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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민 Jul 11. 2020

아롤

나의 몽골 이야기Ⅳ


 몽골 가정집에 가면, 지켜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집의 나무 기둥에 기대지 않기. 집 안으로 들어갈 때는 문지방을 밟지 않기. 만약 앉을 자리를 지정해 주지 않는다면 남자는 왼쪽에, 여자는 오른쪽에 앉기 등. 한국에서 몽골로 출발하기 전, 인터넷 검색을 하며 얻었던 정보들이었다. 실제 게르─몽골 가정집─에 도착했을 때, 혹시나 실수로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아 집주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진 않을지, 한국인은 기본예절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진 않을지 노심초사하며 긴장했었다. 우리─나를 포함한 몽골팀─는 한국에서 숙지했던 기본예절을 지키며 게르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우왕좌왕 자리에 앉자, 게르의 주인은 우리에게 바구니에 가득 담겨있는 하얗고 딱딱해 보이는, 한국에선 보지 못했던 물건을 내밀었다. 고소하면서도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그것을.    

 ААРУУЛ (AARUUL, 아롤)

 몽골의 유제품 한 종류인 아롤. 그 하얗고 딱딱한 것의 정체는 아롤이었다. 양이나 염소, 말, 야크 등 가축의 젖을 발효시켜 만든 타락(몽골의 요구르트)을 단단하게 말린 것. 생긴 것도, 이름도 낯선 그것을 우리는 어색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바구니에 들어있는 아롤을 남김없이 모조리 먹어 치워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먹고 싶은 사람만 대충 한두 입 먹고 내려놓으면 되는지 등의 고민에 잠긴 채. 그렇게 고민하는 그때, 우리를 통솔하고 안내해준 몽골인 안내자분이 우리를 향해 말했다.

 “모두 한입씩 돌아가며 먹어야 해, 그리고 그것이 예의야.”

 우리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아롤을 먹기 시작했다.

 아롤을 입으로 밀어 넣자,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맛이 입안 전체에 감돌았다. 상한 우유 같기도 하고, 오랜 시간 발효시킨 요구르트 같기도 하고, 치즈 같기도 한 맛의 아롤. 말린 오징어 다리처럼 딱딱해 씹기가 어려웠고 두 번 먹었다가는 속에서 무언가 올라올 것 같았다. 하지만 손님인 우리에게 내보인 집주인의 성의인 아롤이 우리 입맛에 잘 맞지 않다는 것을 티 낼 수는 없었다. 나는 그것을 오랫동안 입안에 둔 채 녹이고 씹으며 겨우 삼킬 수 있었다.

 우리는 각자 돌아가며 한국에서 미리 지어놨던 몽골어 이름을 게르의 가족들에게 소개했다. 그리고서 본래의 목적인 성경에 대한, 기도에 대한,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전했다. 게르의 가족들은 처음 듣는 얘기일 텐데, 그래서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는 이야길 텐데도 우리의 눈을 한 번도 피하지 않고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이야기를 다 전하고 난 후에는 게르의 가족들을 마주 보고 서서 몽골어로 된 찬양곡을 불렀다. ‘사랑해요, 축복해요, 당신의 마음에 우리의 사랑을 드려요.’라는 가사를 가진 찬양을.

 게르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사진을 한 장 찍고 한국에서 준비해갔던 작은 선물 꾸러미를 전했다. 그때 기뻐하던 게르의 아이들, 게르 어머니의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차를 타고 달리며 멀어지는 게르를 볼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준비해갔던 선물과 이야기와 찬양이, 또 그것을 준비했을 때의 우리의 마음이 그들이 우리에게 전했던 아롤과 같지 않을까. 비록 처음 만났고 이 이후의 만남을 기약할 순 없지만, 운명처럼 우연히 만날 인연을 생각했을 그 소중한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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