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둥이 육아를 시작하다.
회사 게이트에 아이디카드를 찍고 엑스레이 검사대에 내 가방과 짐을 모두 넣었다. 조금 이른 퇴근 시간의 출입구 게이트는 한적했다. 게이트를 등지고 회전 현관문을 돌아 나왔다. 회전문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 주차장 출입구 옆으로 건물 입구 관리실과 보안 직원이 보였다. 보안 직원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 입구를 지나쳐 건물을 온전히 빠져나왔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길 건너편에 깜빡이를 켜고 있는 흰색 차가 보였다. 먼저 차를 빼고 나와 회사 밖에서 만나기로 한 남편이었다. 회사를 옆으로 등지고 차로 향해 걸어가면서 느껴지는 기분은 후련하다기보다 아련함에 가까웠다. 텅 비워놓고 나온 내 하얀색 책상과 파티션이 벌써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첫 아이 출산휴가를 내고 회사를 나오던 날의 요상한 마음이 단 하루 만에 사라졌다는 것은.
곧 태어날 아이의 가제 손수건과 내복을 세탁해서 건조대에 널었다. 그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옷장 서랍도 한번 비웠다가 다시 넣고 결혼 전 내가 혼자 살 때 사용하던 서랍장을 아기용품으로 하나씩 채워나갔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졸업식도 하기 전에 회사로 왔다. 어느새 대학교를 다닌 4년의 시간보다 회사를 다닌 시간이 더 길었다. 그곳을 나온 아쉬움은 단 하루 만에 빠져나가고 복직할 때까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출산과 함께 6개월, 짧았지만 회사를 쉬어본 경험이 있어서일까. 두 번째로 육아휴직을 사용하며 회사를 나오던 날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마지막 점심 식사를 하고, 오래 같이 일해온 사람들을 따로 불러서 저녁을 먹고 온 것 같기도 하다. 복직은 9개월 후였다. 그 시간이 길게 보이지만 지나 보면 금방 지나가버린 다는 것을 체득하여 알고 있었다.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그토록 바라던 십여 년 만의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는 기대도 함께였다. 그런 설레임 또한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ㅁㅁ책임 알지? 거기 늦둥이로 둘째 낳았는데 벌써 돌잔치라더라."
"아 그래? 언제 낳았지? 난 몰랐네. 딸이야 아들이야?"
"딸인데 예쁘더라. 부럽더라."
남편은 아이를 낳기 전부터, 결혼하기 전부터 아이를 참 좋아했다. 그러면 안된다고 말해도 자꾸만 엘리베이터에서 동네 꼬마 아이를 만나면 넌 몇 살이니 하며 이런저런 말을 붙이기를 좋아했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대로 작고 귀엽다며 초등학생은 조그마한데 제법 자란 듯 어른 인체 대답하는 것이 재밌다 말했다. 나는 내 아이를 낳기 전엔 아이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아이는 당연히 둘 이상 낳을 거라 생각했다. 게으른 직장인 엄마로 살아오는 시간 동안 아이 하나 보는 것과 직장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다시 어린아이를 엄마나 어머님에게 맡길 엄두는 나지 않았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데리러 가면서 이렇게 시간만 보내도 되는 걸까.'
아이와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등교를 하고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내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휴직 한 두 달 만에 오전에 생기는 빈 시간이 당연해졌고 왠지 모를 허전함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남편의 갑작스러운 둘째 제안이 불쑥 들어왔다. 회사를 다닐 때면 지금 와서 애를 어떻게 또 낳아 키우냐고 딱 잘랐을 텐데. 빈 시간이 있었기에 혹시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제법 자란 아이와 셋이서 바깥 외출을 하는 것은 편하고 즐거웠다. 특별한 계획이 없는 주말이면 셋이서 도서관에 가서 각자 책을 읽다 돌아왔다. 집 근처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약간의 대화를 나누고 장을 봐서 돌아오는 일도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우리 셋의 일상이었다. 이제는 유모차 없이 셋이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 교보를 들리고 청계천 산책을 하고 귀가해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우리도 시간이 더 지나면 저렇게 세 명이서 다니겠지?"
때때로 길이나 쇼핑몰에서 우리보다 나이가 더 든 부부의 뒷모습 사이로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딸 세 명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럴 때면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거 없이 서로를 쳐다보곤 했다. 실제로 그 가족이 딸 하나인지, 다른 형제가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우리 눈에는 그 뒷모습이 괜스레 쓸쓸해 보였다. 아이가 하나라고 외로울 이유는 전혀 없는데, 우리의 마음이 투과되면서 그렇게 느껴졌다.
찬찬히 준비를 시작했다. 손가락을 여러 번 접었다 폈다 하였다. 시간 상, 지금의 휴직에 출산휴가를 연이어 사용할 수는 없었다. 임신이 언제 되든 복직을 하고 다시 출산휴가를 가야 했다. 복직하고 연이어 출산휴가를 가는 임산부라니.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일반 사기업에 일이 편한 회사도 아니었다. 프로젝트가 돌아가면 늘 바빴고 일은 언제나 힘들었다. 나 하나 없어도 물론 조직이 잘 굴러가기에 회사 걱정을 하진 않았지만, 내가 속한 조직에는 분명 민폐였다. 사람도 줄어서 일이 더 힘들어졌다던데. 임신을 하고 돌아간다니. 그 상황을 상상만 해도 낯이 부끄러워졌다. 게다가 난 이번에는 차장 진급을 앞두고 있지 않던가. 때로는 아이를 더 바라보고 회사 일에 성의를 덜 보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대체로 난 아이를 남편에게,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야근도 많이 했고, 회식도 꼬박 참석하면서 그렇게 살아왔는데. 휴직을 하고 보니 내가 우선시했던 그 일들이 정말 중요했을까- 내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어쩌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알듯 말듯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인생을 살다보면 그 때 그 순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늦은 나이에 임신 테스터기의 두 줄을 확인했다. 임신은 쉬운 일이 아니고 계획한다 하여 의지대로 되는 일도 아니다. 찾아와준 아이가 그저 고맙고 고마울 뿐이었다. 나는 휴직 맘이면서 늦둥이 둘째를 임신한 뻔뻔한 직장인이 되었다. 최고로 뻔뻔했던 그 선택은 나에게 다시 한번 더 육아의 기쁨을 주었으며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때 그 순간에 시간이라는 선물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