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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Jan 11. 2024

네? 갑자기 유제품 알레르기요?

대체 뭘 먹으란 말이야 엉엉.

어렸을 때부터 신경성 두드러기를 앓았던 나는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았다. 신경성 두드러기라는 병명은 신경이 예민해지거나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갑자기 놀랐을 때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증상을 보고 내가 붙인 이름이다. 많은 검사를 해봐도 의학적으로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명칭이 없었기에 편의상 이렇게 부른다. 두드러기가 한번 나면 아주 센 산모기에 물린 것처럼 해당 부위가 퉁퉁 붓고 열이 나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는 출현 횟수가 좀 더 잦았지만 지금은 체하거나 체온 조절이 잘 안 됐을 때 나곤 해서 일 년에 한두 번 약을 먹어야 할 정도다.


두드러기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을 때, 답답했던 엄마는 나를 병원에 데려가 알레르기 반응 검사를 했다고 한다. 리스트에 빼곡히 적힌 알레르기 양성 반응 요인도 놀라웠지만(실제 거의 모든 항목에 해당되었다고 한다) 엄마가 무엇보다 충격을 받았던 건 '쌀밥'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는 검사 결과였다. 아니, 아직 6살밖에 안된 애가 쌀밥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면 대체 어떻게 클 수 있냐며 절망했지만 그 이후로 무탈하게 자라난 나는 171cm의 신체 건강한 성인이 되어 잘만 살고 있다. 명절이나 가끔 뵙는 큰 엄마도 '그렇게 마르고 앙상해서 걱정했던 그 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잘 큰 거냐'하고 내 손을 잡고 아직도 감탄하실 정도니, 뭐 말 다했지.


성인이 되고 나서 신경성 두드러기는 조금 줄어들었어도 한랭 두드러기나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하는 일은 종종 있었다. 그래도 먹을 것 때문에 트러블이 나본적이 없는 게 스스로 참 다행스러웠지. 식감 때문에 먹기 저어했던 음식들은 있더라도 가리는 음식이 없어 추어탕, 과메기, 청양고추, 마라탕, 야생버섯, 굴 등 못 먹는 음식 없이 그 정취를 고스란히 즐기며 먹는 것에 즐거움과 자부심을 느껴왔더랬다. 그랬는데....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던 건 지난주였다. 주기적인 운동으로 말끔했던 피부가 갑자기 뒤집어지기 시작하더니 따갑고 근질근질거리기 시작했다. 가끔 화장품을 잘못 쓰면 접촉성 피부염이 올라왔는데, 그 증상과 비슷해서 최근 마스크팩을 했던 게 화근인가 싶었다. 하지만 복병은 따로 있었으니. 최근 몇 개월간 아침 대용으로 먹은 무가당 그릭 요거트를 습관처럼 먹던 어느 날 아침, 싸하게 올라오는 직감. 요거트가 문제다. 황급히 거울을 보니 여드름이 선명하게 올라와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항히스타민제를 급하게 먹고 추이를 지켜보다 어제 오랜만에 콘치즈를 해 먹었는데 어딘가 다시 묘하게 싸한 느낌. 역시 거울을 확인하니 지난주에 올라왔던 여드름이 다시 벌겋게 올라온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젠장, 완전 빼박이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체질이 바뀐다는 걸 말로만 들었지 한 번도 체감을 해본 적은 없었는데, 이런 식으로 알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체질이 바뀐 것도 충격이지만 더 슬픈 건 하필 그 대상이 유제품이라는 사실. 유제품이 여드름을 나게 하는 원인이라 피부 건강을 위해 유제품을 몇 개월간 끊는 사람도 자주 봤지만 그건 온전히 남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제일이 됐다지요...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의 대부분은 유제품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피자(치즈 때문에 안됨), 초콜릿(우유 함유), 로제 떡볶이(크림소스 때문에 안됨), 핫초코(우유+우유), 아이스크림(우유 그 자체..) 등등.. 이제 뭘 먹고살아야 하나요. 내 기쁨은 무엇인가요.


어쩌면 요 며칠간 체력 증진을 위해서라기 보단 욕심으로 끌고 간 무리한 운동 때문에 잠시 컨디션이 저하되어 그럴지도 모른다. 어쩌면 새해 때문에 생각이 복잡해져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면역력이 잠시 떨어졌을 수도 있겠지. 앞으로 평생 유제품을 먹지 못하는 일은 아닐 거라 애써 마음을 다잡아 본다. 잠깐 떨어져 지내는 것뿐이지 영원한 안녕은 아니라는 말이야.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독소 뺀다고 생각하고 잠깐 헤어져볼까... 핫초코야, 피자야 부디 영영 떠나가진 마 엉엉.


죽어도 못 보내
내가 어떻게 널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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