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전의 이야기이지만 우르르- 회사에서 단체로 밥 먹으러 간다면 부대찌개 집이건 짜장면 집이건 국밥집이건 상관없었고 가서 음식을 시키고 나서도 다 맛있게 먹었다. 다 맛있는 집이기도 했다. 오늘 또는 지금 당장 꼭 먹고 싶어서 그곳에 꼭 가야만 하는 마음을 잘 몰랐다. 회사 주변의 식당들이 대체로 맛있는 편이기도 했고 배만 부르게 먹는다면 메뉴는 뭐든 괜찮았다.음식을 애타게 생각하고 떠올리며 식당을 찾아가는 그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지못했던 것 같다.
잠자기 전 어젯밤부터 머리 위로 음식들이 둥둥 떠다녔다. 내가 좋아하는 고기- 양지, 안심, 차돌, 도가니까지 종류별로 가득 들어간 담백한 국물의 쌀국수. 가장 보통의 가장 평범한 속재료가 들어갔는데 밥알 사이사이가 빼곡하지 않아서 은근하게 보드랍고 적당히 짭짤한 김밥. 새빨간 양념으로 고루 섞인 소면 위로 얇게 썬 양배추와 김가루가 수북한 비빔국수. 종류 불문 면이 꼬들꼬들하기만 하다면 다 맛있는 세상의 모든 라면. 오징어와 새우, 홍합, 바지락조개 등 신선한 해물이 넉넉하게 올라간 진한 국물의 짬뽕.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얼큰하고 진하고 구수하기까지 한 순대국밥.
고기가득 쌀국수
맵단과 단짠이라면 다 맛있는 음식이라 생각했는데 내가먹고 싶은 음식은 양념맛만 중요하진 않았다. 거칠지 않고 말캉하면서도 쫀득하거나 쫄깃하게 씹히는 식감이 함께 필요했다. 쌀국수 속 도가니가 그러했고 김밥의 오독오독 씹히는 단무지가 그러했다. 라면은 그냥 라면이 아니라 면발이 씹히는 맛이 있는 꼬들한 상태여야 했다. 짬뽕에는 꼭 넉넉한 양의 해물, 순대국밥에는 곱창이 필요한 것이었다. 전형적 맵단이지만 닭볶음탕은 닭고기의 본연의 식감이 다른 고기보다 부드러워서일까, 애타게 생각나진 않았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들이 대체로 맛있지만(요즘 요리를 거의 안하기는 해도 내가 만든 내 음식이 맛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쉬운 점 하나를 꼽는다면 식감이었다. 새우나 오징어가 들어간 요리를 내가 잘 못만들었고,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 말고는 다양한 재료를 요리에 잘 활용하지 못했다. 집밥은 늘 비슷한 고기에 비슷한 야채를 사용했다. 가끔의 점심 외식은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고 허전했던 씹는 맛을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단짠과 식감까지 다갖춘 맵도리탕.....
건강검진의 관문, 대장내시경을 준비하느냐 이틀을 밍숭 맹숭한 맨밥과 우유와 카스테라 빵으로 끼니를 했다. 딱 두끼를 그렇게 먹고부터 머리속에 음식들이 떠다녔다. 소고기 패티가 두툼한 햄버거는 지난 주 쯤에 먹어서인지 떠오르지 않았고, 스테이크나 파스타는 먹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맵고 단 음식과 얼큰하고 구수한 음식. 쫄깃하고 쫀득하고 부드럽고 탱탱하면서도 씹히는 식감을 가진 재료의 음식들이 계속해서 생각이 났다. 지금도 회냉면의 쫀쫀한 회를 씹는 상상을 하고 있다. 양념마저 매콤하고 달달 새콤하니 딱 내 취향일 수 밖에 없었나보다. 건강검진을 마친 후에 어떤 것을 먹으러 갈까 식당을 고르고 또 골랐다. 요즈음은 외식도 거의 하지 않고 회사 구내식당과 집에서 먹는 밥이 전부이다 시피 한데, 집에서도 아이들과 좀 더 다양한 식감의 음식을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튀김이 들어간 라볶이
난 먹는 것에 무딘 편이라 생각했다. 되돌아보면 거의 늘 배부른 상태이기도 했다. 먹고 싶으면 그때 그때 참지 않고 먹는 편이었고 빵도 생각나고 먹고 싶은 것들을 찾아 먹었다. (그러고보니 간식으로는 딱딱하게 씹히는 빵을 좋아한다-) 참고 참고 참아야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이 더 잘 떠오르는 것인가보다. 늘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는 것은 평소에 그것을 절제하고 참으면서 몸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내가 남편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필요한거 해달라는거 다 갖추어주면 본인이 뭐가 절실한지 깨닫지 못한다니깐-. 안쓰러워도 안해줘도 괜찮은거에요."
건강검진을 앞두고 그 말을 그대로 내가 나에게 돌려주어야 할 때라는 걸 깨달았다. 내게도 결핍이 필요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