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역사와 미래를 만드는 마음.
누군가에게 "좋아하는 대상을 말해보세요"라고 했을 때와 "싫어하는 대상을 말해보세요"라고 했을 때 나오는 답의 양은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나만 해도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해 보라고 했을 때는 덕질하는 아이돌, 좋아하는 음식, 계절, 시간쯤에서 답이 그치지만 싫어하는 것을 이야기해 보라면 팔만대장경도 쓸 수 있다. 쩝쩝거리는 식사 습관, 벌레, 악취, 소음, 출퇴근길 러시아워, 교통체증, 사회면에 나오는 잔혹한 사건사고, 무례함 등등.. 좋은 기억보다 싫은 기억이 더 선명히 남는다는 말처럼 싫은 대상들을 더 뾰족하고 선명하게 이야기하게 되는 걸 보면 우리 삶은 '싫음'이 '좋음'보다 더 많은 게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일 지경이다. 요즘처럼 팍팍한 사회에서는 더 그럴 것도 같고요. 흔한 유튜브 댓글만 봐도 응원하는 사람들은 1/3이나 될까 말까 하고 온갖 명분과 이유를 대며 자기만의 싫음을 표출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니. 증오의 시대까진 아니더라도 싫음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지도?
싫음이 보편화, 대중화, 일상화되는 시대에 살다 보니 좋아하는 대상은 더욱 소중해진다. 어쩌다 덕통사고라도 맞게 되면 대상에 대한 관심이나 사랑을 쉬이 잃을까 전전긍긍하게 되기도 한다. 싫어하는 마음이 디폴트라면 좋아하는 마음은 이벤트처럼 일어나는 강력한 도파민이라 부여잡지 않고서는 이 삶이 너무 지난한 거지. 하지만 그런 마음은 호시절만큼이나 스쳐가는 성질의 것이라 지나고 나면 새로운 대상을 찾아 나서며 하이에나처럼 살기를 반복해 왔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런 게 삶인가? 뜨고 지는 태양에 따라 하루를 살듯 좋아하는 것을 좇고 새로 찾는 과정을 겪으며 사는 것이 삶의 전부인가?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사는 걸까?
답은 새로운 경험에서 나왔다. 최근 개인적인 호기심과 지인들의 제안으로 새로운 장소에 몇 번 다녀왔다. 첫 번째 장소는 글쓰기 클래스, 두 번째 장소는 연희동 제로웨이스트 마켓, 세 번째 장소는 축구경기장. 첫 번째 장소부터 이야기해 보자면 글쓰기 클래스는 내 호기심에 다녀온 곳이었다. 참여하는 연령대가 내 나이보다 훨씬 높아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두 시간 남짓한 수업동안 그 어떤 레슨보다 강력하게 나를 흔든 건 '자기표현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구나'라는 생각과 참가자분들의 글에 대한 열정이었다. 강사님이 말씀해 주신 사례 중 하나가 대표적이었는데, 글쓰기 강좌에 들어오시는 분들 중에 92세의 어르신이 계신다고 했다. 그분이 쓰신 글 중 6.25 전쟁 때 본인이 느꼈던 공포를 풀의 비릿한 감각과 절묘하게 매칭한 글을 소개해주셨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도 글을 저렇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얼마가 되었건 간에 나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하겠다는 열정을 갖고, 나의 이야기가 일반적이거나 시시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고 글쓰기 자체에 매진하는 것. 그게 좋아하는 일에 보일 수 있는 내 최대한의 열정이라는 마음으로.
두 번째 장소는 연희동에서 열린 제로웨이스트 마켓이었다. 여긴 지인의 제안으로 갑작스럽게 방문하게 되었는데, 가보니 동네 주민뿐 아니라 각지에서 온 손님들이 비건 혹은 친환경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제품들을 구경하고 구매하고 있었다. 생활 반경이 비슷비슷하다 보니 대형마트 아니면 백화점에서 꾸린 제품들을 소비하는 게 익숙했는데, 마켓에 가서 각자만의 관심사를 각자만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제품들을 보며 또 다른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공통의 관심사가 아니면 어때, 대중이 호응 안 해주면 어때, 소규모라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알아준다면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어라는 자유분방함과 여유가 느껴지는 공간이라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방구석에 앉아 유튜브만 봤다면, SNS만 봤다면 절대 몰랐을 세상의 일면이었다.
세 번째 장소는 축구경기장이었고, 이 역시 지인의 제안으로 가게 된 곳이었다. 무엇하나 덕질을 시작하면 제대로 하는 친구가 새로 빠진 장르가 축구경기 관람이었고, 계속 같이 가잔 얘기를 하기에 가볍게 응한 자리였다. 경기 시작 두 시간 전 경기장에 도착했는데 이게 웬걸. 그날이 최다 관객을 기록한 날이었고, 그 기록에 응수하듯 경기장 주변엔 응원하러 온 팬들이 복작복작 시장판을 형성하고 있었다. 난 아이돌 덕질만 해봤기에 스포츠 덕질은 그날 처음 경험할 수 있었는데 포맷은 비슷해도 스포츠 덕후들은 아이돌 덕질판에서 볼 수 없는 어떤 기개와 결의(... 목숨 걸었다 이거예요)가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아직 발음조차 여물지 않은 아기들까지 수십 곡이 넘는 응원가를 모두 외워 부르는 걸 보며, 좋아하는 것은 삶을 나아가게 할 뿐 아니라 어떤 삶을 형성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모든 경험은 얼핏 삶에서 '싫어하는 것'이 더 만연해있는 듯 보인다 하더라도, 그건 별의미가 없단 걸 느끼게 했다. 마치 거대한 빙산이 수면 아래 잠긴 엄청난 규모의 얼음으로 그 형태를 유지하고 주위 자잘한 얼음 조각에는 영향을 받지 않듯, 좋아하는 것들은 두터운 레이어로 깊이를 형성하고 있는 반면 싫어하는 것들은 단층 조각으로 우연히 잠깐 맞닥뜨릴 뿐 인생에는 별 타격을 입히지 않는다. 결국 우리네 인생은 좋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지 싫어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92세 어르신이 아직도 글을 쓰는 것처럼, 마켓에 낼 제품을 손수 만드는 창작자처럼, 축구경기에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응원하는 응원단처럼 좋아하는 마음이 우리의 오늘을 움직인다. 그리고 오늘이 모여 역사가 되고 미래가 된다. 이건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실마리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좋아하는 것을 의심 없이 좋아하라고, 그것이 내 인생을 잘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알려주는 실마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