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뒤에 테이블에 사람들 봤어요? 아니 여기 맛집까지 와서 왜 셋다 그냥 나도- 하면서 같은 메뉴를 시키는 걸까요?"
이해할 수가 없어- 라는 한마디가 더 붙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날 점심은 자주 오지 않는 외식의 기회에 회사 근처에 새로 생긴 돈까스 맛집 첫 방문이라는 옵션이 더해졌다. 우리는평소같았으면 궁금한 몇가지 메뉴를 시켜서 나눠먹었을텐데바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기에메뉴판을 한참 들여본 후에야 각각 안심과 등심 부위가 같이 나오는 세트메뉴를 시키기로 했다.
식당 맞은편 길 건너에는 좋아해서 자주 가던 돈까스 맛집이 있었고 그곳과 비교해서 우위를 가르기 위한 부차적인 방문 목적이 있기도 했다. 고기 본연의 조금 느끼한 맛이 본래의 취향인 분은 길 건너 집보다 고기가 두껍고 씹는 맛이 있어 좋다고 했고, 적당한 두께의 고기에 겉은 바삭하면서 속은 촉촉한 안심 가츠와 국수 소면, 밑반찬 의 다채로운 조화를 좋아했던 다른 분은 여긴 별로라고 했다. 고기 씹는데 한 덩이가 너무 커서 턱이 아플 지경이었다고.
"아 그쵸. 여기 고기가 더 두껍더라고요."
"음- 그래요? 거기 건너편 집이 국수도 나오고 구성이 조화로웠죠."
사실 난 둘 다 크게 상관은 없었다. 뒤 테이블의 그 세 명이 내 모습인 적도 많았으니까. 적당히 분위기에 맞춰서 메뉴 나오는 순서가 비슷하길 바라면서 일행 중 누군가와 그냥 같은 메뉴를 시켜버리는 일 말이다. 누군가 같이 밥을 먹자고 하면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쪼르르 따라가서 먹기도 했다. 나는 그런 모습일 때가 좀 더 많았던 것 같다.
우리가 밥을 종종 같이 먹기 시작한 건 꽤 오래전이었다. 지금은 퇴사를 한 후배까지 같이 네 명은 회사에서 가끔 점심 외식을 함께 했다. 나를 뺀 셋은 하나같이 미식가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좋아하는 음식을 신중히 고르는 타입이었다. 나야 늘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었지만 다른 분들은 건강을 위해 점심은 샐러드로 먹을 때가 많았다. 점심을 때때로 함께하며 회사 인근의 맛있는 집을 점차 알아갈 수 있었고 그저 그렇게 목적없이 모여서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회사에서의 일상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다만 난 메뉴를 꼭 그렇게 신중하게 고를 필요는 없어서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며 괜찮다고 끄덕일 때가 많았다. 끄덕임은 채팅창에 "ㅇㅇ" 혹은 "네-저도 좋아요" 로 쓰여졌다.
그날도 오전에 사내 메신저 창에 모여 약속 날짜와 메뉴, 장소를 고르고 있었다. 각자의 취향이 조금씩 달랐고 돌아가면서 메뉴를 정하곤 했는데, 그날은 유독 아시안푸드와 중식, 일식 사이에서 메뉴 선정과 장소에 대한 논의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아시안푸드의 향신료에 민감한 분이 있어서 향신료 내음이 진하게 나는 태국식 쌀국수나 똠양꿍, 마라가 들어간 음식을 먹으러 갈 때는 충분한 사전 논의와 합의가 필요했다. 그 메뉴를 먹기 전에 꼭 닭갈비를 먹으러 간다거나 부대찌개를 이미 먹고 왔거나 그렇게. 그날도 비슷하게 논의가 길어지고 있었는데....
문득 마음속에서 나도 모를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을 온전히 느낄 새도 없이 나는 채팅창 아래 입력창에 이렇게 쓰고 있었다.
"전 사실 그냥 한식이 제일 좋아서, 어딜 가든 상관없어요."
우리의 외식은 대개는 2주에 한번, 길어지면 3주에 한 번이었다. 그 사이에 각자가 다른 약속을 잡고 외식을 하는 일들은 물론 있었지만, 그래도 그 외식은 구내식당밥보단 당연히 맛있어야 했다. 일부러 날을 잡고 먹으러 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메뉴이거나 샐러드를 포기하고 칼로리를 선택한 만큼 그에 합당하는 맛이어야 했다. 구내 식당에선 일년 365일 한식메뉴가 제공되었으니 당연히 한식을 먹으러 갔던 적은 많지 않았다. 몇 년을 그렇게 지내왔으면서 뜬금없이 나는 그냥 한식이 좋아서 뭐를 먹든 상관이 없다고 말해버리면서 찬물을 끼얹은 셈이었다.
위 아래 문장의 흐름과 채팅창에 쓰여진 글자만으로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기민한 사람은 눈치를 챘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모르고 지나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엔터를 누르고 나서 가장 놀란 사람은 나였다. 맛집 탐방을 따라가는 것은 좋았지만 그 탐방을 위해 이렇게 길게 음식과 메뉴에 대해, 장소까지 고려하고 또 고민할 만큼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그것을 내가 굳이 모두에게 표현했다는 것도 나 스스로 놀라웠다.
불편한 마음속 여운은 길게 이어졌다. 함께 하는 시간이 싫지 않았다. 아주 작지만 또 작지만은 않은 그러나 티는 안나는 반란과도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속이 후련하긴 했다. 내가 왜 그랬지 소심하게, 꽁하게- 다른 사람 불편하게, 그냥 예전처럼 편하게 듣고 대답하고 말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 후에 한 분은 가끔, 미경 선임은 한식 좋아하는데- 괜찮겠어요? 이렇게 종종 물어봐주었다. 그럴 때마다 괜히 한번 더 미안해지곤 했다. 가기 싫은 자리에 억지로 끌려가는 것도 아니었고 내가 좋아서 일부러 시간을 내서 이어온거였으면서.
나는 음식에 대해서는 정말로 무딘 편이고 웬만하면 다 맛있게, 즐겁게 먹을 수 있었다. 한식을 좋아한다는 것은 맞았지만, 고수가 들어간 진한 쌀국수를 좋아하고 시큼하게 쏘는 똠양꿍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양고기는 그냥 맛있는 걸 떠나서 너무 맛있었다. 또 마라탕도 좋아하고 와사비의 톡 쏘는 맛도 좋아한다. 소곱창은 말해서 뭐하랴- 전골에 들어간 돼지곱창도 맛있는데. 순대국밥도 순대만-이 아닌 그냥 순대국밥을 먹는다. 허여멀건한 순대국밥부터 다대기가 가득 들어간 진한 순대국밥까지도 좋아한다. 참, 하나 깨달은 것은 바삭한 튀김이 올라가고 단짠 양념이 밥에 배어 있는 텐동만큼은 아무리 맛집이어도 내가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텐동보다 와사비와 간장, 무순과 함께 먹는 고소한 사케동이 내 입맛에는 더 맞았다.
내가 참으면서 맞춰주고 있단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마음에 난 한식이 좋은데- 라고 욱- 올라왔던 것이 분명했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아니었다. 함께 하면서 여러 음식을 먹고 맛집을 찾는 것이 나도 좋았다. 비록 내가 주말에 스스로 맛집에 찾아갈 정도로 열정은 없었지만,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는 일은 내게도 좋은 시간이고 경험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후로는 예전처럼 어디 식당의 어느 메뉴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가 오가더라도 불편하지 않았다. 나와 가깝고 친한 이에게는 이렇게까지 음식과 분위기와 장소가 중요하구나-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인 거구나, 그렇게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수년 전 얼음 들어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면 5백원이건 3천원이건 5천원이건 다 똑같은 커피일 뿐이었던 나는 이제는 커피의 신 맛과 쓴 맛의 차이를 느끼지 않으려 해도 이미 맛을 느끼고 있었다. 테이크 아웃할 것이라면 4천8백원을 내고 맛없는 브랜드매장에서 사느니 편의점머신에서 내린 천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사는 것이 더 훌륭한 선택이라는 것도 배웠다. 진하고 고소한 쫀득한 거품이 있는 라떼, 그 중에서도 더 맛있는 라떼와 중간 쯔음인 맛의 라떼 그리고 물에 탄 듯 밍밍한 라떼의 맛을 자연스레 구분하게 되었다.
함께 커피를 마실 때 마다 그날 커피의 맛에 대해 세심하게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지금도 난 비싼 돈을 주고 맛없는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해서 마시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취향을 찾아가면서 또 서로의 취향을 알게 되었다. 날이 더워지면 무조건 콜드브루 아이스를 마시는 이. 다양한 커피를 모두 즐기지만 향이 좋고 산미가 풍부한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이. 산미는 조금 낮으면서 씁쓰름하고 구수한 맛의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나. 쫀득한 거품이 올라간, 우유가 3/4 들어간 라떼를 좋아하는 이. 그렇게 말이다.
난 맛집 탐방에 그렇게까지 에너지 쓰기 싫은데- 라는 마음은 다양한 음식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고, 또 아이 핑계로 유명 맛집이나 레스토랑에 잘 다니지 못했던 나의 자격지심이었을 지도 모른다. 커피의 맛을 알게되면서 맛있는 커피를 마실 때의 즐거움을 이제는 느낄 수 있는 것 처럼 음식에 대한 나의 취향을 찾아가는 것 또한 새로운 즐거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최소한 이제는 밥먹으러 식당에 가서 아무거나요- 라고 답하지는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