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외벌이로 살아보는 연습을 시작하다.

두 번째 육아휴직

by 윤담

둘째 아이 출산. 이어진 육아휴직.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나에게 작은 목표가 생겼다. 첫 번째 휴직 때 무조건 복직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남편의 급여만으로 부족하진 않지만 여유롭게 저축을 하는 것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 사이에 이사하기 전에 살던 집을 매도하면서 대출이자의 비중이 제법 줄었다. 남편의 연봉도 아주 작게 나마 올랐다.


무조건 남편 급여로만 생활하고 저축까지 할 것.

육아휴직급여에도 손대지 말 것.

더 과감하게 둘째 양육수당까지도 손대지 말 것.


외벌이로 살기 힘들 것 같다는 불안감은 내가 회사를 오래 못 버티면 어쩌지- 하는 걱정으로 이어졌고, 내가 하는 일 그 자체의 경력보다도 연말 평가에 연연하게 만들었다. 그 불편함과 두려움의 시작이 결국 돈의 문제였다면, 그러면 내가 직접 한번 해보자 생각했다. 좀 오글거리지만 그것이 내 안의 두려움에 직면하는 방법이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지금 급여에서 0 제로가 되거나, 아주 확, 적은 돈으로 줄더라도 어쨌든 돈을 벌고 살아갈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연봉이 높진 않았지만 우리 부부는 12년, 14년을 성실하게을 했고 그 대가로 고정적인 월급을 꼬박 받으며 지내왔다. 실거주하는 내 집이 하나 있고 약간의 레버리지를 이용한 투자도 해놓은 상태. 뭐가 그렇게 두려운가.


맞벌이를 할 때는 큰 지출을 안 하려 노력했지만 카드값 명세서가 매번 150만 원에서 200만 원, 많으면 300만 원 까지도 나왔다. 내가 줄일 것은, 자잘하지만 불필요한 소비. 쌓이고 쌓이면 꽤 목돈이 되는 그런 아주 작은 사소한 지출이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마음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산 물건들. 시간을 보내기 위해 습관처럼 사먹은 군것질거리. 휴직 중에 매일 아침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면서 습관처럼 사 먹는 커피나 빵 같은, 나의 마음과 시간을 메꾸기 위해 지출했던 그런 돈이었다. 그 돈을 모아 정말 맛있는 커피를 마시거나,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주는 만족감이 더 크다는 것을, 조금씩 깨우쳐갔다.


늘 잘 해내지는 못했다. 때때로 예산 오버도 했다. 체크카드라는 방어벽을 만들어서 금액을 넘기지 않으려 노력했다. 가끔 생일이나 어린이날에 양가 부모님이 손녀딸 맛있는 거 사주고, 옷 사입히라고 돈을 보내주시면 잘 쓰려고 했다. 좀 더 좋은 식재료를 구입하는 데에 쓰고, 지금 입을 수 있는 옷, 아이가 읽고 싶어 하는 책을 사기도 했다. 예전에는 야박하게 미래를 준비한다는 이유로 아이 이름으로 만든 통장에 모두 넣었다. 지금 내 눈 앞의 아이들에게는 더 여유로워지고자 했고 대로 나에게는 더 엄격해지기로 했다.





"우리 외식할까?"

"어? 안되는데. 지금 생활비 얼마 안 남아서."


"나 이거 사도 돼?"

"그거 꼭 사야 해? 예산 별로 없다니깐."


늘 내가 남편 모르게 카드로 슬쩍 쇼핑을 하고 택배로 받아서 넣어두었다. 남편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고 직급도 있는데, 나랑 같은 25만 원을 용돈으로 받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매달 25만 원을 꼬박 소비하고, 남편은 그 돈마저도 남겨서 모았다. 그런 우리 둘의 대화가 어느틈에 뒤바뀌기 시작했다.


자잘한 소비를 줄이는 대신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이유로 현재의 행복이나 만족을 지나치게 통제하고 미루지 않기로 했다. 연이어 2번의 휴직을 하고 직장에 돌아갈 생각을 하면 막막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것은 언제든 이루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여유가 조금씩 생겨났다. 혹시 외벌이가 되더라도 우린 그럭저럭 잘 살아갈 수 있었다. 남편에게만 무거운 짐을 지우기는 싫었기에 남편에게도 회사에서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종종 이야기했다. 정 힘들면 그만둬도 괜찮다고도.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나는 복직도 하기 전부터 철없이 퇴사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저 너무 많은 것들을 미리 걱정하면서 살지 않기로 했을 뿐이다.

내가 꿈꾸는 것은 지극히 소박한 지금의 행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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