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일로 시작되어 일로 끝나는 것이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회사에서의 일이 어째서 일로만 평가받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비슷한 강도로 업무를 하고 크게 다를 것 없는 성과를 낸 것 같은데, 왜 누구는 매번 더 좋은 평가를 받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의 생각이 처음부터 잘못된 전제였다는 것을. 애초에 일이라는 것은 자를 들고 딱 떨어지게 길다 짧다 잴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다.조직에서 어느 누가 봐도 저 사람이 눈에 띄게 일을 잘했다-라고 생각할 스타플레이어는 있기 마련이다. 그 해 프로젝트 성격이 그럴 수도 있고 개인의 역량이 출중하여 그럴 수도 있다. 남겨진 문제는 소수의 스타플레이어 외 대다수의 조직원에 대한 업무 평가를 줄자로 키 재듯이 순위를 잴 수 있느냐이다. 물론 사내 업무 평가기준은 줄자처럼 하나의 잣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면평가라는 이름으로 성과를 측정할 지표를 여러 개로 잡고 객관적인 지표로 측정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리더 또한 객관적으로 평가를 하기 위해 고심하는 것역시도 맞는 것 같다.
시장에 물건이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의 문제를 파악할 때 왜 더 잘 만든 물건이 안 팔리는지 이유를 찾고자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제품만을 보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객관적으로 더 잘 만들고 심지어 더 싸게 만든 물건을 사지 않는 그 선택은 사람이 한다. 측정 가능한수치만 비교하면서 왜 소비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선택을 하지 않느냐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사람의 선택에는 이성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요소들이 더 큰 작용을 한다고 한다. 뇌과학자들의 설명을 빌리자면 욕망과 감성적인 요소에 영향을 더 받는다고 한다.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따지고 보면 시작에 사람이 있었다.매년 프로젝트 배정과 연말 고과, 가끔의 부서 이동, 진급, 우수인재 추천 등 회사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 그 뒤에는 언제나 그러한 선택과 결정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회사에서 했던 프로젝트가 있다. 매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비슷한 일을 이어왔다. 내 기억에서는 이미 잊혀지고 끝난 일들 중 하나였다. 새로운 부서에서 면담을 했다. 어떤 일이었는지 프로젝트는 잘 기억나진 않는데 그 프로젝트에서 일을 하던 내가 얼핏 기억이 난다고 했다. 새로 조인할 멤버 리스트에서 내 이름을 보자 그때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잠시 기억을 되살려보았지만 그 이야기를 꺼낸 분과 직접 대면 회의를 하거나 전화를 한 기억은 없었다. 내 기억에서 이렇게 사라진 것을 보면 아마도 몇 번 오고 간 이메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이메일을 보내고 업무를 처리하고 그것으로 나의 일은 끝났다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사람의 마음에 남는 모습은 전략적이고 도전적인 정치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다분히 의도를 지닌 채 전략적인 직장생활을 하기도 한다. 그러한 모습을 정치라고 까내리기 이전에 그보다 앞선 말 한마디, 인사 한 번과 잠깐 마주칠 때의 표정 같은 사소한 스침이 어쩌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하지 않고 보냈던 이메일이 어느 누군가의 기억에 남은 것처럼. 평소 내가 어떤 마음으로 지내느냐가 생각 이상으로 주변에 많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겠다. 나의 작은 행동 하나, 말 한마디 모습 하나하나가 쌓이고 쌓인다. 나에게 남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아닌 어느 누군가의 기억 속에도 남는다. 이것은 회사 안에서도 밖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자신만의 기준이 있는 사람
최근 들어 내가 회사 밖에서 강의나 사람과의 만남 등 무언가를 선택할 때의 기준은 당장 결과를 보여주거나 빠르게 돈이 될 일들이 아니었다. 나의 선택에는 내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 또는 그 사람이 쓴 글이 있었다. 지금까지 외부의 기준에 맞추려고 긴 시간을 지내왔으니 이제는 최소한 회사 밖에서만큼은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기도 했다. 아주 작은 선택이라도 그 기준이 내 안에 있기를 원했다. 그 선택들이 언제나 합리적이지 않았더라도 때로는 어리석거나 맹목적으로 보였더라도 괜찮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내가 남긴이런 모습들이 나를 선택한 이유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기회를 그렇게 마주할 수 있었다. 세상의 일들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지금 나의 모습도 세상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을 것이다. 쌓이다가 흩어지다가 잊혀지다가 다시 떠오르거나 할 것이다. 나의 글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솔직함을 핑계로 한껏 힘을 주고 써놓은 글이 있었다. 온라인으로 그렇게 세상을 마주하고 하다가 오프라인으로, 사람과의 만남으로 이어졌을 때 나의 부족함이 온몸으로 느껴지면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온라인 세상에서 내 공간이라 생각하며 내 생각이나 기억을 끄집어내어 놓지만 그것을 읽고 보는 사람이 있다. 내가 타인을 같은 방법으로 기억하고 이미지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온라인의 글은 오프라인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가까이 닿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만나서는 말로 다 꺼내어놓기 힘든 생각과 하나하나 설명하지 못하는 그 마음들을 글로 적어놓기 때문일 테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매력이 가득한 일지만 그만큼의 부담을 안겨주기도 한다. 회사에서는 최소한의 내 몫만을 하려고 힘을 빼면서 지내는데 글쓰기를 이어간다는 것이 부끄러운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한 손에는 조금씩 힘을 빼기로 했다. 나의 이런 모습들도 여전히 어딘가에 남겨지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가장 먼저라는 것은 알아가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지는 계속 어렵다. 부담을 이겨내고 글을 계속 쓰고자 하는 나의 글쓰기 메이트가 떠오른다. 이렇게 응원하기로 한다. 나의 글을 기록하면서, 언제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