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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담 Sep 23. 2022

소설책을 읽을 여유가 생기다.

휴직을 하고 물리적인 시간이 많아졌다.


소설 읽기를 매우 힘들어하는 편이다. 지금 나의 현실에서 소설 속의 세계로 주의 전환이 잘되지 않았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에 대해 지금 나의 생각이나 상황만큼 관심이 안 갔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 알겠는데 그래서,

무엇을...

......



이타적인 마음과 사람에 대한 관심 없이 소설을 읽는 시간은 즐겁다기보다 피곤한 애씀이 필요한 일이었다. 여유가 필요했다. 표지에서부터 잘 읽히지 않는 에세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빠져들기 힘들었고 리뷰를 쓸 수 없었다. 



여유란 마음의 여유가 아니다. 

물리적인 틈을 뜻한다. 



물리적으로 틈이 없는 상태에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물론 여유란 매우 상대적이라서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30분도 사유하기에 충분한 틈일 수 있다. 회사 업무를 하고 매일 출근을 하면서 육아를 하더라도 누군가는 이 작은 물리적인 틈을 잘 사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 다만 나에게는 늘 심리적으로 쫓기는 상황이었을 뿐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하루 생각 에너지 (한 사람의 일일 두뇌 사용량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를 소진한 상태에서는 이타심을 갖기가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서, 조직 안에서는 타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것도 다시 상기할 수 있었다. 경쟁심 때문에, 배려가 부족하거나 악해서가 아니었다. 모두가 각자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필사적이었을 뿐이었다. 생존본능에 가까운 직장인의 이기심을 비난하거나 원망해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고 내게 말을 하며 기억하고자 했다. 



휴직을 하고 매일 출근하지 않는다. 출근을 하지 않는다고 하염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집안일과 육아에 매진하는 것도 아니다. 요 며칠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위한 미팅, 그리고 주말에 있을 워크숍 행사 준비를 위한 줌 미팅이 저녁에 연이어 있었다. 휴직 중이지만 새벽 기상과 저녁 줌 미팅이 연달아 있는 날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오후에 깜빡 졸기도 하고 처리해야 할 일이 마감시간까지 쌓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일주일에 세 번 수영을 갈 수 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의 하교 후 모습을 볼 수 있다. 늦은 오후 시간에는 늦둥이 둘째를 하원 시키고 놀이터에서 즐겁게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의 양이 현격히 많아졌다. 월급을 받기 위한 노동을 멈췄으니 당연한 일이다. 



여유가 없던 내가 휴직으로 물리적인 틈이 생겼다. 2017년, 휴직했을 때 4~5개월 수영을 배웠지만 자유형 평영 접영 어느 것도 잘하지 못했다. 초급반에서 다시 자유형부터 시작, 지금은 평영을 배운다. 어쩌면 빈틈을 넘어서 때때로 하루 중 잠깐씩은 루즈하기도 했다. 그 틈이 생기자 몇 달 동안 손도 대지 못했던 파친코 1권을 읽을 수 있었다.



몇 장 들추다가 흡수가 어려워서 다 읽지 못한 책들이 있다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읽지 못한 책도 있었다. 파친코는 후자에 가까웠다. 겉표지까지만 보고, 단 한 페이지도 열어보지 못했던 책이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부지런한 사람이 돼야 해.
모든 사람에게 연민을 가져라. 네 적까지도. 이해하겠니?

- 소설 파친코 1 중에서



다정함과 지혜로움, 그리고 이념과 신념에 대해서 느끼고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글을 읽으면서 자꾸만 귓가에서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경험도 신선했다. 1권을 덮으며 2권은 시간을 두고 아껴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스테디셀러 신경 끄기의 기술을 쓴 마크 맨슨의 다른 책 희망 버리기에서 운명 같은 문장을 만났다.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지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는 문장이었다. 고정적인 노동 수입을 자발적으로, 한시적으로 포기한 나는 안도했다. 




자유로워지는 것은, 
삶에서 포기할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자유는 불편함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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