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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민 Jul 05. 2020

초원을 먹는 사람들.

나의 몽골 이야기Ⅲ

 한 남자아이가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로 푸른 초원 위를 자유로이 뛰어다녔다.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는 잔디 위, 그리고 그 위를 가벼운 몸짓으로 뛰는 소년. 나는 그 소년이 초원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했다.


 우리─나를 포함한 몽골 선교팀─가 초원 한가운데 위치한 게르에 도착한 것은, 모린다와 교회에서 5일가량을 묵은 후였다. 초원으로 이동할 때는, 칭기즈칸 국제공항에서 모린다와까지 타고 왔던 버스가 아닌, 한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스타렉스를 타고 이동했다. 게르에서 만날 사람들에게 주기 위한 선물들, 초원에서 지내며 먹고 자고 씻고 할 갖가지 용품들을 작은 차에 꾸겨 넣은 채 우리는 그렇게 초원으로 출발했다.

 울란바토르를 벗어나기 전까지는 펼쳐지는 풍경이 한국과 그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높은 건물과 도시의 소음은 물론, 이마트까지 보였다. 몽골은 물가 대비 기름값이 비싸─한국과 거의 비슷한 듯했다.─ 차를 모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달리는 도로는 러시아워를 연상케 할 만큼 무지막지하게 막혔다. 사람들이 평소에 생각하는 광대한 자연의 모습이 없는 몽골은 어딘가 어색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했다.


 차에서 쪽잠이 들었고 눈을 떴을 땐 이미 광활한 자연 속을 달리고 있을 때였다. 눈을 뜬 순간 펼쳐진 그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없어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보고, 창문을 열어젖혀 얼굴을 내밀고 한동안 눈 안에 그 모습을 담았다. 차가 달리는 도로는 이제 포장도로가 아닌, 비포장도로─잔디가 무성히 깔린 초원이었으며 차가 지나다니는 길마다 양과 염소, 말 따위가 모여있었다. 차의 엔진 소리에 놀라 도망가는 동물들을 보자니 마음이 들먹들먹했다. 우리는 그렇게 드넓은 자연, 그 끝이 없이 망망한 초원을 막힘 없이 달렸다.

 정확한 시간이 가늠이 안 될 즈음에 우리는 작은 게르 앞에서 멈췄다. 게르는 몽골 사람들의 이동식 집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동한다는 것은, 한 장소에 긴 시간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 우리가 지금 만나는 사람들을 또다시 여기서 보지 못 할 수도 있다는 말과 같다. 그렇기에 나는 가슴이 설렜다. 두 번 이상의 만남이 기약되지 않는 첫 만남. 살면서 또 언제 이런 귀한 인연을 만들어보겠는가?


 게르 앞에는 빡빡머리를 한 남자아이가 초원을 누비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소년의 뜀박질을 맞춰 달리는 초원의 들개. 소년이 잡으려고 하지만 자꾸만 어딘가로 도망가는 염소와 양 떼들. 푸른 초원과 파란 하늘이 맞닿아 보이는 그 경계를 거침없이 달리는 소년. 나는 그 소년을 보자마자 생각했다.

 ‘너는 초원을 먹고 있구나.’

 ‘상쾌한 마음을 먹듯 초원의 마음을 먹고 있구나.’


 우리가 그 소년을 지나쳐 게르의 문에 섰을 때 소년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우리를 보고 살짝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문 앞에 서 있었다. 우리는 그녀를 보고 말했다.

 “Сайн байна уу!
(Sain baina uu, 안녕하세요!)”

 그러자 그녀도 경계하던 마음을 접고는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은 후 이렇게 말했다.

 “Сайн байна уу”

 우리는 그렇게 초원을 먹는 사람들을, 게르를, 게르에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 먹다 : 어떤 마음이나 감정을 품음

* 게르 : 몽골인들의 이동식 천막집

* Сайн байна уу! 샌 배노라고 읽는다.






- [아롤. 나의 몽골 이야기Ⅳ]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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