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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Feb 19. 2024

슬럼프가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도 언제나 그렇듯이 잘 지나갈 거야.

언제나 이런 순간은 있었다. 자부심을 갖고 해온 일들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낱낱이 드러나는 부족함에 어딘가 숨고 싶어지는 이 순간. 분명 더 나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도 알고 조금만 더 손과 발을 뻗어보면 아슬하게 닿을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딱 1mm가 부족해서, 어쩌면 그것보다 가깝더라도 슬몃 빗겨있는 바람에 결코 가닿을 수 없는 그런 순간. 슬럼프가 왔다.


회사를 다닐 때도 슬럼프는 왔었다. 꽤나 자신감을 갖고 임했던 일이라도 이때가 되면 모든 게 다 어설프고 허접해 보였다. 매일 쓰던 보도자료의 워딩도 미묘하게 자리를 잘못 잡은 것 같고, 관성처럼 쓰던 쉬운 이메일 하나도 몇 번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장표에 그럴듯하게 올라간 전략은 근거가 하나도 없는 판타지 같았고 사람을 대하는 것조차 얼뜨기처럼 어버버 하기 일쑤였다. 이 시간이 찾아오면 나란 사람이 이 일을 할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자리에 부합하는 사람인지를 스스로 심문하고 다그쳤다. 하지만 그게 답은 아니었다. 차라리 일 잘하는 누군가의 방식을 따라 하고 어떤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어떻게 해나갔으면 좋겠는지를 차분히 정리하는 게 나았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일을 위해서도.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회사에서 했던 일들은 내 의지보다 타인의 의지로 시작되고 끝을 맺는 경우가 다수지만 지금은 그저 혼자 글을 쓰는 것뿐이다. 또 회사 일은 위의 판단으로 인해 성과나 완성도가 책정되지만 혼자 글을 쓰는 사람인 나에겐 피드백을 해줄 누군가가 없다. 매일 글을 쓰며 '오늘 건 내가 봐도 진짜 웃기고 재밌다'하는 것도 나고 '이번 글은 축축 처지고 지루하다'하는 것도 나다. 지금도 이처럼 딱 부러지게 평가라도 되면 나을 텐데, 더 이상 무슨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르겠으니 큰일이다. 소재는 끊임없이 나오고, 글을 쓸 의욕도 퐁퐁 솟아난다던 과거의 나를 선망의 눈으로 보게 된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에 그리 다르기에.


글 자체에 대한 자신감도 많이 없어졌다. 내 자유의지로, 개인적인 것에 대한 개인적인 소견을 써왔기에 브런치에도 꽤 재미를 느끼며 글을 써왔는데 이전 글들을 보면 개성이라는 게 있는 건지... 이런 이야기들에 꼬박꼬박 하트를 눌러주시는 분들에게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다. 이제까진 글을 쓰는 방식을 배우면 개성이 무뎌질까 그렇게 하기 싫다 우겨왔는데, 유치한 마음으로 우기기엔 내가 글을 제대로 보는 눈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가야 한다, 글쓰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이대로 멈춰버리면 성장은 없다. 이대로 포기해 버리면 영영 이 정도의 글 밖에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어떤 시도라도 해야 하고 어떤 노력이라도 해봐야 한다. 피드백 하나 없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는, 처음 맞이하는 이런 상태가 두렵고 어렵다. 그렇다한들 어떡해. 하는 수밖에.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거라면 해야지. 이겨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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