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 Lucy Feb 29. 2024

유퀴즈X티모시=이게 최선인가요

얕은 질문들이 불러온 민망함

유퀴즈를 즐겨본다고 말한 적이 있다. 특히 어제는 반드시 본 방송을 봐야 하는 큰 이유가 있었는데, 내 최애 배우인 티모시 샬라메가 나왔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에서 제일 핫한 배우인 그는 (아직) 국내에서는 해외만큼 유명한 편은 아니지만 덕후들은 모두 그의 존재를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아트하우스 영화 중에 제일 성공한 '콜미 바이유어 네임'을 통해 화려하게 본인의 존재감을 알렸고, 이후 듄 시리즈, 웡카 등 핫한 영화는 모두 그가 주연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콜바넴을 보고 난 직후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남부 이탈리아의 햇빛 아래 살랑이는 곱슬머리와 처연한 그의 눈빛. 난 스타가, 그것도 아주 거대한 스타가 등장했음을 직감했고 그는 존재 자체로 그걸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틀었던 유퀴즈는 나에게 다리 떨림과 홍조를 선사했다. 한마디로 무척 실망스러웠고 민망했다. 자료화면 오탈자 문제야 급한 마음으로 편집했다면 어쩔 수 없지만... 질문의 뉘앙스나 내용 자체가 부끄러웠달까. 배우들이 등장한 직후 긴장을 풀기 위해 했던 여러 질문들과 농담은 그렇다 쳐도 후반부에 나왔던 "할리우드 배우로 사는 건 어떠냐", "두 사람은 쉴 때 뭐 하냐" 등의 질문이나 "할리우드 스타도 똑같네~" 같은 반응은 당황스러웠다. 개인적 사생활을 중시하는 서구권 문화에는 적합하지 않은 질문이라 느껴졌고, '한국 토크쇼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질문이라도 무례하게 들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예인 선망이 두드러지는 한국 문화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 같다는 불편함도 있었다.



아쉬움을 더 배가시킨 것은 티모시가 얼마나 인터뷰를 잘하는 인물인지 알기 때문이다. 콜바넴에 한창 빠져있을 때 그가 했던 인터뷰를 거의 다 봤는데 철학적 사유를 곁들인 그의 답변은 놀라울 정도였다. 본인이 맡은 인물에 대한 이해나 사견도 얼마나 몰입하여 고민했는지 느껴졌고, 인터뷰를 대하는 태도 역시 진지함과 동시에 유쾌할 줄 아는 프로 그 자체였다. 유퀴즈 제작진들이야 이전에 출연한 전적이 없는, 더군다나 대중들의 정보가 부족할 수 있는 해외 유명 배우를 초청해서 인터뷰를 했기에 적당히 그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고 상대방도 부담이 없고, 동시에 영화 홍보도 얹을 수 있을만한 질문지를 구성하려 노력했겠지만 그 의도를 감안하더라도 어제 인터뷰는 그 깊이가 얕아도 너무 얕았다.


최근 유튜브에서도 연예인들이 타 연예인을 초청하여 토크를 하는 포맷을 많이 볼 수 있다. 유재석 역시 핑계고가 있고 나영석의 나불나불, 정재형의 요정식탁, 장도연의 살롱드립 등 꽤 많은 채널이 이런 포맷을 차용하고 있다. 그중 내가 유심히 보는 것은 정재형의 요정식탁인데, MC로서는 타 연예인보다 경력이 짧은 정재형의 비정형적인, 그래서 자연스러운 질문들이 사람들의 내면을 열게 하는 것이 있더라. 차라리 이런 방식이었다면 좀 더 많은,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대중적이기에 너무 뻔했던 질문 외에 다른 옵션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았더라면 이런 얕고 아쉬운 인터뷰로 끝나지 않진 않았을까.


티미에겐 여러모로 신나고 재밌는 경험이 되었겠지만, 다음 내한 때는 지금보다 더 깊은, 남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할 수 있길 바란다. 그때쯤엔 대중들이 티미의 존재를 더 알 수도, 더 모를 수도 있겠지만 진짜 기억에 남는 건 그가 한국에서 무엇을 먹었는지가 아니라 그란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취향을 가지고, 어떤 작품을 어떻게 대했는지 아닐까. 잠깐 연예기사에 올랐다 사라질 그런 내용들 말고, 진짜 기억에 남는 내용들로 채워진 인터뷰를 할 수 있길.


작가의 이전글 유튜브가 도움이 안 된다면,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