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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Jan 02. 2024

아저씨 입맛은 어쩔 수가 없어

칼칼~하고 얼큰~해야 뭐 좀 먹었다 하지요.

나를 포함해 3명이 모이는 지인 모임이 하나 있다. 보통 모임에서는 만나는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그날 뭐 할지, 뭘 먹을지가 결정되는데 이 모임은 아예 패턴이 있다. '아재 음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아재 음식은 보통 아저씨들이 소주 반주를 곁들여 먹기 좋은 음식들을 통칭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예가 순댓국, 곱창전골, 닭볶음탕 이런 류다. 이들의 공통점은 '크'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칼칼하고 뜨끈한 음식들이라는 점.


보통 약속을 잡게 되면 점심 한 끼, 저녁 한 끼 총 두 끼니를 함께 하게 되는데 항상 처음에 먹는 점심은 파스타, 스테이크, 브런치류로 말도 조근조근 해야 할 것 같은 예쁘장한 레스토랑에 가서 먹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들 간단한 근황이니, 최근에 있었던 재미난 일들이니 조잘조잘 이야기하지만 함께한 시간이 무르익을수록 점점 대화의 수위가 세지고 격렬한 토론의 난장이 되어버리니 세련된 커트러리와 가지런하게 정돈된 행커치프는 흐트러지고 나이프와 접시의 챙챙- 맞닿는 음정보다는 국자와 숟가락이 마주치는 소음이 자연스러운 시간대가 찾아온다. 그럼 다 같이 음주 전이라도 한껏 불콰한 얼굴로 전골이니 탕을 찾으러 가게 되는 것이다.


건강하고
예쁜 음식들로 시작하지만
끝은 항상 찌개 거나
국밥을 먹어줘야 완성.

경험상 지인들의 호응이 가장 높았던 것은 닭볶음탕이었다. 그날도 미쉐린 가이드에 몇 번이고 올랐다는 유명 파스타 매장에서 점심 식사를 했는데 나를 포함한 지인들의 반응은 "음~ 맛있네" 정도에 그쳤다. 인생 네 컷을 찍고 카페 가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학생 때 친구랑 자주 드나드는 신사동의 닭볶음탕 맛집이 생각나 거길 제안했더니 다들 반응이 좋았다. 가서 앉자마자 닭볶음탕 3인에 우동 사리 추가, 소주 하나 추가요. 공깃밥은 인당 하나씩 주문해 닭볶음탕에 곁들여진 포슬포슬한 감자를 으깨 양념과 함께 비벼먹었더니, 다 같이 "아!!! 이거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서로 숨기지 못하고 표출한 진심에 빵 터져서 한참을 웃고, 술이 거나해 소리 지르며 대화하는 군중 사이로 목청 높여 "맛있죠!!!"를 연발했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우리에겐 웃음 버튼이다.


취향에 옳고 그름이 없고 수준이 없듯이 맛에도 취향만 존재할 뿐 어떤 것이 더 낫다 하는 기준은 없다. 파스타도 맛있고, 가니쉬와 함께 버터를 듬뿍 묻혀 구워낸 미디엄 웰던의 스테이크도 좋다. 돼지 잡내 없이 뭉근하게 끓여낸 순대국밥과 선지로 촉촉하게 쪄낸 피순대도 맛있고, 돌판에 지글지글 구워 부추와 한쌈 먹을 수 있는 곱창구이도 좋다. 세상에 먹을 것이 이렇게나 많은데 점심-저녁을 정반대로 즐길 수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즐거운지. 그저 맛있는 것 먹고, 입맛이 비슷한 사람들과 와르르 웃는 그 행복이 내겐 휘발되지 않을 최고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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