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보물지도를 그리다

꿈의 시각화, 멘토를 만난 일.

by 윤담

아이는 바운서를 졸업한 지 제법 되어 거실 매트 위에 누워서 놀거나 엎드려 놀았다. 두 손을 차례로 집고 일어서 앉아 놀기도 했다. 다시 육아를 할 시간들에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그래도 집에서 두 아이와 함께 보낸 그 순간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어린이집과 할머니가 다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닌 첫째 아이. 엄마 손을 필요로 하는1학년과 2학년에 학교다니는 모습을 좀 더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동안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던 시간들을 채워나갔다.


두 번째 휴직. 이제는 둘째 아기도 함께라 허전할 만큼의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어린 둘째와 9살의 첫째와 함께 온전히 하루를 보내는 방법을 연습하며 터득해 나갔다. 그때는 짬짬이 시간이 날 때마다 휴대폰으로 유튜브 채널과 네이버 블로그를 구독하고 다른 사람들이 올리는 유용한 정보들을 보며 지냈다. 가십거리 뉴스나 쇼핑몰만 들락날락하는 것보다 훨씬 알차게 내 시간을 채워나가고 있다는 뿌듯함도 함께였다.


겨울이었다. 그날도 평소 내가 구독하는 부동산 투자자들의 블로그 새 글을 스크롤하면서 훑어 보고 있었다. 문득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분의 얼굴이 보였다. 부동산 투자글과 어울리지 않는 하얀 얼굴과 예쁘장한 외모에 한번 더 시선이 갔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평범한 교사에서 육아휴직을 하고 출간 계약을 한 예비작가라는 소개가 있었다.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다는 안내와 블로그 URL이 그 아래로 있었다. 링크를 타고 가보니, 휴직을 하면서부터 지금 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평범한 때문이었는지 안정적인 직업의 대표 명사인 교사라는 단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예쁜 얼굴 때문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길래 평범한데 책을 계약하고 출간을 한다는 것인지? 아리송했다. 내 주변에는 책을 쓰는 사람이 없었다. 내 곁에는 나와 같은 직장인, 비슷한 생활을 하는 직장인 맞벌이 부부들로 가득했다. 대학교 친구도, 회사에서 만나 친해진 선후배들도. 모두 직장인이었다.


그 날 그 독서모임에 신청서를 보내고 처음으로 내 블로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전, 첫 아이의 육아기록을 남기려고 올려둔 첫째 아이의 사진과 소소한 육아이야기, 일상기록이 이웃공개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블로그도 유튜브 채널도 좋은 내용으로 잘 골라서 구독을 하면서 나는 내 시간을 잘 활용한다 자부하고 있었는데 결국 컨텐츠를 소비하고 있는 사람에 불과했다. 어떤 사람들이 올지는 몰랐지만 이대로 그 독서모임에 가자니 아무것도 없는 내가 너무 초라할 것 같았다. 그 격차를 깨닫고서 내 이야기를 전체 공개로 올려보았다. 첫 글이 후라이팬 구입 기록이었나보다. 그 글을 읽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그 뜬금없는 후라이팬 포스팅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내가 두번 째 휴직의 겨울에 우연히 마주친 그 포스팅은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는 부동산 투자자이자 시작컨설턴트 렘군과 지금은 1인기업가의 삶을 시작한 그의 멘티 정경미작가의 이야기였다.





모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돌아와 책을 한 두권씩 집어 들기 시작했다. 휴직중이었고 내 마음도 시간도 여유로웠다. 게다가 내가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잘 적응할 자신이 없었다. 이제는 회사로 돌아가는 것 만이 내 목표가 되어선 안되었다. 긴 시간 회사를 다니고 월급만 받아본 나에게 참 생소한 이야기가 담긴 책에도 마음을 열고 관심을 기울였다. 그 때 여러 권의 책들 중에서 유독 내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다. 일본 작가 모치즈키 도시타카의 [보물지도]였다. 저자는 책에서 원하는 바를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이미지, 사진으로 출력하여 글자를 쓴 다음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으라 했다. 그 보물지도를 자주 쳐다보면서 생각하면 결국 써놓은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조금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법한 자기계발서였다. 보물지도를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부터 유의사항이 꼼꼼히 적혀 있는데 어려운 내용은 아니라 금방 한 권을 다 읽었다. 그리고 정경미작가 블로그에서 본인이 만들었다는 그녀의 보물지도의 사진을 유심히 보았다. 보물지도에, '2019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라고 써서 붙여놓았으며, 출간계약을 하면서 현실로 이루어졌다는 경험담이 같이 있었다. 내 것을 만들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 내가 뭘 좋아하지?

- 내가 뭘 하고 싶어하지?

- 그래서 어떻게 살고 싶은거야?


참 뻔한 질문인데, 막상 내가 나에게 대답을 하려니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내 보물지도를 만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만 하는 시간과 생각을 손으로 끄적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끄적이고 글씨로 생각을 적어가면서 조금씩 잊혀졌던 내가 보였다. 지금까지는 이런 시간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통장에 점점 쌓여가는 잔고. 그것만이 공식적인 목표였던 삶을 살아왔고 해야 할 일들을 하기에도 바빠 무언가에 쫓기듯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회사에서는 매 해마다 연초에 1년의 계획과 목표를 수립한다. 그리고 연말이면 그 목표에 대한 결과를 세세히 기록하면서 한 해의 성과를 판단한다. 그 성과지표를 기반으로 인사 평가를 받는다. 눈에 보이지 않아 수치화 할 수 없는 것들도 성과와 평가에 반영이 된다. 이를테면 업무에 들인 성의나 정성과 같은 태도, 최소한의 기본 룰을 지키면서 일년을 지냈는지와 같은 것들 말이다. 인생을 회사 업무처럼 목표지향적으로 살 필요는 없었다. 원래도 계획적인 성향이 아닌데다가 그런 삶은 피곤해보여서 싫었다. 그래도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 그 정도는 적어보고 싶었다. 찾고 싶었다. 그 마음으로 보물 지도를 만들었다.



플랜테리어. 좋아하는 초록 식물들과 함께 하는 일상.예쁜 집.

아름답고 건강한 몸과 얼굴. 밝은 웃음.

나의 작은 작업 공간(미니 서재)이 있는 집. 그리고 글쓰는 삶.

타운하우스-단독주택-땅콩주택-테라스가있는집

어떤 형태이건 획일화된 아파트에서 벗어나기.

나이들어 남편과 함께 운동하고 대화 나누며 활기찬 하루 하루 살아가기.

신혼여행지 하와이여행._스노쿨링 / 싱가폴 여행.


1년을 지내보며 타운하우스에 대한 꿈은 지우기도 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생각보다 더 소박했다. 내가 얽매이던 업무의 평가나, 아이의 시험점수, 영어실력이 그 안에 보이지 않았다. 마음만 먹고 약간의 노력을 보태면 언제든 이룰 수 있는 것들이기도 했다. 그 보물지도를 들여다면 지금 할 수 있는건 미루지 말고 이루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보물지도 만들기가 꽤 전에 유행처럼 왔다가 지나가긴 했지만, 찬찬히 내 마음을 알아보고 그것을 다시 볼 수 있게 이미지로 표현하고 글로 읽는 것은 내 삶에 영향을 주었음은 분명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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