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 해 회사일이 유독 힘들었던 이유.
멀어져 보고서야 알 수 있었던 나.
대체로 원만한 회사 생활을 해오다가 유독 불안했던 그때. 상반기에 특별한 성과 없이 시간이 흘렀다는 불안감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이미 알고 있었다. 상반기 업무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프로젝트 인원을 셋업 하는 시간, 회의실에 모여 앉아 스크린에 띄워진 업무 리스트를 보면서 나는 내 이름을 유심히 찾고 있었다. 상반기 업무를 같이 했던 일 잘하는 동료와 선임들은 나랑 다른 프로젝트로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내 이름은 막내들, 연차가 낮은 후배들과 나란히 있었다. 인원 구성이 왜 이렇지? 게다가 업무도 많을 게 뻔한 선호하지 않던 그 프로젝트. 인원 구성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지- 궁금했지만 그런 걸 물어볼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유를 묻기는커녕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그냥 하라는 대로 업무를 시작했다. 그것도 보란 듯이 아주 열심히. 그래야만 했다. 상반기에 한 일이 없어도 너무 없었으니까. 아니 정확히는 없었다고 내가 생각했으니까.
프로젝트가 시작- 하자마자 역시 예상대로 해야 할 일들로 정신이 없었다. 업무가 쏟아질 때면 의욕적으로 먼저 나서서 후배들이랑 일을 나누고, 그래도 정리가 잘 안되면 해야 할 일을 리스트업 해서 메일로 공유하기도 했다. 업무를 하면서 지켰으면 싶은 가이드라인도 전달했다. 내 업무 처리는 당연했다. 이왕 상황이 힘들게 된 거 내가 더 신경 써서 일을 하려고 했다. 그렇게 상반기 내내 떨어졌던 의욕과 자신감을 조금씩 회복해나갔다. 의욕이 회복이 되다 못해 넘치게 아주 열심히 했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참 어려웠다. 소극적으로 해도 안되고 혼자만 열심히 해서도 안된다니.
내가 연차가 가장 높았다. 공식적으로 시킨 건 아니지만 암묵적으로 나 스스로 리더 역할을 하면서 일을 했다. 그렇게 업무를 나누다 보면, 빠르게 따라오는 막내 후배들이 있었고, 시큰둥한 분도 있었다. 직급이랑 연차는 나보다 한두해 아래였지만, 나이는 두 살쯤 많았던 남자 주임님. 우린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일을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혹시 아까 그 메일 확인하셨어요- 하고 물어봐도 쳐다보기는커녕 대답조차 들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 시간들이 길어질수록 불편하고 때로는 숨 막히기도 했다.
예약해둔 작은 회의실에서 직속 상사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연말 평가 전에 으레 있는 공식적인 면담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상사가 내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혹시, 일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어요?"
형식적인 질문. 보통 난 그럴 때 말을 거의 안 했다. 그런 내가 말을 꺼냈다.
"다른 건 괜찮은데, 그 주임님 하고 일하는 게 좀 어렵더라고요.."
대체로 반응이 까칠하면서 불만이 있는 듯 보여서 협업이 어렵다 했다. 상사는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 사람의 성향이야. 스타일에 맞춰서 더 잘해야지. 라는 말이었다. 내가 더 노력을 해서 협력을 이끌어 내야만 한다는 오묘한 이야기. 아니 쳐다도 안 보고 대답도 안 하는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더 잘해야 하는지. 상사가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었다.
처음엔 혹시 내 목소리가 작아서 못 들었나? 생각하며 다시 말을 했는데 일부러 대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내 깨달았다.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부끄러운지 창피한지 속상한지 모르겠을 마음에 당황스럽다가 같은 상황을 몇 번 더 겪은 후로는 일부러 보란 듯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내 할 말을 하기도 했다. 업무 협력은 잘 되지 않았다. 은근한 골은 깊어지고 나란히 앉아 있었지만 불편했다. 점점 대화가 줄어들었다. 프로젝트 하기 전만 해도 아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종종 나누곤 했는데 이젠 얼굴을 보는 것조차도 불편한 사이가 되었다.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대체로 그분이 내 시선을 피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꼭 다 같이 밥 먹는 자리 나 회식하는 자리에서는 ㅇㅇ선임님- 하면서 꼭 날 먼저 부르고 챙겼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예의 바르게. 그때마다 난 표정 관리도 참 못했다. 그러니 꼭 나만 그 사람을 불편해하는 것 같았다.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 같아서 약이 오르고 화가 났다. 이 사람이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지?
"에이 그럴 리가 없는데. 자기가 일할 때 뭐 잘못한 거 아냐?"
사내커플이었던 남편과 그 주임님은 흡연장소에서 종종 마주쳤다. 서로 얼굴을 알고 있는 데다가 남편마저 그 사람이 자기에게 얼마나 깍듯하게 인사를 잘하는지 아냐면서 예의 바른 사람이라고 내 말을 도통 믿지 않았다. 아주 답답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바쁜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서 풀리지 않던 질문과 감정들이 가끔씩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하게 자존심이 상했다.
혹시 내가 여자고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걸까?
내가 뭘 어떻게 더 잘해야 한다는 건지.
'나한테' 왜 그러는 걸까.
"ㅇㅇ선임님, 도대체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거죠?"
사람 일은 참 신기하다. 반년 혹은 9개월쯤 지났을까- 내가 하고 싶었던 그 말을, 음료수 하나 들고 앉아서 이번에는 듣고 있었다. 같이 일하던 선임님이 나 때문에 너무 답답한데, 무슨 불만이 있으신 거 아니냐며 재차 물었다. 아마도 내가 그 선임님의 이야기에도 제대로 대꾸하지 않고 몇 번 무시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어색하게 휴게실에 마주 앉아있었다.
"아뇨 불편한 거 없어요. 괜찮은데요 저는."
지금 생각해도 참 유치한 대답을 하며 둘러댔다. 사실 난 그분과 같이 일하는 내내 불편했다. 협조하고 싶지 않은 유치한 마음마저 들었음이 분명했다. 그분이 "너무" "혼자" 모든 일을 열심히 했다. 꼭 그때 나처럼. 조금 미련한 나보다 한 수, 아니 두세 수 더 위였다. 본인의 업무에 대한 어필도 굉장히 능숙했다. 같은 프로젝트에 몸담고 있자니 나는 분명 일을 하고 있는데 꼭 일을 안 하는, 덜한 사람이 된 모양새가 되는 거였다. 그 기분과 상황을 견디고 애쓰면서 일을 더 잘하려고 했다. 내가 나이도 어렸고 연차도 낮았는데 그 분이 모든 성과를 가져가는 것 같아 자꾸만 얄미웠다. 세상에. 이번엔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비협조적으로 대하다니. 그것도 뒤에서 티 안 나게.
내 나름대로의 사정과 이유는 있었다. 그 해에 난 고과를 반드시 잘 받아야만 했다. 반드시. 그 전 해의 고과가 바닥 중에서도 아주 바닥이었다.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고과였다. 흉흉한 소문이 돌 때마다 말은 안 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 이러다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는 거 아냐? 저 사람과 내가 나란히 평가를 받을 텐데, 내가 더 잘 받아야 할 텐데. 그 생각에 갇혀서 초조하고 불안했다. 저 사람은 이상해. 별 일도 아닌 것을 왜 저렇게 오버해서 열심히 하고 티를 내는건지, 집에는 또 왜그리 안가는지.
일하기 힘들었던 그때를 곰곰이 떠올려본다.
일하기 힘들었던 이유를 찾으려 했지만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애초에 그들이 '나한테' 뭘 한 게 아니었으니까.
육아휴직을 하고 일을 잠시 쉬어 보았다. 인사평가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보고 나서야 과거 그 시기에 불안해하던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A를 받을 수 없는 인사시스템 그 안에서 참 평범하고 평범한 나는 그렇게 발버둥을 쳐야만 했다. 내 시야가 좁았고 내 세상에 회사가 차지하는 부분이 컸다.
이젠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때 그들도 나처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었을 뿐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