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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Jan 05. 2024

신 가이아의 이름으로! 너희 생명을 유지하길 부탁해..

우리 오래가자 제발!

몇 주전 집으로 식물 선물이 들어왔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포인세티아 화분 2개가 예쁜 바구니에 담겨 세트로 들어온 것인데, 식물을 선물 받은 건 꽤나 오랜만이다. 크리스마스 대표 식물답게 화려한 적색을 뽐내던 포인세티아는 들어온 지 한 2주 만에 그 빛을 잃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엄마가 관리를 담당하고 있었기에 신경을 쓰지 않다가 엄마가 언니네 집으로 떠난 후 "어라, 왜 이러지?"하고 화분을 들어봤을 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구니 속 홍수처럼 넘쳐흐르는 이 물이라니!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선물 받은 바구니 채로 모양을 유지하고 싶었던 엄마가 화분을 감싸고 있던 비닐에 물을 듬뿍 넣고 화분을 그대로 넣어버렸고, 겨울철 건조함이 극심하다 해도 이 정도의 물까지는 필요 없었던 불쌍한 포인세티아들은 그 홍수 속에 고스란히 잠겨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울상이 되어버린 아이들을 비닐에서 건져 물통이 있는 받침대에 올려두었더니 방금 물을 준 게 아닌데도 받침대에 물이 흥건히 고일 정도였다. 엄마가 애들 둘을 고스란히 식물별로 보낼 뻔했군!! 탄식하며 떨어진 잎들을 정리하고 시든 잎은 똑똑 떼어 잎갈이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물이 빠지길 기다리며 포인세티아를 키우는 방법을 검색해 보니, 이 친구들은 겨울철에 18~20도의 기온을 유지해주어야 하고, 햇볕을 잘 받고 통풍을 잘하면 된단다. 어느 식물이나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요하니 키우기 까다롭다 할 수는 없는데 요즘 날씨가 말썽이다. 새해가 무색하게 미세먼지와 안개의 동거로 선명한 햇빛을 볼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도 없는 요즘. 난방이 새어나갈까 쳐둔 암막커튼을 거둔다 한들 축축이 젖은 흙을 말리기엔 통풍도, 햇살도 없는 최근의 며칠은 흙에 곰팡이가 생기기에 충분한 여건을 제공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건 손풍기와 식물등. 곰팡이가 핀 흙을 살짝 떠내 버리고, 젖은 흙이 그대로 굳지 않도록 살살 흙 표면을 저어주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손풍기를 켜두고 은근히 바람을 맞을만한 위치에 화분을 두고 식물등을 켜주었다. 덕분에 가뜩이나 시린 발이 더 차가워져 오는 기분. 아, 발 시리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유튜브에서 '식물 음악'이라고만 쳐도 '식물이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이 절로 뜬다. 하루에 2시간만 들려주면 성장 촉진에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해서 예전에 다른 친구들을 키울 때 모른 척 몇 번 틀어놓은 적이 있었는데,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새싹을 더 잘 틔우는 느낌이 들긴 하더라. 아직 새싹을 틔우기엔 너무 이른 1월이지만 지금은 그저 가진 생명을 잘 유지만 해달라는 심정으로 틀어본다. 얘들아, 이렇게 노력하고 있으니 제발 죽지 말아 줘.


앙상해져 버린 아이들 흑흑.

초보자치고는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꽤나 능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예전 내 별명이 '가이아'라고 하면 믿으실까. 가이아는 대지의 여신으로 모든 생명을 관장하는 신인데 식물을 한창 키울 때 나의 별명이기도 했다. 생명을 움틔우는 신적 능력은 없어도 풍요롭게 번성하도록 만드는 힘 정도는 갖고 있지 않을까 자부한다. 다만 그 능력이 관심의 정도에 따라 한계가 있어서 문제지... TMI를 이야기하자면 나는 사주에 물이 많아서 주변에 나무를 많이 두면 좋다고 얘기를 들은 적이 많았는데, 그래서 그런가(?) 반려식물로 유행했던 스투키, 아몬드 페페, 다육이, 행운목 등 종류도 다양하게 많은 화분들을 키울 기회가 생겼었다. 하루에 한 번씩 나가서 애들의 상태를 살피고, 물도 꼼꼼히 주고 시든 잎은 그때마다 떼어주고 영양제도 특식으로 투여하고 햇볕이 잘 안 드는 겨울엔 방으로 들여 식물등을 쐬어주고 식물이 좋아하는 음악도 주기적으로 틀어주니 애들이 그 정성을 알았는지 쑥쑥 자라주어 큰 화분으로 두 번씩 분갈이를 해야 할 만큼 엄청나게 자랐더랬다. 하지만 2년이 지나고 나니 내 열정도 식고,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는지 애들도 추운 겨울을 견디지 못해 떠나보내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식은 마음이어도 떠나보낸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에 새 생명을 함부로 들이지 않겠다 다짐했던지 오래, 지금의 포인세티아 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사진을 뒤져보니 한때 상추도 키웠었군.

사람이 사람을 키워내는 일도, 동물을 키워내는 일도 너무나 큰 책임감을 수반하기에 차마 감당할 수 없다 생각하는 나에게 식물들은 접근하기가 용이한 존재인 건 틀림없다. 하지만 말을 할 수 없고 표현을 할 수 없다 해도 똑같이 고귀하고 소중한 생명인 것도 확실하기에, 이 생명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은 나뿐임을 잘 알고 있기에! 이번에도 가이아답게 이 아이들을 내 품에서 건강하게 키워보리라 다짐했다. 제발 내일은 햇볕도 선명하고 공기도 맑아서 아이들에게 인공적인 바람과 조명을 주지 않아도 되길. 내일을 기대할 무언가가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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