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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담 Dec 10. 2020

인생의 속도를 높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

'팀페리스'가 말하는 해방. 나는 4시간만 일한다.

천천히, 재미있게


"속박 속에서 일이 잘되는 것보다는

자유로움 속에서 일이 잘 안되는 게 훨씬 더 낫다."

-토머스H. 헉슬리. '다윈의 불독'으로 알려진 영국의 생물학자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투자자, 사업가인 팀 페리스의 스테디셀러, [나는 4시간만 일한다.] 의 4장 첫 페이지에 나오는 문구이다. 팀페리스의 이 책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너무 당연한 관념이자 동시에 대학 졸업 이후로 지금까지 나의 삶 그 자체였던 9 to 6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뉴리치라는 새로운 개념의 부자에 대해 소개하면서 성공의 정의를 바꾸라고 말한다.


책 속 뉴리치, 새로운 정의의 부자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곧 W가 자유로운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What 무엇을 하고

x When 언제 하고

x Where 어디에서 하고

x with Whom 누구와 함께 하느냐


시간(WHERE)과 장소(WHEN)에 자유로운 삶. 젊은 시절을 내내 일에만 매달려있다가 60살의 은퇴를 꿈꾸지 말라고 한다. 지금, 더 젊은 이 시간에 돈을 벌면서도 미니은퇴를 통해 충분히 삶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그 것을 위한 방법을 4단계로 소개한다.


이 책은 육아휴직중에 읽었던 여러 책들 중에서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 지에 대한 큰 생각의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직장 생활과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 것은 물론이다.



정년까지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으니,

최대한 내가 일할 수 있을 만큼 조금이라도 더 일하고 나오려고 했다.

회사를 줄곧 다니시고 이제는 퇴직한 아빠, 시아버

내게 회사를 바로 나오지 말고, 버티고 남는 이 더 낫다 말했다.



처음 이 책 제목을 접했을 때는 하루 9시간을 사무실에 있고 점심시간 1시간을 빼고 8시간을 일하는 사람들에게 하루에 4시간만 일해도 충분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서도 당연히 하루에 4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읽어나갔는데 읽어갈수록 그게 아니었다. 저자는 일주일에 4시간 일하라는 이야기였다. 하루에 1시간이나 될까? 이건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당연히 책이 쉽게 읽히지 않았다. 1장은 우리가 바꿔야한 기존 관념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소개해주는 장으로 그 내용이 많이 와닿았지만 이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일주일에 4시간 일할 수 있는지 step by step 을 소개해주는 2, 3, 4장은 참 읽기가 어려웠다.


4장에서는 원격근무를 이야기 한다. 2장이 불필요한 것들에 대한 제거를 말하고 3장이 사업을 통해 일하는 시간을 줄여나가는 방법을 소개한다면 4장은 회사에 남기로한 직장인의 자유로워지는 방법에 대한 가이드인 셈이다.


간단히 책 목차를 소개해보면 이러하다.

뉴리치로 가는, 4시간만 일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1장 적게 일하고도 많이 벌 수 있다. (정의 D)

2장 단순함이 답이다. (제거 E)

3장 자동화된 돈벌이 수단, 뮤즈 만들기 (자동화 A)

4장 원할 때 일하고, 살고 싶은 곳에서 산다. (해방 L)



해방. Liberation. L

책에서 팀페리스는 직장인이라면, 불필요한 업무 시간을 제거하는 일 이전에 먼저 장소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직장인이 장소의 자유를 얻는 방법은 바로 원격 근무인데, 이 4장의 요지는 허락을 구하지 말고 용서를 구하라는 것으로 먼저 원격근무를 하겠다 적극적으로 요구하라는 것으로 풀어볼 수 있겠다. 원격근무를 하면서 성과가 더 높다는 사실을 증명하면서 설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힘겹게 챕터를 읽어가는 동안 내 머리속에서는 계속 이런 말들이 맴돌았다.


이건 미국이니까 가능한거겠지.

아주 자유로운 문화의 글로벌 IT 회사나 아니면 아주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나

가능하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사무실에서 탈출하는 법" 으로 시작하는 4장의 첫 챕터 제목은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1장의 부자에 대한, 성공에 대한 재정의에 비해 너무도 비현실적이었다. 자연스레 책장을 덮자마자 이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2020년 12월.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인 지금. 원격근무와 재택근무는 일상화되었다. 어느새 인스타 광고는 내게 홈오피스 꾸미는 가구 배치방법이나 재택근무를 위한 업무용 데스크 등의 제품을 계속 보여준다. 집에 어른 책상 하나쯤은 집안 어딘가에 있어야만 하는 이 시대에 책의 4장을 다시 펼치니 느낌이 새로웠다.



나의 남편이 일하는 부서는 몇 달 전부터 주 2회씩 날짜를 정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아주 최근에서야 늦은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재택근무는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사내시스템은 원격근무에 걸맞는 환경으로 이미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보안이나 물리적인 사유로 집에서는 안될 것 같았던 일들 마저도 누군가 먼저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하자 아주 적절하게 해결이 되었다. 집이나 회사나 같은 업무환경이 갖추어졌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커다란 모니터의 부재였을 정도였을 정도로 말이다.



흡연을 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업무시간에는 자리를 지키게 된다. 점심을 먹고 산책하는 것이 유일하게 바깥 공기를 쐬는 시간이었는데, 겨울이라는 이유로 요즘엔 그 시간마저도 없어졌다. 사무실에서 믹스커피 한봉지를 타서 마시는 아주 작은 숨통 같았던 그 시간. 집에서 같은 커피를 내가 좋아하는 머그 잔에 타면서 따스한 피부의 감촉과 눈에 보이는 빛의 색과 그림자로 거실 가득한 햇살을 누렸다. 휴직 중에 참 좋아했던 서향 집의 오후 햇살이었다.


나는 복직한 이후로는 대체로 회사에서의 시간이 갑갑했다. 그 이전에 12년을 그렇게 일했으면서,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에 나란히 앉아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나 스스로 내가 이곳에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다 느껴서였을 수도 있다. 집에서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그렇게 답답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있는 시간에는 마냥 편하고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집에서 일을 하면서 갇혀있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그것만으로도 내겐 재택 근무, 원격 근무의 발견이었다.  내식당에서 남이 차려주는 밥이 그렇게 편하고 좋기만 했는데 재택근무를 해보니 집에서 내가 먹고 싶은 반찬을 꺼내 차려먹는 것마저도 즐거운 일이었다. 이렇게 일할 수만 있다면 회사를 얼마든지 더 오래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살짝, 아주 살짝 들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시간과 장소에 자유로운 나만의 일을 찾는 것을 더 빨리, 하고 싶었다. 현실 모르는 철 없는 이야기로 들릴테지만, 사무실에서 주5일 시간을 보내는 대신 팀 페리스처럼 더 적게 일하면서 내가 원하는 곳,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머물고 싶었다. 그로 인해 삶의 속도가 조금 느려지더라도 말이다.


미혼의 팀페리스는 부자가 누리는 럭셔리한 라이프 스타일을 위해 사무실에서 탈출하라 말한다. 아이 둘 엄마인 나에겐 그것도 물론 좋지만 탈출을 하고 아이들 얼굴을 조금 더 볼 수 있다는 것 일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시간에 좋아하는 공간에 머물 수 있는 아주 작은 자유가 더 합당한 이유인 듯 하다.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원격근무를 하면서 해외에서 스키여행을 하고 비행기타고 다른 나라에서 머물면서 일을 하는 그러한 해방은 지금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점점 이렇게 모두가 재택근무를 경험하면서 재택근무로는 일이 안될꺼야, 관리가 안될꺼야에서, 재택근무로도 생각했던 것보다 원하는 만큼의 성과가 나오네- 라고 모두의 인식이 달라진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팀페리스가 말하는 탈출까지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시간과 장소에 자유로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기계적인 노동을 훨씬 더 인간적으로 만들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시작은 이렇게 살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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