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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Jan 23. 2024

도.. 아니 사주를 믿으시나요

어차피 따르지도 않을 거면 왜 보는 거냐고요.

신년 전후로 사람들에게 유난히 관심받는 분야가 있다. 바로 사주다. 종교를 갖고 계신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본인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하고 대비하고 싶어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인간의 마음인지라.. 아마 다들 살면서 한 번쯤은! 어플로나마! 보시지 않았을까 싶다. 저요? 저는 사주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사주를 언제부터 보게 되었냐.. 하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대학생이 되고 난 이후였겠지? 시작은 심플했다. 누가 사주를 보고 왔는데 거기가 그렇게 용하더라, 하는 말을 듣고 사주 카페를 방문했었다. 특정 이슈에 대해 답을 구하고자 간 건 아니었다. 단지 얼마나 용하길래 다들 그렇게 난리를 치나 싶어 궁금한 마음에 갔었고, 앉을 때부터 문 밖을 나설 때까지 입이 떡 벌어진 채로 나왔던 게 기억이 난다. '한번 시도해 보니 별게 아니네'하고 깨우치면 굉장히 무모해지는 게 나란 사람인지라, 그 이후엔 일 년에 최소 한두 번 이상은 사주를 보러 다녔다. 처음에는 사주 카페를 방문했지만 나중엔 회사사람들과 합심해 회사 근처 카페로 사주 보시는 분을 불러 돌아가면서 사주를 보기도 했고, 압구정에 정재계, 연예인들도 줄 서서 본다는 신점을 보겠다고 차 한 대로 다 같이 몰려간 적도 있었다. 일산에 용한 선생님이 있다길래 집에서 지하철로 편도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꾸역꾸역 간 적도 있었고요. 그때 열정 참 대단했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사주를 보신 분들이라면 공감하시겠지만 태어난 년도, 일자, 시간이 정해져 있는 한 나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비슷하게 시작한다. 성격은 이렇고 타고난 기운은 이렇고. 이 때는 실제와 엇비슷한 내용을 이야기하시는데, 여기에서 엥? 스러운 이야기가 나온다면 갑자기 열의가 파스스 식으면서 동태눈이 되기 시작하지요. 중요한 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얼마나 잘,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는 가다. 보통 내가 답을 구하고자 했던 주제는 회사와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에 '제가 지금 다니는 회사를 관둬도 될까요', '제가 지금 이 직무랑 맞는 걸까요'라는, 지금 생각하면 '그걸 왜 그분한테 물어보고 있냐 이 양반아..'싶은 질문들을 꺼내놓고 선생님의 답을 기다렸다. 이때도 선생님들의 답은 대부분 비슷했다. '거기 붙어 있어라'. 진짜 웃긴 건, 그렇게 나온 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럼 듣지도 않았다. 대체 이게 무슨 돈 낭비, 시간 낭비냐.


생각해 보면 내가 갖고 있는 답에 대한 확신은 없고, 누군가에게 '그래, 그거 괜찮겠다'하는 답은 얻고 싶은데 주위 사람들 의견은 다소 신빙성(?)이 떨어지니 그래도 내 미래를 알법한 사람에게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나처럼 막연한 불안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주 고객인 그분들에게 무어라도 나랑 비슷한 의견을 들으면 '그래, 역시 내 직감이 맞았구나'하는 확신이라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걸까. 살아보지도 않고 미래를 커닝해 그에 따라 행동하려 한 것도 다소 치사한 일이지만 그걸 다른 사람 손에 맡기려고 한 것 또한 어리고 어린 발상이었구나 싶다.


근래 몇 년간은 사주를 본 적이 없다. 아니, 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건 좀 과장이고... 이전처럼 애써 '용한 곳'을 찾아다니면서 사주를 보진 않고 무료 운세 어플에 사주가 뜨면 심심풀이로 본다. 그것만 보는 것도 아니다. 별자리 운세, 주간 운세, 타로도 볼 수 있으면 꼬박꼬박 본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는 건 좋은 거니까요. 그래도 이전처럼 거기에 답을 구하거나 휘둘릴(애초에 휘둘린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만) 정도는 아니다. 어차피 뭐라고 이야기해 봤자 나는 나 좋은 대로 행동할 사람이란 걸 알고, 그럴 거라면 남 얘기에 귀 기울일 시간에 자기 주관대로 행동하는 게 더 주체적이고 책임감 있는 행동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솔직히 대운에 관한 이야기는 몇 번에 걸쳐 들었기 때문에 그 흐름을 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해야 할 건, 할 수 있는 건 하루하루 잘 살면서 대운에 도움이 될만한 인연들과 기회들을 만드는 것뿐. 이런 마음가짐도 결국 사주에 대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생길 수 있었던 거겠지. 그 어떤 경험도 의미가 없진 않구나, 다시 한번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런 얘기 들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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