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아저씨는 한번 더 내게 목적지를 확인했다. 아침도 저녁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에 택시를 타고 지역을 이동하는 이가 택시기사 아저씨에게도 충분히 낯설 법 했다. 목에는 아이디카드를 걸고 있는 회사원이었으니 더더욱. 울렁거리는 택시 안 계속 머리속에 맴도는 단어가 있었다.
평범함.
유독 그 단어가 마음에 불편하게 와닿았다. 아마도 지난 주말 사이에 있었던 평범한 일들 때문이었으리라. 나의 삶과 나의 살아가는 모습은 왜이리도 평범한가- 그 생각을 떠올리자 코가 찡해왔다. 괜히 시선을 창밖으로 돌려보았다.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향하는 교통수단이라는 것은 사람을 평소보다 더 깊게 생각하게 만들 때가 있다. 그 날이 그런 날이었다. 어딘가 속해있는 무리 속의 나에서 빠져나와 잠시 온전히 혼자 있는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평범하게 살아온 것만으로도 지금은 분명 감사한 일이지.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데..'
평범한 삶이 내게 주는 선물이 있었다. 지극하게 평범한 회사원의 일상을 살면서 그 일상에서의 경험과 생각을 쌓아갈 수 있다는 것은선물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저 한구석이 어딘가에 찔린듯 저릿했다.
"자기야. 사람들은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준비를 완벽하게 하려고 하잖아."
"뭐? 뭘 시작해?"
"아니 이를테면.. 퇴사도 그렇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도 그렇고..
하던 것을 갑자기 그만두고 시작하는 경우는 많이 없잖아.
거의 대부분 미리 준비를 하고 노력을 하잖아."
"......"
"그러니깐, 모두가 다 그렇게 준비만 계속하면서 계획이 완성될 그 날만 그리며 살아가니까,
정작 계획이 완성될 날은 오지 않고 계속 똑같이 살아가잖아."
"......"
"우리는 그러면 너무 고민하지 않고 막 해보면 어때?
평범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누군가 그런 경험(모험)을 했다고 하면 굉장히 대단하게 바라보잖아.
우리가 그렇게 해도 되는거 아닐까?"
"어어? 음... 그래?그래."
남편은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적당히 알았다며- 대답을 해주었다. 정말로 동의한다는 의미의 "그래"는 아니었다. 대답을 해야 나의 알 수 없는 말들이 금방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남편의 형식적인 대답을 받았지만 괜히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평범하게 살아왔는데, 미래를 준비하는 일 역시도 평범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 간혹 나를 아프게 했다. 잘하는 사람들과의 비교 때문이었으리라. 부단한 노력과 시간의 투입이 필요한 일인 것을 알지만 그렇게까지 노력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부럽다는 마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내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니 내 삶을 희생하기는 싫고 결과만 부럽고 탐이 나는 도둑심보였다.
약간의 힌트를 찾았다. 내 삶의 기준이 주변에 맞춰있었다. 삶의 중심을 나에게서 찾지 않았고 내가 속한 사회와 조직에 무난히 적응하는 것에 더 치중했다. 적당한 시기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저축을 하고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 불편함을 감수하고나를 깎아내는 것, 덮어버리는 것을이제는 내려놔도 괜찮을 것 같았다.
평범하게 살아온 지난 삶이 감사하지만 이제는 하나씩 아주 작은 것부터 평범하지만은 않은 나의 개성을 찾아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