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직장인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은 (1)
진급 누락에 대처하는 자세
“출산하면 휴가 계획은 어떻게 돼요?”
배가 제법 나와서 누가 봐도 임산부인 것이 뚜렷해졌다. 입덧도 가라앉고 식욕이 돌아 회사에서 밥도 간식도 잘 먹으며 지냈다. 상사가 평소 편하게 대화할 때보다 딱딱한 말투로 내게 물었다. 관리자의 입장에서 물어보는 공식적인 질문이라는 표현이었다.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 6개월 쉬려고요."
“아 그래요? 길게 쉴 계획이네요?"
"네. 연차랑 출산휴가 90일 붙여서 먼저 사용하고, 육아휴직 3개월을 더 쓸까 해요."
배가 많이 나오기 전에도 물었던 것 같은데 상사는 그 후로도 몇 번 더, 휴가 일정과 휴가에 들어가는 날짜, 복직하는 시기를 물었다. 내 직속 상사였던 책임님은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같은 팀이었다. 매일 아침 6시 반 쯔음의 회사 셔틀버스를 타고 회사로 왔으며 공식적인 업무시간 보다 항상 자리에 먼저 도착했다. 몇날 며칠이고 밤 10시, 12시를 넘겨 퇴근하더라도 다음 날 아침 7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자리에 있었다. 집도 회사에서 꽤 멀었는데. 그런 책임님이 같은 질문을 세 번째 하실 때부터 기분이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늘 같은 대답을 했다. 좀 눈치가 없었으려나. 나보다 먼저 아이를 출산한 회사에서 몇 안 되는 여자분들은 출산휴가 90일이 지나면 복직을 했다. 정확히 10년 6개월 전의 일이다.
3월 중순 아웃룩에 볼드체 메일이 수신함 속 업무 메일 사이에서 눈에 들어왔다. 진급 축하 메일이었다. 진급 발표가 있는 3월이면 상사는 팀 내 진급자를 회사 시스템의 공식발표보다 하루나 이틀 전에 메일로 공유를 했다. 수신자는 늘 그렇듯 팀원 전체였다. 메일 제목을 두 번 클릭했다. 본문에 대리진급자와 과장진급자 이름이 있고,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덧붙여 있었다. 내 이름은 없었다. 출산하고 복귀해서 1년을 일했고 그다음 해가 진급 심사였다. 아마 내가 진급자 명단에 오를 거라면 작년 평가를 받을 때부터 잘 받았을 테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 한마디 정도는 들었을 텐데. 난 결과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과장 진급자에 쓰인 이름을 바라보았다. 입사를 같이 하고 신입 때부터 같이 일해온 남자 동기 두 명의 이름. 아주 친분이 두터운 건 아니지만, 입사 동기인 만큼 긴 시간을 제법 편하게 지내왔던 사람들. 그 이름을 바라보며 한 가지로 표현하기 힘든 여러 감정들이 올라왔다.
'내가 애기 낳고 쉬긴 했지만 .. 그래도 복직하고 1년은 더 많이 일한 것 같은데.'
'딱 내가 출산휴가 가자마자 업무가 바뀌면서 그때 6개월 안 바빴다고 했는데.'
.....
'그래 임신기간 동안에도 남들 바쁠 때 난 일찍 집에가고 일도 적게 했지.'
'출산으로 남들 6개월 일하는 동안 내가 6개월 쉰 것은 맞긴 해.'
'그나저나 이제 호칭은 어떻게 불러야 하지.'
모니터를 잠시 쳐다 보고 있다가 마우스에 손을 올렸다. 잠시 멈추었다가 마우스를 옆으로 끌어 전체 회신을 클릭했다. 아웃룩 새 창이 열리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자를 써나갔다. 중간에 멈추었다 다시 이어 썼다. 그리고 전송을 눌렀다. 지금은 오래되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짧게 아래 내용으로 회신을 한 것 같다.
진급하신 분들 모두 축하드립니다.
ㅇㅇ 선임님, ㅇㅇ 선임님 축하드려요.
유치하지만 약간의 오기와 이미 구겨진 자존심을 넣어 축하한다는 말을 썼다. 앞으로 계속 불러야 할 호칭, 선임님, 이란 호칭도 일부러 붙였다. 내가 아니더라도, 보통 진급자 메일을 상사가 보내면 그 다음으로 축하한다는 회신이 이어졌고 자연스레 진급자 회식을 언제 어디서 할 거냐, 날짜를 잡자는 메일로 이어지곤 했기에. 곧 이어질 그 축하 메일 릴레이를 보고 있자니 차라리 내가 먼저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서둘러 메일을 전송했다. 그 다음 축하 메일 릴레이는 작년만큼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그렇지만 메일을 보내고 진급자 회식까지는 참석하지 말았어야 했다. 난 내가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매번 회식에 꼬박 참석했는데 그날 그 자리만 빠지는게 더 창피할 줄 알았다. 아주 오만한 착각이었다. 연말 연예대상 시상식 자리에는 왜 상 받는 배우들만 참석하는 건지 집에 돌아오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