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거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젯밤에는 늦은 시간 온라인 줌으로 강의를 들었다. 내가 참여하고 있던 자녀교육 코칭 온라인 프로젝트 모임의 리더이신 작가님의 줌 강의가 있던 날이었다. 밤늦은 시간에 강의가 끝나고 내 눈에는 강의 슬라이드 중간중간 작가님의 아이들이 큰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무언가 문제집 같은 것을 열심히 풀고 있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작가님의 초등학생 막내딸이 아빠와 같이 앉아서 공부도 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진은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리 집에도 커다란 테이블이 하나 있다. 아주 큰 6인용 식탁이라서 2명 3명이 앉아서 공부를 해도 충분한 크기였다. 이 테이블은 남편이 사용하는 일명 서재 방에 있다. 그 방에 있는 붙박이장도 남편이 사용한다. 책장이 놓여있고 때때로 기저귀 박스나 롤 휴지 같은 부피 큰 짐들이 놓여있기도 했다. 남편이 벗어서 걸쳐둔 옷들로 의자마다 빈자리가 없는 바로 그 방 말이다.
그 테이블을 밖으로 꺼내야만 할 것 같았다. 아직 어린 3살 둘째를 제외한 우리 셋은 종종 각자의 공간에서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보며 열중하곤 했다. 스마트폰 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도, 큰아이의 수학 문제집 채점이 매번 미뤄지는 것도, 남편이 아이 숙제를 봐주지 않는 것도 왠지 그 테이블과 그 방 때문인 것 같았다. 그 테이블을 꺼내놓던지 당장 뭔가 해야 할 것 같았다.쇼파랑 티비가 있는 저 거실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었다.
"자기야, 이거 한번 볼래?"
식탁에서 밥 먹고 난 후 역시나 각자의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 여러 번 불러서야 어? 어어- 시선 한번 옮기지 않은 채 남편이 대답했다.
"아니, 이걸 보라는 건데? 한번 봐봐. 폰 그만보고."
"그게 뭔데? 줘봐."
"어때 보여?"
"아니 그러니까 이게 뭔데?"
그렇게 잠시 속 답답한 대화가 오가고 나서 다시 말을 꺼냈다.
"이렇게 큰 아이들이 여기서 같이 공부하고 대화하고 한대. 보기 좋지 않아? 우리도 이렇게 해볼까?"
내 질문에 싫다 좋다 대답하진 않았다. 슬쩍 남편의 얼굴을 보니 뭐 알아서 해도 괜찮다는 듯하지만 그다지 탐탁지 않은 듯했다. 평소처럼 큰 목소리의 대답도 없었다.
테이블을 꺼내야 하는지, 거실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소파와 티비를 먼저 치워야 하는지 나도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였기에 한동안 그다음 액션을 취하지는 못했다.
거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이즈가 큰 회색 패브릭 소파가 3인 , 1인 두 개가 벽과 창가로 나란히 ㄱ 자로 놓여있고 소파 옆으로는 둘째 장난감과 책이 가득한 책장이 있고 그 옆에는 디지털피아노가 보인다. 소파 맞은편 벽에는 커다란 티비 그리고 책장까지. 이 모든 것이 우리 집 거실에 있는 상태였다. 아참, 소파 앞으로는 나무로 된 테이블이 중앙에 있고 테이블 옆으로는 알록달록한 놀이매트도 깔려있다.
이 거실에 큰 테이블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머릿속이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거실도 가구와 물건들로 가득한데. 방법이 없었다. 이 가구를 먼저 버려야 했다. 버리고 비워야만, 커다란 테이블을 놓을 수 있는게 당연했다. 남편에겐 티비랑 티비장만 버리는게 어떻겠냐고 먼저 말하기로 했다. 사실은 싹 다 버릴 생각이라는 말만큼은 하지 않고 말이다.
나혼자만의 그 계획은 매우 야심찼으나 당연한 수순으로 이루지못했다. 3년정도 사용한 새 가구들을 버리는게 아깝다는 남편 생각이 맞기도 했다. 그래도 과감한 비우기 없이는 공간의 변화를 줄 수 없는데, 버리지말고 일단 테이블 먼저 꺼내어보자는 남편의 말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었다. 난 요즘 트렌드대로 하얀 상판의 큰 테이블이 사고 싶었으니까.
티비를 마땅히 옮길 데가 없었다.
버린다? 아니면 안방으로?
그럼 티비를 치우면 ip티비는 어떻게 하지?
저 커다란 쇼파를 싹 치우고 싶은 나.
인스타속 예쁜 피드들처럼 미니멀한 거실서재를 만들고 싶었던 나.
가구는 안버렸음 좋겠다는 남편.
새로운 뭔가를 사들일게 분명한 와이프를 말려야만 했던 남편.
그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던 거실의 서재화는 어느 일요일 저녁에 5분만에 이루어졌다.
슬슬 피곤해지면서 컨디션이 나빠진 둘째가 울기 시작했다. 울고 칭얼거리면서 티비를 틀어달라고 했다. 평소처럼. 그런데 그날따라 유독 나는 평소처럼 도저히 티비를 틀어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늦었으니까 티비 안나와 하며 말로 여러 차례 타일러 보았지만 내 말이 먹힐리 없었다. 울거나 투정부릴 때마다 티비에서 핑크퐁, 옥토넛, 디즈니주니어채널 돌아가며 마음껏 보았던 3살 둘째였다. 티비를 계속 틀어주지 않자 급기야 뒤로 드러눕기를 시작했다. 그건 떼쓸 때 하는 둘째의 주특기였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나의 화가 머리 정수리 끝까지 차올랐을 즈음 티비의 전원 선을 뽑았다. 셋탑박스의 hdml케이블, 랜선케이블, 전원선도 뽑았다. 사운드바의 광케이블도. 티비를 들고 안방 베란다로 내치듯이 옮겼다.
그날, 티비없는 거실이 5분만에 만들어졌다.
55인치 티비는 내 생각보다 훨씬 가벼웠다.
한참을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쉬운걸, 뭐가 그렇게 힘들었지?
거실서재의 본질은 습관처럼 미디어에 노출하는 시간을 줄이고 한 공간에 모여 뭐가 되었건 활동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내가 참여했던 프로그램에서 코칭을 해주신 작가님도 역시 티비를 치워야해요! 라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강렬했던만큼 평화로운 사진 속 순간이 부러웠고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섣불리 돈으로 따라할 수 있는 거실, 껍데기를 흉내내고자 했던 나의 조바심이었다.
물건없는 거실, 책장과 테이블, 조명만 있는 예쁜 거실을 꿈꾸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내 자신을 문득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만들어낸 무수히 많은 나의 핑계들이 떠올랐다.
진급을 해야해서,
임신 중이잖아.
집이랑 근무지는 가까워야 하는데.
다시 새로운 일을 처음부터 시작할 열정은 아니야.
이 일은 그래도 일정에 맞게 내가 끝내야지.
게다가 애엄마가 어딜 가겠어?
너무 많아서 기억조차 다 나지 않는 많고 많은 핑계들. 그 안에서 내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고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조금 이른 퇴근을 한 금요일 저녁에, 회사와 집 사이 어딘가에서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더 나를 만나본다. 너무나도 타당하고 합당한 이유를 찾기전에 그냥 한 번 해보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