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이렇게 살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직장인으로 사는 것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다.
1년도 더 지난 육아휴직 때의 기억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난 기어 다니는 둘째 아이를 보며 거실에 있었다. 그리 늦지 않은 저녁 시간 현관문에서는 띠띠띠-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났다.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고, 평소처럼 거실로 먼저 걸어 들어왔다. 아기랑 내 얼굴을 보고 인사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겠거니 했는데, 남편이 잠시 발걸음을 떼지 않고 주방 옆 복도에 서있었다. 평소보다 얼굴이 좀 굳어있었다. 남편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황당하다는 듯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부고였다.
남편의 입으로 전해 들은 부고 소식은 내가 아는 이름이었다. 내가 휴직하기 전 나와 같은 팀에서 근무하고 계시던 분이었다. 아주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업무적인 용건으로 두어 번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어 얼굴이 바로 떠올랐다. 같은 팀이었고 자리도 같은 층이었다. 며칠 전에 남편에게서 그분이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급히 병원으로 갔고 병원에 가자마자 바로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부고라니 너무 갑작스러웠다. 평소 특별한 지병은 없으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나는 두 번째 휴직 중이었고, 집에만 머문 지 오래라 기억이 흐릿했지만 남편은 바로 얼마 전까지도 회사에서 얼굴을 마주친 적이 있었다며 더 믿기지가 않는다 말했다.
내게 전해진 함께 일하던 분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은 처음이 아니었다. 두 번 째였다. 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임신 막달이었다. 몇 년 전에 같은 팀에서 일했던 분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임신 중이라는 핑계를 대며 장례식장에 찾아가지 못했던 일이 마음속 한켠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같은 팀 선후배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며칠 전까지 출근하여 일하던 분의 일이라 나처럼 다들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장례식이 지나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 후배에게 연락을 한번 더 해보았다. 일하는 분위기는 괜찮을지 같은 팀에서 같이 일을 하던 젊은 가장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여전히 뒤숭숭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 후배에게 톡으로 들은 메시지는 놀라웠다. 어느새 다들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게 일하기 바쁘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던 분들은 물론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더 많은 시간을 두고 애도의 마음을 표현했을 테지만 회사는 개인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고인에 대한 애도의 시간을 가질 적당한 시간도 없이 그분의 하던 업무를 누가 어떻게 이어 할지까지 정리가 되었다고만 전해 들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나 스스로 질문을 하기 시작한 것이.
'이렇게 살다 어느 날 갑자기 죽어도 나는 만족스러울 것인가.'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아이 하나를 키우면서도 그렇게 중요하게 여겼던 회사의 일. 주어진 업무. 해내야만 했던 많은 일들과 회사의 평가. 때로는 너무도 하기 싫었지만 때로는 일을 해내면서 성취감을 가질 수 있었다. 책임감과 주어진 업무라는 이름 아래에 일이 해결될 때까지 붙들고 시간이 지나도 자리를 떠나지 못했던 그것.
회사의 업무는 사람이 하지만 그 업무, 그 사람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해야 했다. 그것이 조직이고 시스템이기에 어느 한 명이 갑자기 빠지더라도 조직은 잘 굴러가야만 했다. 사람을 존중한다는 말이 참으로 무색하게 회사에서 직원은 언제든 대체 가능한 존재였을 뿐이었다. 그 안에서 마치 내가 아니면 일이 안될 것처럼 매달렸던 시간들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아니 졸업식도 하기 전 겨울 회사에 들어갔다. 나의 세상은 대학에서 회사로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일이 재밌어서, 월급이 좋아서, 사람이 좋아서 내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온 지 어느새 13년이 되어가고 있었을 때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월급이 좋아서, 월급이 필요해서 열심히 다니던 회사 생활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