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리나 Nov 03. 2022

30초 차이로 브런치 공모전을 놓치다

feat. 슬픔을 받아들이는 5단계

째깍째깍... 적막하다 못해 시계 초침 소리가 크게 들린다.

12시 00분 30초, 31초, 32초...



나한테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



지난 일요일, 자정을 넘기고 40여 초가 지날 즈음 난 날 위로하는 남편에게 이렇게 못되게 말했다.


나...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열불이 나고 있는 내 속에서는 이 한 문장만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진짜 열심히 준비했다, 속도가 더딜지라도 심혈을 기울였다.

비록 너무 많은 개인사가 페스츄리처럼 겹겹이 쌓여 과부하가 된 나날을 보냈지만, 단 한 번도 이 브런치 공모전이 머릿속에서 떠난 적 없었다.

틈나는 대로 퇴고를 하고 내 글을 돌아봤다.

이미 제출한 다른 작가분들이 어떤 글을 공모했는지도 살펴보았다.

내 주제와 겹치는 브런치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기에 나름 콘셉트가 희소하다며 자부심을 지닌 채 준비했다.


그런데 전날인 토요일 내 결혼식을 마친 뒤, 배어있던 긴장감이 눈 녹듯 녹아내리고 온 몸에 힘이 풀려서 그냥 잠들어버렸다.

일요일에 부지런히 일어나서 교회에 다녀오고, 난 바로 스터디 카페로 향했다.

4,5시간만이라도 집중해서 마무리 짓자고 다부지게 마음먹었는데 한 편을 퇴고하는데 무려 한 시간씩 소요되는게 아닌가.


내 글이 이렇게 형편없었나...?  

분명 올해 4월 말 브런치 작가가 되고, 5월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글이었는데...

불과 5개월 정도 지난 지금, 그간의 내 글을 다시 읽으니 손발이 오그라들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런 글이 발행되어 다른 분들이 읽으셨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이대로 공모전에 내놓을 수는 없어!





어느새, 욕심이가 똑똑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실례합니다~. 좀 들어갈게요. 도저히 밖에서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요."라며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그렇게 내 안에 들어온 욕심이는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으며 내 글에 대해 지적질을 해댔다.


음... 진부한데...
여기 표현하신 게...  최선인가요?
이곳은 또 구구절절 늘어지잖아요.
아이고! 중복 표현을 쓰셨네.
나 참.. 답이 없네요.

한번 퇴고를 하고 나서 다시 보면 또 다른 부분이 눈에 거슬리고,   마쳤다 싶으면 또다시 아쉬운 곳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글 한편 퇴고하는데 1시간 넘었다.

공모전에 응모해보는 것이 처음이라 잘하고 싶었나 보다.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공모전에 응모하는 글다운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나의 과욕이었다.


어차피 퇴고에는 끝이 없을 텐데 난 도대체 무엇을 바란 걸까?

초반부 에피소드까지 손대고 중반부 에피소드는 읽지도 못 했는데 마감시간이 얼마 안 남아 그냥 목차를 설정해야만 다.

마감 5분 전!



마음이 다급해진다.

손에 미세한 떨림이 일기 시작하고, 난 초조해졌다.

근데 목차를 옮기는 중에 갑자기 에피소드 20화가 마우스 포인트에 딱 달라붙어버렸다.


어? 왜 이러지?


이상하다.

마우스 포인트에 계속 '에피소드 20화'가 껌딱지처럼 달라붙어서 마우스를 '위아래 위위 아래'로 왔다 갔다 해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아닌가!


이 상태로 다음 단계로 넘기면 에피소드가 뒤섞인, 준비가 미흡한 브런치북으로 공모되는 것이고, 앞으로 돌아가면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게 자명하다.

망할! 이런 게 사면초가로구나!

절망적이었다.

나는 내 모든 힘을 티끌까지 모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 끝에, 그냥 이전 페이지로 과감하게 돌아가버렸다.


암담했다.

갑자기 눈물샘에서 물이 마구 뿜어져 나오면서 눈앞이 뿌옇게 변해버렸다.

모니터를 제대로 보기 위해 눈물을 훔쳐가며 마무리를 해 나갔다.

내 컴퓨터 오른쪽 하단에 있는 똑똑한 디지털시계는 나에게 11시 59분을 보여주었다.

오른쪽 구석탱이에 있는 그 작은 글씨가 왜 이리 크게 느껴지던지.



괜찮아. 침착하자. 조금만 하면 돼.



이미 두 눈이 벌겋게 부어오른지 오래였으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노라 이를 악물었다.

갑자기 브런치 시스템이 먹통이 된 게 억울했지만, 이미 지나버린 거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됐어!
이제 완료 버튼만 누르면 돼.



이 안도의 기쁨을 느끼는 찰나에 시계가 오전 12:00로 막 바뀌었다.

아...

...



맥이 빠지고 양 어깨가 축 늘어졌다. 눈물이 하염없이 뚝뚝 떨어졌다.


"자기야, 아까는 내가 미안했어.
앞으로 자기가 나한테 말할 때 핸드폰 하면서 듣지 않을게."


라고 남편이 말했던 것 같다, 어렴풋이.


한 시간 전에 내가 남편에게 서운하다고 했던 일 때문에 내게 사과하려고 거실로 나온 남편은 책상 앞에서 훌쩍이고 있는 날 보며 놀라서 왜 우냐고 물었다.

그가 또 뭐라 뭐라고 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아무것도 내 귀에 접수되지 않았다.

그저 넋을 잃은 채, 걱정하는 남편에게 난 짧게 답했다.



30초 차이로 브런치 공모전에 내 브런치북을 제출 못 했어.
겨우 30초 차이로.



겨우 30초.

만약 삼십 초가 아니라 그 차이가 30분이었다면 좀 덜 아쉽고, 덜 속상했을까?






그림책 마니아인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에 <청소기에 닫힌 파리 한 마리>라는 심리 그림책이 있다.


이 책에는 인간이 '슬픔을 받아들이는 5단계'를 우연히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서 갇혀버린 파리 한 마리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부정- 타협- 분노- 절망- 수용


이 책을 읽을 때마다 기가 막히게 인간의 심리를 잘 풀어서 그림책으로 만들었다며 작가를 찬탄하곤 했는데 지금 내가 그 슬픔의 5단계를 거치고 있었다.




혹시 12시 1분 전이니까 브런치 측에서 너그러이 30초 정도 늦은 건 받아주지 않았을까?


내 브런치북은 12시 1분 전에 제출했으니 어쩌면 신청됐을지도 모른다는 씨알도 안 먹힐 기대를 안고서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나를 대면했다.

허나 공모전 주소가 완전히 사라졌고, 동료 작가에게 브런치북을 공모하면 공모되었다는 문구를 볼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한 후, 난 '부정'을 냅다 버리고 바로 '타협'으로 들어갔다.

옆에서 계속 날 다독이는 남편이 하는 말이 내게 속삭였다.


다른 출판사에 내면 되지, 아니면 내년에 공모전 또 있을 거 아니야?
자기야 속상하겠지만 내년에 공모하자.


그의 말이 꽤 합리적이고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과의 타협이 내 안에 몇 초간 체류했으나 그것도 잠시, 본격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엉엉거리며 아이처럼 울어댔다.

이렇게 목놓아 우는 것이 얼마만인가?


누굴 탓하겠어? 다 내 잘못이지.
난 게으른가 봐. 좀 피곤해도 참고했으면 이런 일 없었잖아.
진작에 준비했어지. 븅신!
나 같은 게 무슨 작가라고... 기본적인 태도가 글러먹었어!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셀프 디스를 퍼부었다.

곁에서 듣고 있던 남편은 이제 자기 비하까지 내려가는 거냐며, 너무 멀리 갔으니 돌아오라고 손짓했다.

그날 밤 울부짖은 뒤로 쉬어버린 내 목소리는 아직까지도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의 '수용'은 약 이틀 정도 지나서 "저 이제 으로 들어가야 해요. 충분히 감정을 삭일 시간을 드렸어요."라며 친절히, 조심스레 내 마음안착했다.


공모전 응모를 실패한 덕분에 난 월요일 밤마다 강의하는 '브런치 작가 되기 A to Z' 수업에서 이번 공모전을 준비한 과정 속에서, 또 응모를 못 하면서 분석하고 알게 된 숨은 꿀팁들을 수강생분들께 공유해드릴 수 있었다.


이래서 공모를 못 했나...?


집요하게 브런치북 분석하라고.

공모를 했다면 안도감에 노트북을 덮고 바로 잤을 테니 브런치북에 대해 샅샅이 알아보지 않았을테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다더니.

이렇게 숨겨진 팁과 정보를 파악하고 예비 브런치 작가분들께 알려드릴 수 있어서 새삼 뿌듯했다.


그 누가 말했던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그리고 될 일은 반드시 꼭 될 거라고.


너무 울어서 목소리가 맛이 갔지만, 수용이 내 안에 들어온 덕분에 그간 피 땀 눈물 흘리며 집필해 온 <리얼 연애 잔혹 실화: 그 남자는 단순히 13살 어린 연하남이 아니야>가 반드시 세상에 빛을 보게 되리라는 믿음은 컴백했다.


괜찮아. 앞으로는 과욕을 부리지 말자.
이 세상에 완벽이 어딨어?


여러 번 되새겨도 부족할 자기 다짐을 이렇게 해본다.

완벽보다는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만 다해보자고 말이다.

그러다보면 또다시 기회가 오지 않겠는가.


https://brunch.co.kr/brunchbook/bittersweetlove



- The En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