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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Dec 04. 2023

게으르게 살길 원한다고 솔직히 말하지 못했다.

가슴 한 구석을 뻑! 맞은 것처럼 아프긴 했지만.

며칠 전 전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직장 동료를 만났다. 직장 동료지만 나보다 다섯살이 어린 그녀는 항상 나에게 놀라움을 자아내는 존재였다. 개인마다 성향이나 성격, 가치관 등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녀는 그 나잇대에 닿아 있기 어려운 단단함과 차분함을 갖고 있었고 그런 내면은 방금 맑은 물로 씻어낸 구슬처럼 반짝이는 눈과 조용하고 조심스럽지만 깔끔히 맺어진 말투로 표현되어 나를 자주 놀라게 했다. 고작(!) 20대 중반의 나이에 이런 모습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처음엔 생경했고, 다음엔 놀라웠고 마지막으론 질투까지 일으키게 했다. 나는 그 모든 시간을 분투하여 얻어낸 인생의 진리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저렇게 빨리 와닿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질투는 곧 그녀는 그것을 꽁으로 얻어냈을 거라는 유치하고 단순한 발상에 의한 것임을 깨달으며 다행히 사그러들었다. 이런 속도 모르고 나에게 '멋있다'는 말을 건네는 그녀에게 정말 멋있진 않아도, 적어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지가 이루어낸 작은 반성이겠지.


내가 관둔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는 그녀는 다른 전직장 동료들이 으레 물어보듯 회사로 돌아올 생각이 없느냐 물었다. 이전에도 몇번 '00님이 관두시니 저를 귀여워해줄 사람이 없다'고 귀엽게 투정을 부린 적이 있었는데 회사를 관둔지 7개월이 넘어가는 시점이고 곧 신년을 앞두고 있으니 확인차 한번 더 묻고 싶었던 게 뻔했다. 그 질문을 기점으로 나는 입이 막 트인 어린 애 마냥 재입사에 관한 생각을 산발적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오늘 만남 이후에 그에 대한 결정을 좀 내릴 수 있을까 기대하고 왔다, 생각보다 내가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더라, 뭔가 해야된다고는 생각하는데 마냥 예열 중인 상태인 것 같다, 루틴 지키기에 집착하긴 하나 무언가 비어있는 느낌이다, 알고봤더니 내가 게으른 사람일까봐 두렵다 등등. 줄줄이 이야기를 쏟아내느라 원래 이야기하려 의도했던 것보다 더 많이 쏟아낸 것에 머쓱함과 부끄러움을 느낄 무렵,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혹시 게으르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 두신 것 아닐까요?"


그 질문을 듣자 갑자기 심장이 펄떡펄떡 뛰기 시작하며 몸안의 혈액이 빠르게 도는 느낌이 들었다. 어찌나 빨리 도는지 선풍기 팬이 돌아가듯 윙윙거리는 소리가 귀에 선연히 들리는 듯했다. "정말 그런 걸까요? 정곡을 찔린 것처럼 가슴이 빨리 뛰는 거 보니 맞나봐요"라고 웃으며 답했지만 심장이 빨리 뛰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긴 어려웠다. 그녀는 요지는 '회사를 다닐 때 일을 너무나 열심히 했으니, 퇴사를 하면 그 정도 수준으로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하는 기대감에 퇴사를 한 것이 아니냐 한 것이겠지만 나에겐 '지금 게으르게 살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난 정말 게으르게 살고 싶은 걸까? 집에 와서도 고민했고 주말 내내 책과 콘텐츠에 파묻혀 있을 때도 책을 읽는 나와 유튜브를 보는 나와 멀리 떨어진 구석의 내가 '대체 왜 나는 그 때 가슴이 뛰었나'를 골몰하며 해답을 분주히 찾아다녔다. 하지만 아직도 빈칸으로 남아있기에 이렇게 글을 써서라도 답을 발견하고자 한 것이다.


추측을 해보자면 첫째, 이미 게을러서 찔린 거다. 둘째, 게으르고 싶었기에 찔린거다. 셋째, 게으르고 싶진 않은데 그런 삶의 가능성도 있겠구나 싶어 설렌(!) 거다. 일단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게으름의 정의는 '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성미나 버릇이 있다'는 것이란다. 그렇다면 하나씩 살펴보자. 나는 이미 게으른가? 하루 일과를 보면 게으르다는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꼬박꼬박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루틴대로 해야하는 일들을 처리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미래 계획에 따른 과정도 충실히 행하고 있다. 하지만 오전 8시에 일어난다해도 걱정과 불안으로 하루를 허비한다면 게으르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솔직히 해야하는 일들을 한다고 하지만 '일'에 관한 것에 대단한, 아니 필요한만큼의 노력이라도 하고 있나하고 생각해보면 자신 있게 "맞아!"라고 하긴 힘들다. 다음으로, 나는 게으르고 싶은가? 인간은 천성적으로 게으르고 이기적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게 심리학을 배우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한낱 인간이기에 나도 게으르고 싶은 부분이 있지만, 그게 나에게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며 참는거지. 이것도 100% 아니라고 말하기엔 힘들다. 마지막으로 그런 삶의 가능성이 있어서 설레는가? 유튜브를 보거나 서점을 가더라도, 하다못해 한 다리 건너 한명씩 '갓생'을 살고 성공에 미친 사람이 있는 마당에 '게으르게 살아도 된다'는 것은 정말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가? 뭐.. 로또가 되어 그냥 하고 싶은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삶을 꿈꾸는 게 게으른 삶이라면 그래, 그렇다. 에라 모르겠다! 나 게으르게 살고싶다!


어쩌면 내가 게으른 삶에 대한 엄청난 죄책감과 무조건적으로 "안돼!!"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게으른 게 죄는 아니다. 대체로 세상의 큰 변화들은 게으른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려봐라. 일을 하더라도 요즘은 성실하고 결과물을 최다로 뽑아내는 사람이 유능하다고 평가 받는 시대가 아니고 어려운 일도 쉽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을 찾는 게으른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다. 그렇다면 게으르게 사는 게 뭐 어때! 쉬익쉬익. (아무도 뭐라고 안했다)


빌게이츠 선생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잖아요!

하지만 아직도 마음 한구석엔 파들파들거리며 '그래도 돼..?'라고 묻는 내가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직장도 없으면서 방구석에 앉아 "난 게으른 사람이야! 난 게으르게 살아!"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며 "니가 그럴 때가 아니야 이 자식아!!"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내가 듣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이 왈칵 두뇌로 쏟아져오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이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언젠가 세상이 변해 게으른 사람이 인재로 각광 받는 시대가 온다면 이 글을 보며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었구나'할 수 있겠지만 아직은 스티로폼을 삼킨 마냥 속이 부대낀다. 이것 또한 용기를 가져야할 일이겠지. 언젠가 그녀가 다시 내게 묻는다면 "네, 제가 게으르기도 하고 게으르고 싶어하는 사람이더라고요"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게으름이 곧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까 게으르고 현명한 사람, 게으르고 똑똑한 사람, 게으르고 영민한 사람은 되어야지. 그럼 게으름 또한 조금 받아들여질만한 것으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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