 다시 혼인을 하는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결혼은 '서로 사랑하며 성숙하고 온전한 나로 다시금 성장해가는 여정', 그것이 바로 결혼이다.


고로 나는 '결혼'이란, 인간이 성숙과 성장으로 거듭나기 위한 필수적인 생활양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13살이라는 나이차, 나의 재혼이라는 배경 때문에 양가 가족의 우려 속에서 치러지지만 그들의 걱정이 무색하리만치 우리는 잘 살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그와 내 안에 가득 차 있다.

며칠 전 그 연하남이 내게 말했다.


자기야, 우린 잘 살 거야.

이 말을 던지는 그의 목소리 안에 아주 묵직한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과거의 나와 남편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단순히 인간  인간의 사랑, 그 이상의 믿음이 우리 인생의 중심에 우뚝 서 있기에...


맞아, 우리는 잘 살 거야.






이 글을 빌어 저희를 축복해주신 많은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서로 아끼고 존경하고 사랑하며, 받은 은혜를 베풀 수 있는 부부로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는 좋은 날, 그 기쁨을 몇 배로 나눌 수 있는 '좋아서 하는 기념일'이라는 후원이 있답니다.

꼭 큰 금액이 아니어도 되어요. 우리들의 기쁨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이로운 기회인 것 같아요.

유익한 정보 같아서 공유해봅니다.


 세이브더칠드런 기념일기부 (후원|기념일기부) (s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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