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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Mar 05. 2024

'듄친자'가 듄2를 보고 심장이 뛰지 않은 이유

드니.. 무슨 일이 있는 거라면 당근을 흔들어주세요.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볼' 영화가 줄줄이 개봉하는 바람에 요즘은 매주 영화관 나들이다. 지난주엔 3년간 학수고대하던 듄2가 개봉했다. 듄 시리즈는 무조건 용산 아이맥스관에서 봐야 하는 나이기에 피켓팅으로 겨우 한 좌석을 구했고 어제 드디어 관람을 했다. 1편을 보고 난 후 '와, 나 이 시대에 살아서 정말 다행이다'하는, 콘텐츠를 통해 느낄 수 있는 희열의 최고점을 맛봤기에 이번이 더 기대되기도 했다. 감독 드니 역시 '1편은 세계관 설명용이었지만 2편에서는 제대로 미친 놀이터를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을 보였기에 그 기대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지요.



러닝타임이 끝나고, 아이맥스관의 광활한 스크린에 현기증이 나서 앉아있는 동안 들어갈 때의 흥분이 모두 가셨다는 걸 깨달았다.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차분함과 아쉬움. 곰곰이 생각했다. 분명 1편을 봤을 때는 광란에 가까운 흥분을 느꼈는데, 뭐가 다른 걸까. 왜 나는 더 이상 '듄친자'의 심장을 가지지 못하나. 이런 반응은 비단 나뿐만의 것은 아니었는지 한국 관객들의 호응 역시 뜨뜻 미직지근하다. 파묘에 밀려 힘을 못 쓴다고는 하지만, 정말 그럴까? 파묘도 보고 듄2도 본 나로서, 듄2가 왜 한국에서 영 기를 못 펴는지 개인적 관점에서 정리해 보았다.


(*스포를 최대한 지양하려고 했습니다만 예민하신 분들은 영화를 보고 오시길 권합니다!)


첫째, 영웅 서사에 대한 선호가 떨어진다.

듄은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웅 서사가 기본 틀이다. 공작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전쟁에 휘말리며 '리산 알 가입'이라는 예언자이자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 '폴'을 중심으로 세계관 내 적을 물리치고 사랑을 찾는, 어찌 보면 뻔하디 뻔한 스토리다.(원작 소설이 1960년대에 쓰였으니 그럴 만도) 이런 영웅 서사는 그리스 로마 신화 때부터 사람들이 선호한 콘텐츠계의 스테디셀러이긴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이런 스토리에 대한 니즈가 매우 떨어진다. 한국인들은 이제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다 갖추고 태어나 아무 시련이나 걱정 없이 즐길 수 있는 인물을 원한다. 만일 필연적으로 고난을 겪어야 한다면 막장 수준의 사이다는 던져줘야 볼 맛이 난다고 한다. 별 고통 없이 죽는 악역의 말로나 영웅으로서 폴이 겪는 고뇌는 한국인들이 즐기기엔 너무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이야기가 되었다.


둘째, 썩은 러브라인?

흔히 한국 드라마, 특히 장르물에서 전개와 어울리지 않는 설득력 없는 러브라인이 등장하면 '썩은 러브라인 빼!'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듄2 역시 이런 느낌이 살짝 난다. 2편에서는 1편에서 폴의 꿈마다 계시처럼 등장한 '챠니'와의 본격적인 러브라인이 형성되고, 이로 인해 서로의 위치에서 갈등하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이게 영화의 힘을 매우 빼는 요소가 되었다. 듄의 전체 세계관에서 챠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도 폴의 서사마다 챠니가 개입하고 둘의 관계성을 들이대는 것은 세련된 방식도 아니거니와, 폴이 지배자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겪는 내적 갈등에 챠니가 하는 역할도 설득력이 없어 캐릭터의 매력도 반감된다. 결말로 다다를수록 챠니가 주인공인지, 폴이 주인공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불필요한 씬 또한 '썩은' 러브라인에 불을 지피는 요소다.


셋째, 캐릭터를 보여주는 방법이 세련되지 않다.

1편의 가문 대 가문의 갈등은 2편에서 가문을 대표하는 캐릭터 간 갈등으로 구체화된다. 악역인 하코넨 가문을 대표하기 위해 새롭게 투입된 캐릭터가 바로 '페이드 로타(배우 오스틴 버틀러)'다. 그는 잔인하고 살기 어린 캐릭터로 그려지는데, 그 성정을 보여주기 위해 계획된 씬은 매우 화려하다. 엄청나게 많은 하코넨 추종자들이 모인 가운데 옛 로마 검투사들이 하던 것처럼 노예들과 격투를 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식으로 새로운 지도자의 데뷔를 알린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너무나 많이 봐왔고, 그래서 식상하고 권태롭다. 1편에서는 하코넨 가문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방식이 달랐다. 가장 잔인하기로 소문난 용병 '사다우카'를 거리낌 없이 고용하고, 잠깐 지나가는 프레임에서 죄수들이 처절하고 울부짖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용병들이 섬뜩하리만큼 가지런히 나열한 모습으로 은유적으로 보여주었기에 세련될 수 있었는데, 2편에서는 맥락 없이 직접적으로 보여주니 오히려 캐릭터 자체의 매력도 반감된다. 2편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이룰란 공주(배우 플로렌스 퓨), 레이디 마고트(배우 레아 세이두) 역시 원작을 따라가야 하니 넣은 캐릭터로 느껴질 뿐 정체성도 애매하고 어딘가 동 떨어진 느낌을 준다.


넷째, 악역이 고작...?

영웅 서사에서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건 악역과의 갈등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2편에서는 폴과 페이드 로타의 갈등이 절정에 치닫게 되며 전면전을 맞게 되는데, 이 모든 게 놀라우리만큼 임팩트가 없다. 티모시가 기대해 달라고 했던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었던 것 같은데, 뭔가 더 나오겠지? 하지만 더 나오지 않았습니다.. 1편에서 거대한 몸집만큼이나 큰 존재감으로 좌중을 압도했던 하코넨 남작의 마지막 모습 역시 너무나 허무하다. 본 캐릭터보다 악역에 더욱 열광하는 한국인들에겐 간에 기별도 안 오는 임팩트다. 이처럼 스토리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어야 할 악역이 화려한 등장과 상반되게 김 빠지게 퇴장해 버리니 그 공백을 러브라인이 채울 수밖에 없고, 결국 거대한 영웅 서사는 힘 없이 삐거덕대다 끝나버린다. 


마지막, 3시간 이슈.

유퀴즈에서 티모시와 젠데이아가 황급히 수습한 것처럼 듄의 러닝타임은 긴 편이다. 앞뒤 광고시간까지 포함하면 거의 3시간에 달한다. 인스타 릴스와 유튜브 쇼츠도 지루하다고 하는 시대에 꼬박 한 스크린에 집중해서 3시간을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 나는 위에서 언급한 쇼츠 플랫폼을 거의 보지 않고, 책도 꽤나 집중해서 읽는 편인데 나 역시 쉽지 않았다. 다만 1편은 용아맥에서 3번을 연달아봤음에도 지루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3시간이 쉽지 않다고 느낀 걸 보면 작품에 문제가 있는 것일 수도.


나영석 피디가 콘텐츠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기준이 매우 까다롭기에, 한국에서 반응이 좋아야 세계에서도 반응이 온다는 말을 했다. 듄2가 북미에서는 광풍 수준으로 반응이 좋다고 하니 이 말이 모든 경우에 통용되진 않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확실히 한국 관객을 만족시키기엔 이번 작품이 여러모로 아쉽다는 생각은 든다. 듄친자로 지난 3년간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올랐기에 더 실망이 큰 것 같기도 하지만. 2편도 (해외) 반응이 좋으니 아마 원래 계획했던 대로 3부작으로 마무리가 될 것 같은데, 3편 때는 듄친자의 심장이 다시 뛸 수 있길 진심으로 고대한다. 이대로 듄을 놓아버리기엔 너무 아쉬우니까요..


+ 해당 글을 수정, 보완한 내용은 아래 글에 담겨있습니다.

https://brunch.co.kr/@writerlucy/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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