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직장인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은 (2)

게으른 워킹맘이 회사를 다니면서 남은 건.

by 윤담

신도림. 1호선 2호선 환승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서울의 그 지하철역 인근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강남, 여의도, 종로, 마포 대부분의 업무지구로의 출퇴근이 적당했다. 지하철뿐 아니라 어디로든 연결되는 버스 노선도 많았고, 이른 아침 시간 역 앞에는 이름만 보면 알법한 회사 이름이 써있는 고속버스들이 정차해서 사람들을 태우고 출발했다. 동에는 우리와 같은 직장인이나 신혼부부가 유독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잘은 몰라도 그 집 5년동안 살면서 만난 두 쌍의 앞집 부부도 맞벌이에 직장 생활을 하는 신혼부부였다.


신혼집은 27층 계단식 소형 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는 아침에도 밤에도 위로 아래로 계속 움직였다. 연식이 제법 된 아파트라 그런지 엘리베이터 고장도 빈번했다. 고장이 나면 1층에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거나 힘겹게 계단으로 올라가곤 했다. 우리 집이 15층인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한 번은 같은 동네 사는 분에게 물어보았다.


"엘리베이터 고장 자주 나죠? 너무 불편한거 있죠."


돌아온 답은 예상 밖이었다. 한 번도 고장 난 적이 없다 였다. 어떻게 그렇지? 연식도 같고 같은 건설사에서 지은 아파트인데. 딱 한 가지 차이점은 그분이 사는 집은 30평대였고 내가 사는 집은 20평대였다는 것?

참, 그 분은 맞벌이를 그만두는 선택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중요한 한가지 차이가 더 있었구나 싶다.


"작은 집에는 더 젊고 한창 일하는 바쁜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그런거 아닐까요?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가는 아이들까지 엘리베이터 많이 이용할테고. 이 동네가 1호선, 2호선으로 회사 다니는 직장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잖아요. 맞벌이 부부도 많이 살고."


정말 그런 걸까. 같은 동네라도 작은 집에는 나처럼 정신없고 바쁜 사람들이 사는 걸까.


아침 출근 시간에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은 매우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아니면 5분이라도 먼저 집에서 나왔어야 했다. 현관문을 열고 나왔을 때 위층에서 내려오고 있던 엘리베이터를 잡아 타는 날과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내려가버린 엘리베이터를 보며 아쉬워하는 날들에 우리 부부의 기분은 오르락내리락 요동치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했다. 지하 3층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27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25층, 26층, 27층에는 엘리베이터가 왜 그렇게 자주 올라가는 건지. 나갈 준비가 안되었더라도 무조건 미리 눌러놓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사람들을 더 태우며 내려가다 보면 마지막으로 3층에서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앞은 물론 텅 비어 있었지만.






첫째를 서울로 데려와 어린이집에 맡기면서부터 전형적인 워킹맘 라이프를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출근시간이 정해져 있는 주 5일제 평범한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아침마다 운전을 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8시 반 아침 미팅 시간까지 늦지 않게 출근을 해내는 것, 거기까지가 나의 하루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하루 중 가장 큰 미션이었다. 못 지킨 날도 종종 있었음을 고백한다.


난 어릴 적에도 워킹맘이 된 이후에도(사실 지금까지도) 아침잠이 그렇게 많았다. 미루기를 잘 하는 게으른 성향이었다. 학생때는 그래도 밤에 늦게 잠이 들고 아침에 늦게 일어났는데, 회사를 다니면서부터는 초저녁만 돼도 피곤했고 잠이 쏟아졌다. 대학교 때도 아침9시 이른 시간의 수업은 못들어간 날이 많았다. 그런 내가 출근 시간이 8시, 8시30분이었던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건 매달 찍히는 월급이 내게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었지 대단한 무언가를 위해 회사로 간 것은 아니었다. 입사하고 매일 아침 출근을 하는 내가 신기하다는 대학교 친구에게도 돈이 들어오면 다 하게 되어있더라- 그렇게 말했다. 엄마가 된 후로는 대부분의 날들에 아이를 재우며 잠이 들었고 아이와 거의 비슷하게 일어나거나 조금 일찍 일어났다. 늦게 일어났으니 여유로이 출근을 준비하는 아침 시간은 없었다.


"아침에 샤워를 오래해서 내가 늦게 씻었잖아. 아침에 꼭 샤워를 해야겠어?"

"회사 가는데 그래도 머리를 감고 가야지. 나보다 먼저 일어나면 되는거 아냐?"

"아니 그건 알겠는데 그래도 아침에는 좀 빨리 준비 하자고."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시동을 걸어 출발한다. 시간을 보며 초조해진 마음에 책임 미루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큰길이 나온다. 언제나 차로 가득한 8차선 경인로. 그 도로에 끼어들기위한 눈치싸움을 해야 할 때라 자연스레 언쟁은 거기서 멈추었다. 엘리베이터에 이어지는 2번째 고비. 차분하게 매너있게 오는 차가 멈춰주길 기다릴 것인가. 엑셀 먼저 밟고 헤드라이트부터 들이밀어서 양보할 생각없는 차를 멈추게 만들 것인가. 출근 시간 이미 신호대기로 차가 가득한 길. 깜빡이를 먼저 켜고 얌전히 기다리는 차에게 어서 들어오라며 양보를 해주는 운전자를 만나기는 힘들었다. 아니 그런 일은 없었다.


회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리로 갔다. 빠르게 자리까지 가야 했으니 주차 실력까지 시간이 지날 수록 일취월장했다. 사무실 자리에 앉아 노트북 전원을 켜고 의자에 털썩 앉으면서 가뿐 숨을 내쉬고서야 고요한 나만의 시간이 되었다. 곧바로 업무를 시작하니 매우 짧은 순간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 잠깐의 털썩 주저앉음이 있어 아침 시간의 분주함을 내려 놓을 수 있었다.



일찍 일어나서 좀 여유있게 준비하자고 늘 말을 하면서도 지키지 못한 날이 더 많았다. 핑계를 대보자면 지금처럼 일찍 퇴근하는 문화가 아니었다. 바쁜 시기의 야근은 일상이었고 회사에 길게 남아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성실함과 충성을 내보이기도 했다. 오후 4시, 5시무렵부터는 카톡- 울리는 알림과 함께 그 날 두 번째 중요한 미션이 시작되었다.



"몇 시 퇴근?"

"집에 갈 수 있어?"



그렇게 매일 숨넘어가듯 하루를 보내면서 단 한번도 퇴사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기도 하고 젊어서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매달 통장에 찍히는 그 월급을 포기하는 일이란 그때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후방 카메라도, 후방 센서도 달지 않은 오래된 소나타로 매일 출퇴근하던 그 시절이 있어 서울 시내 운전과 주차가 지금의 내게는 참 익숙한 일이 된 것이 작은 위로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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